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너무 귀엽고, 예쁘게 자라서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되는데도 아직도 마냥 제게는 어릴 적 모습 그대로인 거 같아요. 큰 아이와는 4살 터울밖에 나지 않는데도 막내라 그런지 아직은 그냥 어리광 많은 막내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거 같아요.
이제 욘 석도 올해 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고, 나이도 차서 그런가 사춘기가 오는 것 같아요. 예전엔 외출하려고 하거나, 장 보러 가자고 하면 바로바로 함께 잘 따라나섰는데 이젠 사정사정해도 함께 따라가는 일은 거의 없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고, 아내나 아빠인 제 말을 정말 죽으라고 듣질 않는 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전 제 딸이 너무 이쁘니 사정사정에 통사정이라도 해서 함께 잘 살아봐야죠.
성별이 다른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서로 비슷한 점도 있지만 서로 다른 점이 더 많아요. 큰 아이 같은 경우에는 장남에 아들이다 보니 책임감이나 자존감도 강해요. 거기에 고집은 얼마나 센지, 그 고집 꺾는 게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딸아이는 이런 아들에 비해서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강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더 강하죠. 오히려 제가 볼 때 자신이 손해 보면서까지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선 가끔은 속상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딸아이를 키우며 아직도 제가 양보 못하고, 고쳐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어요. 둘째 아이는 자존감이 너무 낮은 편이에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지만 다른 주변분들도 딸아이를 볼 때마다 '예쁘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면 아빠니까, 부모니까 당연히 자식이 예쁘게 보인다고 하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이나 가끔씩 보는 지인들조차도 딸아이를 보면 예쁘게 생겼다고 칭찬하는 걸 보면 예뻐 보이긴 한 가 봐요.
이런 주변분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딸아이 본인은 자신이 무척이나 못났다고 생각해요. 눈이 어떻네, 코가 어떻네, 얼굴이 어떻네 등등 참 구석구석 못생긴 곳을 찾아내는 게 취미일 정도로 외모에 자신 없어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요. 게다가 외모뿐만이 아니라 다른 활동들 조차도 다 자신감을 갖지 못해요.
자긴 오빠처럼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자신은 그림을 너무 못 그려서, 자신은 노래를 못해서 등. 도대체 듣고 있으면 잘하는 게 없는 아이처럼 매사에 자신이 없어하는 게 제겐 가장 신경 쓰이는 점이에요. 아이가 클 때 트라우마가 생길만한 사건은 몇 번 있긴 했지만 그래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아이에게 상실감, 박탈감을 가져올 사건은 아니었지 싶어요.
큰 아이가 가끔씩 딸아이를 놀릴 때마다 전 큰 아이에게 핀잔을 줘요.
'지수 자존감이 바닥이 된 건 다 민수 네 탓이야', '네가 지수 키울 거 아니면 우리 딸 놀리지 마라', '내가 지수를 너보다 더 공부 잘할 수 있게 키울 거야' 등과 같이. 조금은 딸아이 기분도 북돋을 겸 해서 큰 아이를 야단치죠. 뭐 큰 아이 도움받아가며 저도 딸아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무척이나 신경 쓰고 있어요.
지난 주말에도 간식으로 뭘 해 먹을까 하다가 계란말이를 해봤어요. 그냥 계란만 풀어서 내놓을까 싶다가 떡볶이 떡도 있고, 스팸도 조금 남아 있어서 계란말이에 함께 넣고 예쁘게(?) 말아봤어요. 떡은 미리 끓는 물로 익혀서 계란말이에 넣었어요. 자주 하던 음식이 아니어서 그런지, 말던 손이 시원찮아서 그런지 계란을 말다가 옆구리가 터져버렸어요. 옆구리 터진 계란말이가 예쁘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계란말이 안 밀떡의 쫀득한 식감과 밥도둑의 대명사 스팸의 짭조름함까지 더해졌더니 맛있는 간식이 완성되더라고요.
"지수야, 옆구리 터진 못생긴 계란말이도 이렇게 맛있는데. 우리 지수는 옆구리 터진 계란말이 같이 어디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예쁘게 잘 자랐는데 뭐가 걱정이야. 혹시나 이 계란말이처럼 옆구리가 터져도,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아빠 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