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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07. 2020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퇴근길에 감정을 고스란히 썼습니다

작년 10월 이후로 평안한 날이 많았던 것 같다. 업무가 바뀌고 처음 하던 업무 덕에 다 늦은 나이에 퇴사를 결심했다, 포기했다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기대하고 옮겨간 부서에 업무가 하나 둘 늘어날 때만 해도 나름 편하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퇴사 인원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서로 고통 분담해야지', '능력이 되니 예전 업무도 병행하는구나' 등과 같이 마음이라도 편히 먹으려고 했던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곧 20년이 넘는 직장생활 동안 전혀 해보지 않은 업무가 담당자의 퇴사로 넘어왔고, 도와줄 사람 없이 정말 맨땅에 헤딩하듯이 꾸역꾸역 8개월을 버텼다. 짜증도 많이 냈고, 사직서도 가슴속에 여러 차례 품었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하기 싫고, 어렵던 일도 차츰 익숙해져 갔고 길고 길었던 7개월을 지내고 첫 프로젝트를 마쳤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 이후로는 제법 여유도 생겼고, 워라밸이 뭔지 확연히 내 생활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익숙해지다 보니 새로 맡은 업무가 가끔 짜증이 나도 업무 계획 수립도 가능하고, 익숙해지면 꽤나 내 생활에 여유를 줄 수 있는 업무로서의 매력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여유 있는 생활을 3개월을 보내며 오히려 하고 있는 업무로 타의적 전환은 전화위복의 결실을 가져오는 착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일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얼마 전부터 내 삶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주부터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 나의 마음은 조바심과 초조함, 그리고 짜증으로 스트레스 게이지가 오르기 시작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것도 일을 끝내고 났다는 안도에서 생겼던 착각 같이 느껴졌다.

   업무 계획 때부터 삐걱대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혼자 새로운 문서 작성에, 개발 방안 마련에, 내부 협의 그리고 개발팀 설득까지 백업이나 동료 없이 하는 업무에 지치고, 힘에 부침을 느꼈다. 곧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아 스스로 속도 조절에 들어가려고 바쁜 와중에도 급한 일 처리 후에 하루 휴가를 냈다. 잠시 쏟아지는 소나기라도 피하려는 마음으로 리프레시를 지향한 전략적 휴가였다. 토요일까지는 계획이 어느 정도 적중하는 듯했고, 일 걱정을 전혀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가 되자 월요일에 처리할 업무로 이틀간의 휴식이 별 소용이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금요일에 처리할 개발 방안 수정 계획안을 매니저, 개발 담당과 함께 협의했고, 매니저의 허가 후에 협조가 필요한 개발부서에 협의했던 방안을 정성껏 작성해서 검토 요청을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문제는 빨리 마무리하고, 제출해야 할 문서를 서둘러 작성하려고 계획을 가졌다. 하지만 2시간이 지나도 검토의견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오지 않았고, 급하다고 서둘렀던 매니저까지 나 몰라라 하는 것 같아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지기 직전이었다.

   금일 중에 처리하고, 개발방안을 외부 기관에 최종 확인받아야 내가 작성할 문서도 진행이 되기 때문에 답답하고, 아니 꼽더라도 협조 개발부서 담당과 팀장에게 찾아가 의견을 물어야 했다.  하지만 대뜸 돌아온 의견은 '개발자가 확인이 가능하도록 구성이 되어있느냐', '왜 다른 제품 프로젝트인데 자신의 부서 제품에 기능 개발 검토가 필요하냐' 등과 같은 보낸 메일에 대한 내용 검토가 전혀 안된 것 마냥 이야기를 건네는 게 아닌가.  난 참기가 어려웠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자제력을 십분 발휘해 상황설명을 했다. '없는 기능도 아니고, 진행하려는 업무가 너무 차고 넘쳐 방안에 대한 개발 의견만 주시면 된다' 고. 하지만 옆에 가만히 듣고 있던 개발 담당이 그러다 안되면 어떻게 하냐고, 제대로 동작하는지 확인부터 하고 검토 요청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고, 난 꾹 누르던 마개가 솟구쳐 올랐고, 감정을 터트리고 말았다.


'안되면 버그지 답답하게 굴지 마세요. 절차 따질만한 여유가 있으면 내가 이리 부탁도 안 했지' 

   결국 더 이상 흥분된 감정을 추스리기 어려워 지나가던 매니저에게 상황을 정리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조금 당황했지만 나의 상태와 대화의 분위기를 보고 적당한 선에서 정리하려고 했다. 듣고 있다가 더 열불이 터지는 듯해서 난 저녁시간에 남아서라도 기능 점검을 모두 확인해 주었고, 최소한의 개발 검토만 하면 되도록 정리해 줬다. 기능 확인 후 주변을 보니 모두 퇴근하고 자리엔 나 혼자 뿐이었고, 허탈함에 3개월의 여유나 매리트는 내 머릿속 어디에도 없었다.

   난 잠깐이지만 작년 퇴사를 생각했던 맘이 잠시 꼬물꼬물 올라왔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 이런 업무 절차, 답답함도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퇴근 시간이 꽤나 지난 지금 가방을 싸고 일어났다. 누구에게나 업무의 우선순위가 있음은 인정하지만 협업에 있어서 기본적인 예의는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예절이고, 도리이다. 급하다고 얘기했으면 부서 간 교통정리 정도는 해줘야 하는 매니저도 업무지시를 한 당사자로서 업무 태만이고, 메일을 보낸 지 2~3시간이 지났으면 절차를 이야기하기 전에 상황을 이해하고,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파악 가능한 내용을 전달하는 게 협업 부서의 도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난 오늘 또 화를 내고 말았다. 이젠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반복되는 루틴같이  또 화를 내고 말았다. 그래도 내일은 툭툭 털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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