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Jun 02. 2021

우릴 놀라게 한 열아홉 아들의 연애 철학

아들은 진정한 페미니스트였다

 "아가씨. 우리 OO 카페에 있을게요. 조금 이따 봐요"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다. 이런 아들을 키우면서 아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많다. 아들이 늘 좋아하는 논리적, 합리적, 외향적, 생산적, 계산적 등등. 아들을 키우면서 주변에서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내가 아들을 봐올 때 가장 생각나는 두 가지 단어는 합리적 그리고 계산적이라는 단어다. 가끔은 합리적인 사고가 지나쳐 자기 합리화에 빠지기도 하지만 항상 자기 자신을 알고, 향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아들이 갖고 있는 생각에 놀랄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미처 알지 못하는 아들의 일들을 아내의 지인 혹은 내 지인으로부터 들을 때면 아들에게 저런 면까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얼마 전 아들의 영어 과외 선생인 친척 여동생을 만난 적이 있었다. 고양시로 이사 온 지 5년이 다 되었지만 근처에 사는 여동생을 본 건 고작 한 번뿐이었다. 과거 함께 서울 살 때만 해도 일 년에도 여러 차례씩 만나고, 함께 놀러 다니기도 했었다. 하지만 친척 여동생이 일산으로 이사를 가면서부터아내가 자주 연락은 했지만 정작 만나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고양시로 이사를 오고 나서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와 친척 여동생은 가끔씩 연락을 이어왔고, 아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동생이 영어 과외를 맡으면서 종종 만남도 갖게 됐다. 그렇게 아들을 맡긴 것도 만 이 년이 지났다. 얼마 전 아들이 영어 과외를 가던 날 친척 여동생에게 전할 말을 아들을 통해 전했다.


 "아들, 고모한테 가면 아빠가 중간고사 끝나고 밥 한 번 먹자고 전해줘"

 "알았어요. 다녀올게요"


그렇게 아들에게 막상 말을 전했지만 진정되지 않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약속했던 모임을 선 하자고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 포함해 두 가족이 모이면 일곱 명이 되는 문제 때문이었다. 주말 산책길에 아내와 이 문제로 상의를 했다.


 "아가씨, 언제 만나죠? 어른만 넷이 만나야 하나. 아니면 다음으로 미뤄야 할까요?"

 "글쎄요. 5인 집합 금지도 있으니 어른만 만나야 할 거 같은데. 아니면 이번에는 수경이하고 둘이만 보던지요"

 "걷다 보니 아가씨 사는 동네 근처네요. 전화나 한 번 해봐야겠어요"


그렇게 아내는 친척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지만 아쉽게도 동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을 기약하며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를 만났다. 우산도 없고 해서 아내와 난 근처 주상복합 건물로 비를 피했고, 그런 찰나에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가씨, 오랜만이에요. 지난번에 밥 먹자고 한 것도 있고 산책하다 아가씨 생각나서 연락해 봤어요"

 "언니, 정말 오랜만이네요. 전화를 못 받았어요. 언니, 지금 어딘데요?"

 "우리 산책하다가 비 와서 OOO 지하에 잠시 들어왔어요"

 "언니 너무 잘됐네요. 우리도 지금 OOO 주차장이요. 살게 있어서 나왔어요. 언니 어디 들어가 있어요. 그리로 갈게요"

 "잘됐다. 우리 게이트 1번 쪽에 OO 카페에 있을게요. 조금 이따 봐요"


그렇게 우연히도 친척 여동생과 함께 자리를 했고, 2년여 만에 만난 자리에서 안부를 서로 물으며 짧은 시간 회포를 풀었다. 그런 와중에 여동생에게서 아내와 내가 알지 못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키우면서도 가끔 놀랄 일이 있었지만 이번 일로 아들의 또 다른 면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됐다.


 "언니, 민수 정말 대단한 거 같아. 내 조카지만 깜짝깜짝 놀라요"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민수는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맺고 끊는 게 확실한 거 같아요. 보면 수업 시간엔 딱 '선생님'으로 부르다가 수업 끝나고 갈 때면 '고모'라고 불러요. 그게 2년 동안 한 번의 예외가 없었어요. 수업시간 이외에는 볼 일이 없어서 쉽지 않은데 공과 사를 딱 잘라서 구분해. 가끔 신기하다니까요"

 "그러게요. 우리 아들이지만 정말 그런 건 확실하네요"


친척 여동생과 아들 간 족보를 따지면 팔촌 사이다. 게다가 아들 7살 이후에 10년 만에 사제지간으로 만났으니 좀처럼 고모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렵고, 어색한 사이일 텐데 적당한 선에서 공과 사를 구분하며 사제 지간과 고모, 조카 사이를 오가며 나름의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게 너무 신기했다.


 "오빠, 민수 여자 친구 아직 만나는 건 알죠?"

 "그럼. 꽤 오래됐는데 아직까지 잘 만나는 거 같아"

 "아가씨, 그런 건 아마 오빠 닮았나 봐요"

 "지난번에 민수 얘기에 깜짝 놀랐잖아요. 수업하다가 영어 지문이 이성 관계의 다툼에 대한 지문이었거든요. 그래서 민수한테 너희 커플은 안 싸우냐고 물어봤죠"

 "당연히 싸운다고 했겠지"

 "아뇨 자긴 한 번도 안 싸웠데요. 그래서 그렇게 오래 만났는데 어떻게 싸우지 않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민수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어요"

 "뭐라고 했는데요? 3년이 다되어 가는데 싸운 적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민수가 글쎄 '그냥 져주면 돼요"라고 하더라니까요. 내가 그 바람에 남편에게 한 마디 했잖아요. 열아홉 살 조카보다 못하다고"


내 아들이지만 놀랄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아들을 떠나서 열아홉 살짜리 생각에서 나올 만한 사고는 아닌 것 같아 신기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런 생각을 3년이나 지켜온다는 게. 아내도 옆에서 여동생의 말에 아들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됐다고 얘기했다. 여동생은 아들의 이런 모습이 집에서 보고 배운 게 그렇다 보니 나가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거 아니겠냐고 나를 한껏 부추겼다. 그러면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며 여동생이 이야기한 게 타인이 아닌 고모가 본 조카로서의 시선이라 백 퍼센트 객관적이지는 못할 거라는 게 아내의 생각이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어릴 적 아이들은 부모를 보면서 성장한다. 과거에 어른들이 친구를 집에 데리고 가거나, 이성 친구를 사귈 때 습관처럼 물어본 말이 있다. '부모님은 모두 계시고', '아버지는 뭐 하시니' 등과 같이 조금은 불편하다 싶을 정도의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막상 부모가 되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자라나는 환경이, 아이들에게 비치는 부모의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종종 깨닫게 된다. 오늘따라 새삼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들 덕에, 아내 덕에 새삼 잘 살아온 또 하루를 기억하게 됐다.


 '고맙다. 아들! 이렇게 아빠 닮아 반듯하게 자라줘서'

이전 04화 이래서 당근, 당근 하는군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