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견되었던 일이었지만 막상 출근길 지하철에서 아버지의 전화로 들었던 어머니의 부고 소식은 내 머리와 가슴을 비워내 날 한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만들었다. 급하게 준비해 내려간 장례식장은 이미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장례식 준비를 어느 정도는 해놓으셨고, 그 빈소 위에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 영정 사진을 보니 어머니의 주검이 그제야 보였고, 이젠 더 이상 뵙지 못한다는 현실이 뭉클했던 가슴을 두드려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상주복을 입고 손님을 맞고 장례를 치르며 불과 한 해전에도 할머니 장례식으로 상주복을 입었었는데 그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내 마음의 슬픔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긴 병환 지친 몸과 마음으로 마지막 여생이 힘이 드셨지만 난 이제라도 어머니가 편한 곳으로 가시길 간절히 바라고 바랬다. 하나, 둘 손님을 치르며 시간은 지나갔고, 보고 싶지 않았던 외가 친지들도 먼 길을 찾아와 어머니의 마지막에 인사를 했다. 어머니의 형제, 조카들이지만 나에겐 아버지 사업 실패와 함께 등 돌리고, 우릴 멀리하려 한 남보다 못한 친척일 뿐이었다.
아무리 그들이 내겐 그런 존재라도 어머니에겐 형제들이니 당신들의 동생, 언니의 주검 앞에 슬픔은 당연한 것이라는 그 사실까지는 부인할 수가 없었고, 찾아와 주신 게 고맙고, 감사했다. 하지만 그 고마운 마음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고, 내 마음속 고마움이 사라진 것은 서로의 이기심에서 발단이 되었다. 어머니 빈소 영정을 지키며 지친 몸을 쉬고 있던 내게 외사촌 형이 다가왔고, 그래도 나와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유일한 그의 입에서 그의 이기심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응? 아, 어머니 앞으로 금융권에 아버지 사업 때문에 20년 전 상환 못한 게 있는 거 같아서 아버지랑 상의해서 상속 포기할 생각이야."
"아, 그거 상속포기 말고 한정승인으로 해. 상속 포기하면 고모 형제들까지 모두 상속 포기해야 하거든. 우리 아버지나, 고모들까지 모두. 장례식 끝나면 나한테 전화하면 방법이나 절차 알려줄게."
난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자신들의 부모와 형제들에게까지 귀찮은 일을 만들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지금 어머니를 잃은 내게, 그것도 어머니 빈소 영정 앞에서 하고 있었다. 난 한 동안 그 외사촌 형의 이기적인 발상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의 배려 없는 태도에 너무 화가 났다. 결국 그가 근처에 있었지만 그의 언행으로 불쾌해졌던 내 심사를 토해냈고, 마치 그가 들으라는 듯이 난 거침없이 내 감정을 쏟아냈다. 결국 듣고 있던 그도 힘이 들었는지, 아니면 미안했었는지 자리를 피했고, 더 이상 그의 입에서 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과 상의해 한정승인 절차를 밟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고향을 방문하고, 거주지역 구청을 방문했다. 이렇게 두 달을 준비해 한정승인 판결이 난 법원 판결문을 받았고, 어머니 생전에 연결고리를 또 하나 끊어낸 기분이라 마냥 홀가분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처음 상속 관련 법 절차를 처리하다 보니 분쟁이 일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이 했지만 판결을 받고, 신문 공고를 낸지도 어느새 5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생각했던 그 어떤 분쟁도 일지 않았고, 그렇게 그 날의 서운했던 기억도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다가왔다. 외사촌 형의 그런 마음은 결국 자신의 부모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생각이었고, 당연한 자식 된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머니를 잃고 상심한 나를 붙들고 그 상황에 이야기한 것은 배려가 부족했던 그의 조급함이 만든 현실이지만, 얼굴을 보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고 가끔씩 통화만 하는 사이에 전화로 불쑥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상황까지 생각해보니 그의 조급함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나에겐 아버지 사업 실패 때 외가 친척들이 보인 태도가 미웠고, 상처가 됐지만 그래도 어머니에겐 한 부모 아래에서 나온 형제라는 사실을 간과했었다. 아마 어머니께서도 가시는 길에 당신의 형제들에게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처리한 걸 아시면 더 홀가분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늘나라에 가시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난 뒤늦게 그 외사촌 형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작년 12월에 어머니를 보내 드리고 올해부터는 명절 제사를 우리 집에서 지낸다.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며 집에서 지내는 두 번째 제사상에 그 날의 잔상이 떠올랐다. 아직은 이렇게 준비하는 제사 음식이나, 우리 집 거실에 펴놓은 제사상이 익숙하진 않지만 한 해, 한 해 보내다 보면 작년의 아픔과 슬픔도 추억으로 지나갈 것이라는 걸 안다. 올해는 코로나로 아버지가 명절에 올라오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셔서 아버지 없이 지내는 첫제사인데, 조금은 걱정되지만 어머니를 오랜만에 뵙는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차례상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