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Sep 24. 2021

부모님 소개로 만난 남자친구,
2달만에 벌써 예비사위?

결혼에 대한 부모님과 나의 속도차


며칠 전 일이다. 집에서 아주 우연히 학창시절 일기장을 찾아내 읽던 중이었다. 여고생, 낙엽만 굴러가도 웃음이 새어나오던 약 20년 전. 당시 영화 <어린신부>는 한동안 학교에서 화제였던 것 같다. 일기장에는 그 줄거리와 여배우 문근영이 참 예쁘다는 평이 작게 적혀있었다.


영화 <어린신부> 스틸컷


극의 시작은 극중 어른들의 ‘진심 어린 혼담’이 있어 가능했다.


"우리끼리 나중에 사돈 맺읍시다."
"애들 혼기 다 찼을 때까지 임자 안 나타나면 만나보자고 합시다."


영화가 개봉한 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이 혼담은 장난처럼, 혹은 진심처럼 이어져 끊임없이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는 것도 같다. 다만 마냥 해피엔딩으로 점철되는 어른들의 혼담 속 두 사람의 만남은 과연 따뜻하고 핑크빛이기만 할까. 오늘은 말 못할 사정을 두고 웃으며 냉가슴을 앓는 몇몇 이들의 속사정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여고 동창생끼리 ‘선개팅’을 주선했다



최근 지인 K는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은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와 진지한 만남을 가지고 있다. 한 동네에 오래 살았고, 가족끼리도 어느 정도 알고 지내던 사이. 이 둘을 이어준 건 다름 아닌 본인들의 ‘어머니’였다.


K와 H의 어머니는 여고 동창생 사이로, 간간히 소식과 안부를 묻고 지내던 사이였다. 각자 사는 이야기와 배우자, 자식들 이야기를 근황으로 전하며 상대방 가족까지 챙기는 살가움도 갖췄다. 그러던 중 K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H를 한번 만나보라는 말을 들었다.


“얘,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한국 잠깐 들어왔대. 어린 시절에 둘이 친했잖아. 이번에 얼굴 보면서 좀 친해져봐봐.”
“엄청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안 나. 그리고 동성도 아닌데 그렇게 친해져서 뭐 해?”


영화 <극적인 하룻밤> 스틸컷


엄친아 H. 그가 좋은 직장에 다니며 다부진 체격에 서글서글한 외모까지 갖췄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궁시렁 거리며 거절했지만 한사코 만나보라는 엄마의 명령에 기세가 눌린 K는 집 앞 카페에서 H를 만났다. H는 아주 훌륭한 매너를 갖추고 K를 대했다. 잠깐 다시 만났을 뿐이지만 유순하고 여유 있는 성격은 여전하구나 싶었다.


두번째 만남, H는 K와 즐거운 데이트를 위해 많은 부분에서 노력했다. 그가 생각해오고 준비해온 것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 사람은 참 따듯한 성품을 가졌구나'하고 생각했다.


세번째 만났을 때 H는 K에게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다며 조금은 이른 고백을 해왔다. 소개팅이라면 몇번 경험했고 이를 통해 연애도 꽤 자주 해봤던 터였다. 그런데도 이번에 맞닥뜨린 그의 고백은 조금 낯설었다.

K의 연애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듣길 원하시던 어머니는 이참에 결혼까지 하라며, 둘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독려하셨다. 집안의 분위기는 H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가 먼저 생겨도 전혀 상관없다는 식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다 좋은데, 이건 아니다. K의 마음 속에서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만난 지 2달,
이미 사위와 며느리 같은 관계



올해도 3달밖에 남지 않아 어쨌든 결정을 지어야 한다. 결혼을 하고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 사람은 매너 있고 차분하며 잘 해준다. 그런데도 여전히 찬찬히 시간을 쌓아나가며 서로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연애하고 결혼하는 건 K의 사전엔 없는 일이었으니까.


영화 <어쩌다 결혼> 스틸컷


문제는 양가 부모님이었다. 사실 연애는 두 사람이 중요하다지만, 이번 연애는 양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시작한 셈이다. 연애가 아니라 결혼은 상대방의 가풍과 가족의 화합, 하다못해 부모님의 노후 대비 수준까지도 가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걸까, K는 되려 불안한 마음이 컸다. 아직 얼마 되지 않았으니 상대방의 본모습을 다 본 게 아닌데. 이러다 돌변하는 건 아닐까.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어쩌지, 반대로 그 사람도 나에 대해 다 아는 게 아닌데. 한없이 잘 해주는 H를 보며 K도 고마움과 안도감이 드는 한편 불안함도 마음 한켠엔 늘 존재했다.


“그래도 뭐 어떠니? 엄마는 이미 H가 사위처럼 느껴져.”
“K 집에 선물 하나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뭐가 좋을지 어머니가 여쭤봐달라시네.”


두 사람의 혼담은 두 사람의 감정을 넘어 이미 한 가정이 된 듯 단단히 묶여져있는듯 보였다. 맞지만, 꼭 맞는 것 같지 않다. K의 마음 속은 혼란스러움으로 이내 가득찼다. 솔직히 슬프기도 했다. 자신만 마음을 다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H도, 모든 사람이 두 사람의 미래를 축복했으니.



누군가에겐 선개팅이 지옥이더라



K의 이러한 고민을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이 회사에 있었다. 같은 부서 아이 둘의 워킹맘 Y. 그 또한 양측 가족의 주선으로 빠른 만남 후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는 선개팅의 사례였다.


“K야 근데 결혼은 신중해야 된다? 나 봐봐. 사돈끼리 얼굴 안 보고 살잖아.”
Y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랬다.


영화 <뷰티인사이드> 스틸컷


‘친구같은 사돈’을 꿈꿨던 양가 아버지끼리 혼기가 찬 아들, 딸을 소개해주자는 이야기가 시작이었다. 조금은 어려웠을 법 했던 자리. 그러나 첫눈에 반해 만난 지 4달만에 결혼을 한 두 사람. 꿈만 같을 줄 알았던 두 가정의 화합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돈 없습니다’ 하며 평소에도 시시콜콜 연락하며 서로를 끔찍이 위했던 사이였는데도 결혼은 현실이었다. 현실 안에서 각자 다르게 살아가던 두 사람의 만남은 친구 사이도 틀어지게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왜 이러는 줄 알아? 결국 팔은 안으로 굽거든. 친구와 자식 중 급한 상황에 놓였을 때 누구를 먼저 생각하겠니? 부모님께도 너무 설레지 마시라고 해. 어쨌든 관계는 어려워야 하는 게 맞고, 사이는 틀어질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어야 하겠더라. 아니면 차라리 몰랐던 사이였다가 서서히 친해지는 게 가장 좋겠지.”


Y의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가는 길. 오늘도 H와 저녁먹고 들어오냐는 엄마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온다. 답장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우리 둘이 알아서 하겠다고, 꼭 단호히 말해야겠다고 K는 다짐했다.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면전에 "돈 많아요?" 물어본 소개팅 상대, 잘못된걸까?

엄마 핑계를 대며 소개팅 자리를 바람 맞춘 남자

딩 호구 탈출방! 결혼 준비 함께 나눠요!



매거진의 이전글 회피형 성격이 불러일으킨 이혼이라는 결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