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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Feb 18. 2022

상여금 받은 사실을 숨긴 배우자.
결국 깨진 부부 신뢰

진정한 신뢰, 그리고 평등이란 무엇인가


최근 들어 가장 재밌게 본 프로그램 이름을 대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돌싱글즈>를 꼽을 것이다.


돌싱글즈, 이름부터가 끌렸다. 이혼의 아픔을 겪은 출연자들이 나와 다시 한번 사랑을 꿈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아무래도 나는 결혼을 했고, 그들과 제법 비슷한 나이대를 살아가고 있어서인지 매 회차 출연자들의 진솔한 내면을 담은 방송을 볼 때마다 공감(?)의 눈물을 흘렸다.


MBN <돌싱글즈2> 방송 캡처


출연자 대부분은 결혼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부부간 신뢰에 금이 가는 문제를 겪었다’고 밝혔다. 부부간 신뢰가 사라지는 일이 과연 뭐길래 이혼을 하는 것일까? 물론 많은 이들이 이성 문제, 술, 불륜, 도박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는 그런 시련이 없었기에 사뭇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말할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부부도 최근 그런 위기를 한번 겪었다고.


다른 건 아니다. '돈' 때문이었다.


상여금의 진실


픽사베이


배우자의 회사에서 상여금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된 건 인터넷 뉴스에서였다. 사실 그전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우리 부부의 수입은 각자 관리하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급여 수준이 나은 배우자가 공과금 납부 및 가계 운영에 관련한 비용을 대고 있어서다.


나는 배우자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급여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적당히 저금을 했고, 적당히 내 용돈을 쓰는 생활을 해왔다. 당연히 배우자 회사에서의 상여 파티는 내 생활과 크게 상관없게 느껴졌다. 매년 상여금이 꼬박꼬박 나왔던 것도 아니고, 그 또한 그 부분에 크게 신경을 두고 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상여금 나온다며? 뉴스에서 봤어.”
“응. 이번엔 좀 나올 것 같더라.”
“그렇구나.”


배우자의 말은 평소와 같았고 나 또한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한가롭게 치킨과 맥주를 시켜 함께 TV를 보며 먹고 있던 중이었다. 그날은 배우자가 급여를 받은 다음날이기도 했다. 문득 그 상여금이 생각났다.


“이번에 상여금 받은 거 얼마나 나왔어? 그중 일부는 우리 여행 갈 때 쓰는 건가?”
“아, 그거. 사실 대출금 갚는 데 다 썼어.”
“뭐라고? 중도금을 갚을 정도의 금액이 나왔어? 얼마나 나왔는데? 한 5백만원 나왔어?”
“아니, 사실 그거보단 많이 나왔어…”


세상에... 듣고 나니 그때의 감정은 참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미안해. 사실 네가 기분 나쁠까 봐 말 안 했어.”
“뭐? 왜?”


미안한데, 그 말을 듣고 나니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아니, 처참했다.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JTBC <인간실격> 스틸컷


금액도 놀라웠지만, 그 정도 금액을 상의 없이 본인이 알아서 해결했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내가 기분 나쁠까 봐 말을 안 했다는 것도. 그러니까 내가 자기보다 더 못 버니까, 그 말을 듣고 주눅 들고 불평할까 봐 말을 안 했다는 것 아닌가. 들을수록 기가 막혔다. 내 앞에서 우거지상을 하고 ‘이게 잘못된 건 줄은 안다’고 말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말문이 막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더 참담했던 포인트는 '이 사람이 지금까지 얼마나 더 숨겨왔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중요한 결정을 상의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신뢰하지 못했다는 것도 말이다. 내가 이 집에서 동등한 일원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이 사람이 나를 믿지 못한다는 게 증명되자 지난 결혼 시절이 한순간에 바스러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나의 기분은 바닥을 내리 꽂았고, 결국 연휴 동안 부모님들께 의도치 않은 ‘쇼윈도 부부’로 찾아뵙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신뢰는 가정 내 ‘평등’이
기반되어야 완성되는 것

JTBC <공작도시> 스틸컷


사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그가 헛돈을 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곳에 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쓸 거라고 믿는다. 그 부분은 확실히 해두었다. 배우자와 다시 한번 진지한 대화를 하며 모든 상황에 대한 의심과 오해는 깔끔히 정리했다.


그러나 한차례 갈등을 겪고 나니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이번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 것일지 말이다. 앞으로 모든 걸 투명하게 공유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사실 지금까지 서로에게 숨긴 건 없었다. 내 삶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늘 아는 사람들을 만났고, 내 계좌는 유리지갑이었다. 상대 또한 대체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단순히 의심과 믿음의 문제에서 나아가 집안 내 동등한 의사결정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 것 즉, 나를 자신의 ‘부양대상’으로 생각한 것에 온 불쾌함이 가장 컸다. 이 부분을 해결해야 이 갈등이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결국 배우자가 현재 관리하고 있는 모든 집안의 가계부를 내게 맡기며 일단락됐다. 본인이 짊어진 가장이라는 무게를 나도 같이 지게 된 것이다. 결혼 5년 만에 드디어 처음으로.


결혼 생활 이후 믿음이라는 근간이 뿌리째 흔들린 사건을 겪어봤다.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비참한 감정을 겪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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