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한 후에 시작된
엄마의 두 번째 시월드

신경 쓸 일 많았던 명절이 지나고

by 구본재


결혼으로 해외 이주를 앞둔 때에 글쓰기 모임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언니 C는 결혼 후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지냈다고 했다.


MBC <화려한 유혹> 스틸컷


3~4년의 해외 생활을 보낸 이들은 처음엔 부부 둘이 떠났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땐 셋이었다. 아이와 함께 돌아온 부부는 그동안 뵙지 못했던 양가 부모님들과 자주 만날 수 밖에 없었는데, C언니는 시댁과 마주하는 일이 해가 지나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명절이면 평소 잘 지내던 남편과도 마찰이 생겼다고.


부부 사이에 사소한 행동과 말투에서 오는 섭섭함은 명절이면 극에 달한다. 몸의 피로와 함께 누적된 섭섭함은 분노로 변화된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며느리'가 표출하는 것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어렵다. '며느리'는 분노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차곡차곡 쌓아 홀로 삭힐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아직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C언니는 결혼을 앞둔 나의 두 손을 잡으며, 절대 한국에 돌아오지 않기를 당부했다. 언니를 보며, 어린 시절 혹독한 명절을 보내던 엄마가 떠올랐다.


tvN <청춘기록> 스틸컷


5남매 중 장남과 결혼한 엄마는 친가에 가면 늘 부엌에 있었다. 새벽 4시, 교통체증을 피해 서울에서 광주까지 아빠 차를 타고 할머니 집에 도착하면, 이미 할머니는 엄마가 할 일을 남겨두었고, 엄마는 곧바로 앞치마를 챙겨 부엌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그곳에서도 우리의 아침상을 차리는 엄마. 아침을 먹고 나면 차례로 작은 엄마들이 왔다. 늘 할머니 집과 가장 거리가 먼 우리가 일찍 도착한 것이 의문스러웠는데, 맏며느리로서 엄마가 겪은 시월드가 아니었을까 싶다.


치매가 걸린 할머니의 병간호도, 돌아가신 이후에 제사도 큰 집이자 맏며느리인 엄마의 몫이 되었다. 엄마 혼자 너무 고생하는 게 안쓰러웠고, 작은 엄마들이 얄미웠다. 또 먼저 나서지 못하는 아빠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식들이 다 가정을 이루면 편해질 거야. 이렇게 큰 집에 오지도 않을걸."


엄마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우리 세 자매가 모두 결혼하고, 작은 아빠의 자녀들도 장성하여 결혼하고 나니, 명절에 모두 모이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코로나로 인해 인원 제한도 있으니 명백한 이유도 생겼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이십여 년이 지났고, 이제 엄마가 시월드의 세계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자유를 누리고, 마음껏 해방감을 느끼길 원했다. 그러나 엄마의 명절은 여전히 분주하다.


"이번엔 어떤 선물을 하는 게 좋을까? 지난번에 굴비 좋아하셨지?"
"엄마, 우리가 따로 용돈 드리니까 큰 거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명절 선물로 시댁에 무얼 보내는 게 좋겠냐며 엄마는 전화를 걸어왔다. 간단한 견과류를 해도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번에도 굴비 한 두릅을 보내셨다. 더 많이 베풀어야 마음이 편하신가 보다. 딸이라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은데. 결혼한 딸의 시댁이 엄마의 또 다른 시월드가 된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또한 나의 우려였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아니, 글쎄 셋째네 시댁에서 고기를 많이 보냈더라고. (호호)"
"와, 잘 됐네요 엄마. 맛있게 구워 먹으면 되겠어요."


딸이 셋이니 시댁도 셋. 명절에 주고받는 선물이 엄마에게 기쁨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또 이를 빌미로 부모님들끼리 좋은 말을 주고받는 게 엄마도 처음보다 익숙하신 듯하다. 아차, 생각해보니 엄마와 통화할 때 스피커폰으로 했는데... 시어머니는 사과 한 박스를 보냈다고 하셨는데, 혹시 남편이 신경쓰는 건 아니겠지?

해외에 있어도 명절이란 여기저기 신경 쓸 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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