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실패한 관리자였다

세 번의 실패 후회는 남지만 이젠 내 삶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게 됐다

난 실패한 관리자다

이직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팀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생겼다. 이직한 회사는 소프트웨어 보안 회사인데 나의 모든 커리어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업무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직 중이던 구성원들의 커리어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난 외향적인 성격이라 회사에 적응을 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업무적으로는 섞이지 못해 부담이 컸었던 때였다. 마침 회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형 사업을 수주하게 되었고, 해당 업무에 적격자로 내가 선택이 되었다.

 수주한 사업은 재직 중이던 직원들이 처리하던 업무와는 성격이 조금 달랐고, 내가 해왔던 업무와 연관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업무에 섞이지 못하는 나의 초조함이 남들이 꺼려하던 이 업무를 선 듯 맡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이렇게 반 자발적으로 맡은 업무는 많은 고비도 있었지만, 6개월의 긴 여정을 마치고 무사히 프로젝트 완수라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사업의 완수로 회사에서는 금융권 대형 프로젝트를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이 기회를 잘 잡아서 여러 차례의 대형 사업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이런 중요한 사업을 잘 마친 나에게 회사는 우수사원과 부서 내 최고 인사고과 등급의 포상을 줬고, 연봉도 이 결과에 따라 자연스레 높은 인상률로 보답했다. 이렇게 기분 좋은 회사 생활이 이어질 때쯤 팀에 팀장이 이직을 결정하며 팀장 공석에 대한 본부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본부장은 고민 끝에 나를 팀장 직책 적임자로 팀원들에게 제안했고, 팀에 제일 늦게 합류했지만 제일 연장자고, 전년도에 어려운 사업 완수와 회사 기여도를 고려하여 선임급 팀원들은 제안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이직하고 2년도 체 안되어서 일어난 일이었고, 팀장 직책 발령과 동시에 특별 승진으로 차장으로 진급도 하게 되었다. 한 명의 팀원으로 일하다가 13명이나 되는 조직을 맡게 된 매니저가 된 현실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고, 힘에 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업무는 익숙해져 갔고, 처음부터 매니저였던 사람처럼 난 그렇게 관리자가 되어갔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된 관리자도 아닌 내가 다른 사람과 주변 분위기에 떠밀려 맡은 관리자 자리에 어울리지는 않았고, 나 조차도 관리자로서의 업무 때문에 정작 한창 두 발로 뛰어다니며 일하는 것을 좋아했던 성향상 나의 일이 없어지고,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불안감이 마음속의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일주일에 한두 번 야근하면 될 일을, 매니저가 되면서 일주일에 5 일을 야근하게 되었고, 나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자 큰 축이었던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것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이런 고민을 한창 하던 내게 마음의 결정을 위한 두 가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첫 번째가 재정상태가 어려워진 회사가 최종 구조조정을 결정했고, 회사 내에서 큰 조직에 속했던 우리 부서에도 구조조정 대상자 두 명을 결정하라는 인사팀의 통보가 있었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고, 시간이 꽤 지난 일임에도 그때 내가 나가지 못한 것에 후회가 밀려든다. 대상자 두 명을 내손으로 결정해야 했고,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팀원들을 대상으로 면담과 깊은 고민으로 최종 두 명을 결정하며 난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두 번째가 나의 매니저인 본부장의 이직 통보였다. 가장 신뢰하고, 믿었던 사람의 이직 통보로 난 재직 중이었던 회사에 등대 같은 분을 잃은 기분이었고, 더 이상 팀을 끌어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자신감이 없어졌다. 떠나는 본부장을 붙들고 여러 차례 면담했고, 대표이사와 타 부서 본부장 면담까지 진행 후 나의 거취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이렇게 본부장의 이직과 동시에 난 타 본부 새로운 팀을 맡게 되었고, 기존에 몸 담고 있었던 부서의 팀원들을 져버리고 다른 팀으로 몸을 빼냈다. 그때까지 따라줬던 팀원들에게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나보다 나의 후임이 더 잘할 거라는 기대를 갖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렇게 옮겨온 부서에서 8개월을 근무하다 회사의 조직개편 및 떠나왔던 부서의 후임으로 있었던 팀장이 이직하며 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잠깐의 외도 같은 기분이었지만 어느새 다시 팀원들과 예전 같은 일상을 지냈고, 나도 다시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회사의 재정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이런 재정상태를 극복하고자 회사는 중대한 결정을 했다. 회사의 일부 솔루션을 다른 회사에 매각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예상된 시나리오였지만, 안정을 되찾아가던 내 몸과 마음을 밀어내는 회사가 야속하고 미운건 어쩔 수가 없었다. 5년을 몸 담았던 회사를 떠날 때를 직감했고, 때마침 좋은 제안이 와 인터뷰를 보고 팀장이라는 보직과 좋은 조건에 이직을 결정했다.

 내가 이직을 결정하고 회사에 통보했을 때 내게 회사는 새로운 제안을 했고, 내게는 또 하나의 받지 말아야 할 숙제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수한 회사로부터 부서 전체와 개발부서 일부가 가는 조건으로 회사는 계약을 했고, 나를 끊임없이 설득하는 과정에서 부서원들이 흔들리지 않게 나의 다른 회사로의 이직 결정을 최종 퇴사일까지 얘기하지 말라는 회사의 경고성 부탁이 있었다. 난 이렇게 퇴사일을 얼마 남겨놓지 않는 날까지 부서원들에게 함께 갈 것같이 얘기했고, 또 한 번 부서원들을 져버리고 관리자로서의 소임을 다 못한 채 회사를 떠났다.

 이렇게 옮겨온 회사에서는 전 회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나도 발로 뛸 수 있는 작은 조직을 생각했고, 내가 생각한 대로 팀원이 몇 명 되지 않는 소조직을 만들어 직접 일하고, 관리도 하는 매니저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5년 가까이 좋은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열심히 뛰었고, 웃었고, 그리고 땀을 흘렸다. 일하면서 후회는 없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서 전 직장에서의 후회나 좋지 않은 기억들은 어느 정도 잊히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않은 곳에서 나의 조직생활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여러 차례 바뀐 매니저 중에 사람은 가볍지만 뒤끝이 없다고 생각했던, 업무 능력은 부족하지만 사람은 좋다고 생각했던 매니저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문제의 발단도 작은 곳에서 생겨났고, 잘해보자고 말했던 조언은 마치 그의 역린을 건드린 꼴이 되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뒤끝이 있었고,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부터 그는 끊임없이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고, 맡고 있던 팀에 부서장으로서의 압력을 행사했다. 시간이 지나며 나에게도 이런 부서장에 대한 반감이 생겨났고, 더 이상 함께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면서 서로 간의 감정의 골은 깊어져 버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웬만한 실력자나 회사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관리자와 싸워서 이기는 부서원은 흔하지가 않았고, 아무리 팀장이라는 직책을 갖고는 있지만 부서장과의 차이나는 레벨은 극복하기 어려웠다. 소통 창구 자체가 달랐고, 억울함을 하소연할 창구를 찾기에는 난 조직에서 너무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머리를 숙이기에는 당시 난 아직 많이 부족했었다. 이렇게 인사 위원회가 열렸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되어버린 그 싸움은 뻔하게 끝이 났다. 팀 해체와 보직 해임이라는 회사에서는 이례적인 인사 조치를 결정했고, 난 자발적이지는 않지만 이렇게 좋아했던 팀과 팀원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러 번 겪었던 결정의 순간을 후회하고 있다. 내가 관리자로서 조금 빠르고, 바른 판단을 했으면 어땠을까? 조금은 내게 손해가 오더라도 여러 사람의 관리자로서 생각해봤으면 어땠을까? 좋았던 기억들은 아련하게 잊혀 가지만 그렇게 아쉬운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깊고, 진하게 머릿속 어딘가에 새겨지는 것 같다. 이렇게 세 번의 실패는 내가 다시 관리자로 설 수 있는 스스로의 잣대에서 엄격한 기준을 새로 세웠고, 그 책임과 부담을 스스로에게 지우는 게 싫었다.

 난 지금은 관리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어떤 관리자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하는 팀원도 아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팀원은 팀원인데 혼자 하는 일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끌고 나가야 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업무에 만족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관리자로서의 책임감이나 부담은 없다. 또 이렇게 내 일만 하며 지내며 나의 가장 중심인 가정을 좀 더 챙길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난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주고, 후회 없는 일상을 보내는 것에 감사한다. 직장에서는 실패한 관리자지만, 나와 가족을 책임지고, 보살피는 막중한 책임을 가진 가장으로서의 관리자 소임에는 만족하고 있다.

여러 번 길을 돌아왔지만 난 나의 위치에서 사랑하고, 아끼고, 기뻐하며 행복하게 사는 지금이 좋다. 난 지금의 내 삶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