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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16. 2020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을 포기했다

인생이란 게 뜻대로 안 되니 살아볼 만한 거 아닌가요

펭귄들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데 먹잇감을 구하러 바다에 들어가야 하지만 바닷속에는 바다표범과 같은 천적들이 있어 빙산 끝에서 눈치만 보고 모여 있다가, 바다로 뛰어드는 첫 번째 펭귄을 따라 나머지 펭귄도 바다로 뛰어들게 된다.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은 위험한 상황에서 먼저 도전하는 용기를 내 다른 이들에게도 참여의 동기를 유발하는 선발자를 가리킨다.

[Daum 백과] 발췌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21년.

회사 참 오래도 다녔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기특도 하지만 지금의 위치를 생각하면 아쉬움도 큰 듯하다. 30대 중반 처음 관리자의 중책을 맡을 때만 해도 내게 과분하다 생각했던 자리였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고 어느덧 1년이 되자 원래부터 나의 자리였던 것처럼 하던 업무나 일들이 능숙해졌고, 열심히 하는 만큼 주변에서도 인정해 주고 칭찬해주는 이야기가 자주 들렸다.


  '김 팀장이 딱 있으니 우리 영업이야 일하기가 너무 편해', '카리스마가 김 팀장 만한 사람이 있겠어?', '원래 태어날 때부터 팀장으로 태어난 사람 같아요' 등과 같이 마치 그 자리는 나를 위한 자리로 채워지길 기대했던 사람들이 기다리던 그런 모습이었다. 난 차츰 이런 이야기들이 불편하지 않고, 당연하게 들렸고 오히려 경계를 해야 할 이야기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업무, 관계, 직장 생활 전반에 대해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것이다. 아무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내게 지나친 칭찬은 오히려 독이 된 꼴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좋다고 했지만 돌이켜보면 30대 중반의 나이로 뜻하지 않던 보직 공석에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를 운이 겹쳐 일찍도 팀장의 소임을 맡았고, 나의 승진과 주어진 권한들은 오히려 일찍 맞보지 말아야 했을 선악과가 되어버렸다. 첫 팀장 소임에 맡겨졌던 업무 또한 내게는 과중했었고, 13명이 넘는 팀원을 관리하기에는 내게는 어떠한 노하우도 없었다. 없는 노하우를 성실함으로 매우려다 보니 24시간이 부족할 때도 많았고, 한 동안은 일에 치여 힘에 붙이는 일도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퍼스트 펭귄'이 내 자리고, 앞으로도 그 길을 갈 리더라고 생각하며 4년을 다녔었다. 관리자 교육에 참석해서도 앞으로 10년 후를 그려보라는 강사의 요청에 진지하게 10년 뒤 나의 모습을 그렸었고, 멋진 리더로서의 내 미래의 모습에 취해 정말 마치 그렇게 될 것처럼 앞으로의 내 직장생활 20년을 그렸다.


   그 이후에도 회사만 바뀌었지 관리자로서의 내 삶은 변화가 없었고, 4년이라는 시간을 더 팀장 소임을 하고 나서는 나에겐 더 이상 리더라는 직함이 붙는 자리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한 편으로는 홀가분하고,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컸었다. 18년을 열심히 달려왔는데 막상 내려놓으려니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4년을 직책이 없는 사원으로 살고 있지만, 8년이라는 긴 세월에 내 이름 뒤에 따라붙었던 '팀장'이라는 직책의 그늘이 가끔씩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과거 관리자 교육 때 10년 뒤의 나의 모습을 그릴 때, 시간상으로 현재 시점쯤 될 듯싶다. '퍼스트 펭귄'을 꿈꾸던 그 당시에 그렸던 모습이 현재의 모습과는 많이 다름을 생각해 봤다. 4년이라는 시간이 단순히 과거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보냈으면 난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없었을 것이다. 단순히 4년이지만 내게는 과거 18년만큼이나 많이도 배우고, 성장한 4년으로 기억되고, 추억될 것이다. 늦은 나이에 칭찬에 춤추는 고래가 아닌 고래를 춤추게 하는 주변인으로서의 삶을 배웠고, 누군가를 빛나게 할 조연으로서의 삶을 배웠다. 또 내가 퍼스트 펭귄이 되기보다는 멋진 퍼스트 펭귄을 꾸준히 찾아다니는 세컨드, 써드 펭귄으로서의 인생을 알게 되었다.


  사람일이라는 게 늘 뜻대로, 계획한 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더 살아볼 만한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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