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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28. 2020

이래서 당근, 당근 하는군요

딸아이의 당근 첫 거래

얼마 전 딸아이가 '스피드 스텍스'를 진열해 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딸아이는 아내에게 진열 구도나 사진의 각도 등을 물어보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난 이런 딸아이의 목적이 궁금해 뭘 할 건데 그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는 거냐고 물었더니 딸아이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응, 당근(당근 마켓)에 올려서 팔려고"


*스피드 스택스 : 빠르게 컵을 쌓고, 다시 컵을 접는 놀이용 컵 세트


딸아이가 이야기하는 당근이 아내가 작년부터 꾸준하게 애용하는 중고거래 오픈 프리마켓임을 알았다. 얼마 전 7~8년 이상을 사용하던 다리미 판을 재활용으로 보내고, 새로 구매한 곳도 이 오픈마켓이었다. 아내와 가볍게 산책하며 근처 아파트 단지에 물건을 함께 받으러 가면서 더욱 믿음이 갔다. 주변 이웃들끼리 착한 가격으로 자신은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팔거나, 사는 재미있는 사이트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딸아이가 말하는 '당근'은 이것저것 나눔 하고, 사기도 하고, 팔기도 했던 그 오픈 마켓이었다. 난 아이에게 사용 방법이나 물건을 사고, 파는 방법들을 알고 있는지 물어봤다. 물론 딸아이가 엄마에게 코칭을 받고 시작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첫 온라인 거래이기에 온라인상의 예절이나 주의사항들을 상기시키기 위해 건넨 말이었다. 


이렇게 딸아이는 '스피드 스텍스'를 판매하기 위해 오픈마켓에 상품을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매의사가 있는 사람이 직거래를 위한 시간과 장소를 협상해 왔다. 아내는 판매를 위해 도움을 줬으니 거래 성사부터는 딸아이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주의였고, 난 그래도 14살 밖(?)에 되지 않은  딸아이가 걱정되어 결국 아이의 직거래 현장에 동행했다. 물론 '스피드 스텍스'를 찾는 연령대라고 해봐야 딸아이와 비슷하거나 어릴 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으로 거래 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아이의 첫 거래를 함께했다.


딸아이는 이날 이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 신발, 음악 CD, BTS 브로마이드까지 오픈마켓에 내어놓았다. 그렇게 등록한 물건은 아직까지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스스로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나눔의 실천과 공유 경제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를 늘리는 방법까지 알게 된 것이다. 기특하게도 딸아이는 소질이 있어 보였다.


딸아이보다 빨리 이 오픈마켓에 물건을 판매한 건 아들이다. 아들은 모 통신사에서 하는 행사에서 행사상품으로 받은 티셔츠(앵두가 그려진 로고가 있는)를 입지 않은 새 상품 그대로 판매를 했다. 정확히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새 상품이다 보니 제법 높은 가격으로 판매를 성사한 걸로 안다. 한번 올려서 한 번에 바로 성공한 걸 보면 아들도 재능이 있다. 녀석 원샷, 원킬이다


물론 아내도 당근을 무척 사랑한다. 주말이나 휴일 집에 함께 있다 보면 '당근', '당근' 하는 알림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 아마도 관심 상품이나 구매의사가 있는 상품들을 알람 설정을 해놓아서 그런 것 같다.


아내는 얼마 전 이 오픈마켓에 물건을 내어놓으면서 아이들과 한바탕 입씨름을 해야만 했다. 4년이 조금 넘은 LED 32인치 TV를 판매 등록하면서 등록할 가격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이 TV 얼마에 올릴까요? 철수 씨"

 "다른 곳에 올라온 비슷한 연식에 시세를 보고 비슷한 가격대로 올리면 되지 않을까요?"

 "음, 안 그래도 찾아봤는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 높은 가격대에 올려놨더라고요. 우리랑 크기도 같고, 5년 썼는데 8만 원에 내놨어요."

 "그럼 비슷하게 내어놓으면 될 것 같은데요."

 "그거 며칠째 안 나가고 있던데요. 난 3만 5천 원에 내어놓을까 싶어요."


우리의 대화를 듣던 아이들은 갑자기 아내에게 말도 안 된다고 난리다. 아들은 목에 핏대까지 세우고 곧 달려들 기세다. 아내는 자신의 거래에 폭발적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어이가 없고, 황당해했다. 결국은 아이들의 주장인 판매금액 5만 원과 아내가 생각하는 적정 금액인 3만 5천 원의 절충이라고 생각한 4만 원에 제품을 판매 등록했고, 아내의 걱정과는 달리 제품 등록 후 바로 구매 결정됐다.


물건은 파주에 있는 노인 복지시설에 설치되는 제품으로 판매가 되었고, 구매자도 싼 가격에 좋은 제품을 샀다고 좋아했다. 물론 아내도 적당한 가격에 복지 시설로 가게 돼서 더 기쁜 듯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물건이 판매되고 나서도 아내에게 가격으로 여전히 불만을 제기했다. 아내는 아이들의 장사 속을 마냥 반대할 수 없어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과 이해를 구했고, 이 TV 판매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최근 이 중고거래 오픈마켓의 열기는 한 없이 뜨거운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온라인 마켓들 중에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하는 몇 안 되는 중고거래 마켓이다. 위치 기반으로 자신의 주변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파는 공유경제의 좋은 사례인 듯하다. 게다가 지역 인증을 통한 직거래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명성도 어느 정도 보장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공유 경제나 나눔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 등을 몸소 실천하면서 아이들도 많은 걸 배운다. 스스로 거래를 통해 돈을 벌고, 필요한 물건을 사면서 더없이 공익적인 목적의 오픈 마켓인 것 같다. 물론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라 공익적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내와 나에겐 나눔의 기쁨과 착한 가격에 좋은 제품을 구할 수 있게 해 주니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특히 여러모로 우리 아이들에게는 많은 도움과 배움이 되어서 난 앞으로도 아이들의 당근 활동을 지지할 것이다.


 "아빠, 오늘 올려놓은 재킷은 아직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만 있고,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지수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어. 가격을 내려. 그럼 관심 가진 사람들이 바로 연락이 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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