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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22. 2020

운전 못해서 부끄럽다고요?

운전은 당신에게 양보할게요

 "김 팀장, 정말 운전은 안 해? 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난 마흔일곱의 19년 차 가장이자, 21년 차 직장인이다. 사회적 통념처럼 이 나이쯤 먹은 남자가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아이가 있는 가장이면 당연히 운전은 기본이고, 집에는 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남들은 두 대, 세 대씩 가지고 있는 그 흔하디 흔한 차 한 대가 없고, 우리 집 재산 목록으로 차가 등록된 적은 혼인 신고 이후 없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47년 동안 난 운전을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일부러 운전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 정확히는 군대 가기 전 우리 집은 남들에 비해 조금은 부유한 편이었고, 그 당시 무척이나 아들 사랑을 보여주셨던 어머니는 전역만 하면 차를 한 대 사준다는 이야기를 가끔 하셨었다. 물론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 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군대를 다녀온 사이에 많은 일이 생겼고, 결정적으로 여러 차례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 떨어지면서 그 희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여러 차례 시험을 떨어지다 보니 운전면허 시험 보러 가는 게 너무 싫었고, 학교에 다니면서는 운전에 대한 필요성을 느낄 수가 없으니 당연히 졸업할 때까지 차일피일 미루며 시간이 지나버렸다.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 되었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외근을 나가도 회사 차를 굳이 가지고 나갈 일이 없어서, 운전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가끔 직장 선배들과 함께 외근 나갈 때에도 특별히 나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선배는 없었고, 혹시나 물어보는 선배에게도 운전을 '잘(?) 못한다'라고 하면 의례 운전면허는 있으나 경험이 없다고 생각하고, 본인들이 직접 운전을 했다. 아마 '운전 미숙자' 정도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딱히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 동기들은 내가 운전면허가 아예 없는 걸 알게 되었고, 이 작은 소문은 몇 년이 지나니 사장님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특별히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았고, 운전을 못한다고 핀잔을 하거나 창피를 주는 직원들은 더더욱 없었다. 물론 가끔 격 없이 지낸 친한 선배들은 술자리에서 한 마디씩은 했지만 그들의 장난에 악의가 없음을 알기에 특별히 상처를 받지도 않았고, 많이 신경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렇지 않던 나의 운전 경험이 한 번씩 삐걱대거나, 신경 쓰일 때가 있었으니 그건 다른 회사로의 이직 때였다.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업무적으로 운전을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때마다 번번이 진땀을 빼며 변명을 하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고, 나를 조금은 이상하게 보는 그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가 종종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일로 더 이상 스트레스받기 싫어서 운전면허란 놈을 한번 따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였고, 바쁜 업무와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나이는 차고, 나에게 운전대를 맡기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점점 없어져 갔다.

   그래도 가끔씩은 이런 생각들을 잊게 하는 일들이 생겼고, 지금 다니는 직장 팀장 시절일 때에도 비슷한 일로 혼자 끙끙거렸던 일이 기억난다. 한 참 외근을 많이 다니던 시절이라 당연히 혼자 나갈 때는 시내는 대중교통을, 지방 출장은 KTX와 택시를 이용했었다. 하지만 그 날은 영업부서 관리자와 함께 외근을 나가야 했고,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당연히 그분의 차로 이동을 하였다. 고객사 이야기를 나누며 참을 가던 중에 갑작스럽게 그는 나에게 평소 궁금했던 걸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팀장은 정말 운전 안 해?"

 최근 운전 관련해서 물어보는 직원들이 없어서 너무도 갑작스러웠고, 평소 같으면 그냥 면허가 없다고 이야기했겠지만 그 날따라 대답은 조금 엉뚱하게 나와버렸다.

  "아, 네. 운전 안 합니다. 특별히 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요. 애들도 다 커서 이젠 차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듣고 그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아, 운전을 하지 않는 무슨 이유가 있나 보네. 뭐 사고 같은 거 크게 나면 그럴 수 있지."

  난 그의 질문도, 대답도 아닌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 나의 침묵이 가져온 수긍으로 그냥 그 애매한 상황은 지나가 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그 관리자는 내게 더 이상 운전 관련해서는 일체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마 그 순간에는 내 마음이 예전과 같이 운전을 못한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게 싫었던 듯하고, 그렇게 에둘러 표현한 게 오해를 불러온 듯싶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스스로 정리한 듯 보였고, 그 이후로도 더 이상 나의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난 그 일 이후로도 오늘날까지 운전을 배우지 않는다. 당연히 운전을 배우지 않으니, 운전을 하지 못하고, 집에는 차가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우리 네 식구가 이동할 때에는 주로 가까운 거리는 지하철, 택시를 먼 거리는 KTX, 기차 등을 종종 이용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어릴 적부터 KTX나 기차를 자주 타던 우리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어릴 때 갖고 있던 기차 여행에 대한 로망은 별로 없었고, 차 없는 우리 집이 아이들에게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친한 동료 중 한 명은 남들보다는 조금은 특별한 차 없는 우리 가족 여행기를 책으로 한 번 써보라는 이야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렇게 차 없는 생활이 나에게나 우리 가족에게나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크게 불편함 없이 오늘도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가끔은 차가 있으면 여러 사람이 편하기는 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만 차가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나를 위해서 아직까지는 미뤄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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