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하면 늘 생각나는 색상이 노란색인 것 같다. 노란색 개나리도 그렇고, 겨우 내내 추위에 꽁꽁 싸매었던 옷 때문에 보지 못했던 노란색 원복을 입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예쁜 아이들의 모습도 그렇다. 특히 학교 앞에 아이들의 시선을 한껏 끌며 앙증맞게 작은 사이즈와 귀여운 자태를 뽐내는 녀석들의 색깔도 바로 노란색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이 '삐약, 삐약' 울어대는 녀석들을 봄만 되면 학교 앞에서 만날 수 있었고, 학교가 끝나고 교문 앞을 나서면 자주 박스에서 울어대는 녀석들 모습에 넋이 나가 시간을 보내다 집에 늦기 일쑤였다. 그 어린 녀석이 늘 눈에 밟혀 집에 오면 어머니에게 사달라고 졸라댔고, 매번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아서 울기도 여러 차례였던 것 같다.
"엄마, 병아리 사 줘요. 내가 밥도 주고, 잘 키울게요."
"철수야, 안돼. 병아리가 커서 닭이 되면 어쩌려고."
"엄마, 닭이 되어도 예쁜 병아리 닭이 될 거예요. 그리고 병아리가 얼마나 작은데요. 닭이 되려면 엄청 오래 걸릴 거예요."
"아 휴~"
그렇게 매번 허락하지 않았을 때에는 어머니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우리가 살던 집은 마당도 없는 좁은 집이었고, 주인집 눈치에 쉽게 키울 수 없었음을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가 학교 앞에 자주 나타나는 탓에 어머니의 거절에도 난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고, 꽤 오랜 기간 동안 어머니와 이 병아리를 놓고 입씨름을 했었다.
"철수야, 병아리 아직도 키우고 싶어?"
"응, 엄마. 나 병아리가 너무 좋아. 꼭 키우고 싶어."
"병아리가 얼만데. 천 원이면 돼?"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병아리를 사달라고 졸라대는 나에게 천 원짜리 지폐를 건네며 병아리 사는 것을 허락하셨다. 나중에 알게 된 얘기지만 어머니가 주인 할머니에게 사정을 얘기했고, 그 당시 자상했던 할머니는 흔쾌히 병아리 기르는 것을 허락했다고 했다. 다만, 마당에서 병아리가 싸는 '변'은 깨끗하게 치우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걱정과는 다르게 할머니는 시원하게 허락하셨다.
이렇게 다음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난 병아리 아저씨에게 천 원을 건네고 병아리를 다섯 마리 샀고, 병아리를 담은 상자를 꼭 껴안고 그 먼 하굣길을 단숨에 달음질쳐 집에 도착했다. 녀석들의 '삐약'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예쁘고, 귀엽던지 나는 집에 있는 어머니에게 얼른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힘든 기색 없이 한 달음에 집에 왔나 보다.
내가 기뻐하는 모습에 어머니도 웃음을 지으시며 잘 키워보라고 응원하셨고, 그 날부터 병아리 다섯 마리와 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때 되면 밥 주고, 똥 싸면 신문지 바꿔주고, 날씨가 좋으면 주인집 마당으로 데리고 나와 풀어놓고 함께 놀기도 여러 차례였다. 이렇게 종종 마당에서 놀 때면 주인 할머니는 인자한 모습으로 '그렇게 좋냐'라고 물으시곤 했었고, 주인 할아버지는 닭이 되면 할아버지가 몸보신하게 한 마리 달라는 장난도 치셨다.
이렇게 여러 날을 보내며 난 병아리에 대한 마음이 더 깊어졌고, 내 생에 첫 반려계(鷄)와의 생활은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그날도 화창한 봄 날씨를 뽐냈고, 난 다섯 병아리를 이끌고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난 화장실이 급해져 화장실에 다녀오게 되었고, 병아리 다섯 마리만 홀로 뒀던 어린 마음에 볼일 보고 급하게 뛰어나오다 그만 넘어졌다. 내가 넘어지는 모습을 본 주인 할아버지가 다치지 않았을까 싶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에게 뛰어오다 그만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걸어오던 발걸음을 멈춰 서서 발아래를 보며 놀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이고, 이를 어째? 언제 여기까지 와있었던 거야."
할아버지는 병아리 무리 중 한 마리를 밟고서 놀란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셨고, 난 할아버지 발에 밟힌 무언가가 병아리인지 아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처음에는 할아버지의 반응에 할아버지를 걱정했지만, 까진 무릎을 절룩거리며 가까이 가본 난 할아버지 발 근처에 누워있는 녀석이 노란색 앙증맞고 귀여운 병아리임을 알고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처음에는 내 병아리가 아니고 다른 새나 참새 혹은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가 병아리를 키우시나 보다 하는 생각에 내가 풀어놓은 병아리의 숫자를 여러 차례 세어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누운 녀석은 몇 날 며칠을 나와 동고동락했던 녀석 중 하나가 맞았고, 난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고, 그 울음은 한 동안 계속되었다.
그렇게 난 병아리 한 마리를 보냈고, 병아리가 떠난 날은 밝은 햇빛을 받아 노란색 뽀송뽀송한 털이 날씨만큼 빛났던 그런 날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머지 네 마리도 시름시름하더니 학교를 다녀오면 한 마리씩, 두 마리씩 죽더니 삼일이 지나기도 전에 다섯 마리 모두 하늘로 갔다. 그렇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병아리 사육은 끝이 났고, 내겐 다시 키워보겠다는 용기가 더 이상 생겨나지 않게 되었다. 난 지금도 가끔 학교 앞에 나와있는 병아리들을 보면 40년 가까이 된 그날의 기억이 조각조각 맞춰진다.
그날 이후 노란색은 내게 어린 날 아픈 기억의 색으로 기억되었다. 지금도 곰곰이 떠올려보면 일주일 정도밖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박스 안에서, 마당에서 뛰어놀았던 녀석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를 처음 들었을 때엔 그 옛날 병아리의 기억으로 그 어떤 이별 노래보다 슬프게 들렸던 적도 있었다. 그날 병아리는 정말 그렇게 하늘로 날아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