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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ug 11. 2021

시월드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방법이란?

시댁으로부터 온 택배

시어머니로부터 택배가 왔다. 당일 배송이라 적혀있는 상자는 꽤 무거워 발로 밀어서 집 안으로 들였다. 테이프를 뜯었더니, 뜨거운 열기가 훅 전해졌다. 상자의 바닥엔 옥수수가 한가득,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가지와 애호박 여러 개, 둘둘 말린 신문지 사이로는 삐죽 모습을 드러낸 부추가 보였다. 안타깝게도 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한 부추는 숨이 죽어서 흐물흐물한 상태였다.

"어머니가 택배로 채소를 보내주셨어. 이번에도 엄청 많아!"



해외 출장 중인 남편에게 문자를 남겼다. 어머니의 택배는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엔 직접 담근 김치, 장아찌와 같은 반찬류가 한 박스, 3주 전엔 감자, 양파, 고추 등이 담긴 채소 꾸러미 박스가 집에 도착했다. 해외에 살고 있었기에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시어머니의 택배를 잠시 서울에 머무르면서 받게 되었다. 아무런 연락 없이 택배가 도착했을 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또 텃밭에서 자란 채소들을 듬뿍 챙겨주신 그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컸다. 다만 혼자 먹기엔 꽤 많은 양이었다.


회사 동료들과의 점심시간에 시댁에서 보내오는 택배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A는 매번 김치를 받지만, 사실 이전에 보내주신 김치도 다 먹지 못한 상태인데 거절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일반 냉장고까지 김치로 가득 차자 많은 양의 김치는 A의 친정으로 보내졌다. 보내주신 음식을 버리는 건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B는 본인은 알레르기가 있어 먹지 못하는 과일이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과일을 계속하여 받고 있다고 했다. 당시 결혼 전이었던 나는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동료들은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택배 박스를 정리하며 지난 대화들을 떠올렸다.


카카오tv <며느라기> 캡처


유독 시어머니와 카톡을 주고받던 친구에게 어떤 마음인지 물었을 때 그녀는 말했다.
“회사 본부장님이라고 생각하면 돼. 크게 기대하지 않으면 편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란 가족 같은 회사, 회사 같은 가족의 구성원, 상사를 대하는 마음이면 되는 걸까.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느 정도의 친밀감이 좋은 걸까.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과 표현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답을 찾고 싶었다. 사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결혼 후 바로 해외에서 살림을 꾸렸으니, 수많은 이들이 말했던 그 세계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예고 없이 닥친 많은 양의 택배에 감사보다 난감한 마음을 먼저 가져버린 자신을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다.


“솔직히 택배를 받은 순간, 어서 해외 우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어요.”
“그건 도망이죠. 며느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줄 필요도 있어요. 이제 가족이니까.”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원하는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거죠.”


심리 상담 선생님은 내게 조언했다. 원하는 사항을 말하는 건 상대의 호의를 거절하는 건 아닌데, 결혼과 함께 찾아온 시월드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화법의 방향을 잃어버렸다. 친정 부모님에게도 서운한 감정, 바람을 크게 표출한 적 없는 나는 자꾸만 남편 뒤로 숨고 싶다. 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직장에서 연차가 쌓이는 것처럼 결혼의 연차가 쌓일수록 시월드를 대하는 지혜로운 방법도 깨닫게 될까. 친구 중 가장 일찍 결혼한 친구에게 물었다.


tvN <너는 나의 봄>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넌 어떻게 말하는데?”
“음... 나는 이제 ‘대파는 필요한데, 양파는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게 되었지.”
“결혼 15년 차의 위엄인가.”
“정답은 없어. 우린 다 다른 사람이니까.”


그렇다. 집마다 아이의 성향이 다르듯,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도, 성향도 모두 다른 것이니까. 해외에 집을 둔 갑작스러운 서울살이 반년 차인 며느리는 다음엔 용기를 내어 표현해보기로 다짐한다.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혼자 먹기엔 너무 많으니, 다음부터는 감자 10알, 양파 5개....’ 이렇게 말해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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