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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21. 2021

딸아이 카드가 한도 초과된 이유

야무진 씨와 허술한 양이 우리 집 웃음 코드죠

 "안녕하세요~ 이 야무진 씨"

 "아이고, 안녕하세요~  김 허술한 양"



우리 집에는 두려운 존재가 둘 있다. 아직까지는 두려움 자체가 예측 가능하지만 언젠가는 두 세력의 충돌이 늘 걱정인 존재들이다. 그 존재중 하나는 아내이고, 하나는 딸이다.


아내는 2년 뒤면 태어난 지 반세기가 지난다. 아마 인생 반환점쯤은 이미 돌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젠 누가 뭐라고 해도 갱년기 대기표 정도는 받아 들지 않았을까 할 나이다. 딸아이는 감정 기복이 가장 심한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북한의 김정은조차 무서워한다는 바로 중2병을 앓을 시기에 있는 중학교 2학년이다. 한술 더 떠 가장 예민하고, 짜증이 많은 열아홉 고등학교 3학년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 아들도 있지만 두 여성의 잠재력에 비하면 존재감이 약하다. 그리고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을 자청하는 나. 이렇게가 우리 가족의 구성원이다.


누가 봐도 파이팅이 넘치는 구성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막강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음에도 남들이 우려할 만한 긴장감 넘치고, 박진감 있는 생활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매일매일 웃음이 넘쳐나고, 항상 즐거움을 곁에 두고 산다. 얼마 전까지 우리 집 가훈은 '웃으며 살자'였다. 집에 있으면 딸과 아내의 티키타카 때문에 우리 집 웃음 게이지는 한층 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안녕하세요~ 이 야무진 씨~"

 "아이고, 안녕하세요~ 김 허술한 양~"

 "(서로) 반갑구먼~, 반가워요~"

 "근데 엄마, 아빠도 이름 하나 짓자. 아빠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음, 너희 아빠가 조금 허당끼가 있잖아. 그래서 '김 허당' 어떨까?"

 "딱 좋네. 아빠~, 아니 김 허당 씨 맘에 들어요"

 "하하~, 내가 두 모녀 때문에 오늘도 웃는다 웃어"


아내와 딸은 서로를 야무진 씨, 허술한 양으로 부르곤 한다. 아내와 딸아이는 코로나 이후로 더 사이가 돈독(?)해졌다. 학교를 다닐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으니 사이가 더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이렇게 종일 붙어 있으니 딸아이의 삼시 세끼를 다 챙겨야 한다고 아내는 늘 불만이 많다. 아내는 딸에게 가끔은 밥 준비를 직접 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번번이 딸아이는 이런 아내의 호의(?)를 거절한다.


오늘도 퇴근하고 갔더니 주방은 무척 분주했다. 물론 분주해 보이는 건 아내뿐이다. 학원 갈 아들을 위해 저녁 준비를 서두르던 아내는 어느새 짜증 지수가 조금 오른 상태였다. 20년을 함께 살다 보니 아내의 작은 말 한마디, 사소한 표정 변화만으로도 그런 미세한 분위기까지 알게 됐다. 학원 가기 전 아들이야 그렇다 지만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 삼매경의 딸아이가 조금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의 날 선 말 한마디가 딸아이를 겨냥했고, 결국 쏜살같이 딸을 향해 쏘아졌다. 


 "아이코, 우리 허술한 양은 어쩜 저리 눈치가 없을까?"

 "하~, 무슨 일 있으세요? 야무진 씨?"

 "엄마가 바삐 부엌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도 코빼기를 안 비추고. 아주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가시겠네"

 "전 주방일은 잘 못하는지라. 하하, 죄송합니다"

 "말을 말아야지. 철수 씨, 제가 저렇게 말을 안 들어요. 김지수 똑바로 앉아라. 허리 틀고 앉지 말고"


이런 아내의 날 선 말에도 아랑곳 않고 딸아이는 여전히 폰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눈치를 살피던 아들이 슬며시 주방으로 와 물컵이며 반찬들을 식탁으로 옮겼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아내는 학업에 지쳐 있을 아들에게 식탁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꺼내놓은 반찬들을 식탁으로 옮기면서 아내는 여전히 폰을 하며 소파에 앉아있는 딸아이를 한 번 흘겨봤다. 하지만 딸아이는 이런 아내의 시선을 본체 만 체다. 이걸 보다 보다 참지 못한 아내는 아들 밥상을 다 차리고는 딸아이가 앉아있는 소파로, 정확히는 딸아이 위로 쓰러지듯이 앉았다.


 "어머, 어머~ 왜 이러시는 거죠?"

 "허술한 양이 일을 안 도와줘서 그런지 너무 힘이 드네요. 기운도 없고, 어지럽기도 하고요."

 "소파가 이렇게 넓은데 꼭 저한테로 쓰러지셔야겠어요."

 "딱 이 자리에 왔더니 어지러워졌어요."

 "자자, 오늘의 승부는 야무진 씨 윈~, 윈~!!!"


하루하루가 이런 식의 전개다. 내가 말리지 않으면 끊임없이 티키타카다. 아내는 항상 얘기한다. 집에 지수가 없으면 심심해서 살 수가 없을 거라고. 마찬가지 이유로 딸아이도 이런 아내와의 티키타카를 무척이나 즐기는 눈치다. 보통의 중학생들과는 달리 딸아이는 아내가 밖에 나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심심하지 않고, 늘 즐거우니까 그렇다고 한다. 둘은 너무도 즐겁고, 행복한 모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딸아이를 물고, 빨면서 살더니 아내는 딸아이를 너무 사랑한다. 물론 아들과 나도 사랑하지만. 그래서 앞으로도 아내와 딸 사이의 티키타카가 기대된다. 오늘도 그런 모녀 때문에 내가 더 많이 웃는다. 그래서 우리 집은 더 최강의 가족이 되는 것 같다. 끊이지 않은 웃음과 행복 때문에.



어제 아내와 딸아이 모두가 약속이 있어서 외출했다. 오랜만에 서로의 친구들과 밖에서 약속이라 두 사람 모두 즐겁게 외출을 마치고 집에 귀가했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는 딸아이를 불러서 평소같이 않았던 딸아이 지출을 얘기했다. 


 "지수~, 오늘 뭘 샀길래 엄마 전화로 체크카드 한도 초과 문자가 와?"

 "하하, 문자가 갔구나. 내가 오늘 엄마를 위해서 플렉스 좀 했지"


그렇게 말을 한 딸아이는 양손으로 아내에게 '올리브 O' 쇼핑백을 건네며 조금은 머쓱한 표정으로 아내와 눈을 맞췄다. 아내는 쇼핑백에 든 화장품을 뜯어보며 감동 그 이상의 표정이다. 딸아이에게 무한 감동을 받은 눈치다. 이렇게 예쁜 딸이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뇌물(?)로 이틀 동안은 아내와의 티키타카에서 딸아이의 승전보가 울릴 듯싶다. 참고로 딸아이의 체크카드 하루 한도는 3만 원이다. 3만 원이 넘는 화장품 덕에 딸아이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 밥을 사 먹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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