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최진실 씨 발인하고 묘지를 여기 양평 쪽 어디에다 썼다고 하네요. 아마 그것 때문에 교통이 막히나 봐요"
2008년 10월 초 연휴가 끼여있던 주말 아침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나들이로 모두 들떠 있었다. 10월 초라 한낮의 날씨는 조금은 더웠어도 따가운 가을볕도 둘째 딸아이가 한 창 걸음을 떼고 열심히 걸을 때라 우리의 가을 나들이는 더없이 행복한 여행일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함께 살던 처남 차에 우리 네 식구와 처제까지 총출동하여 한껏 기분 좋게 여행지로 출발했고, 출발이 조금은 늦었지만 거리상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양평)이라 이른 오후면 예약해 놓은 펜션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지났지만 목적지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길 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들떠있던 기분도 어느새 가라앉았고, 배고프다고 보채는 둘째도 걱정이었지만 그때까지 잠을 자다 깬 아들은 속이 좋지 않아 멀미까지 느끼는 찰나였다. 아마도 차가 서행을 하더라도 멈추지 않으면 참을만했겠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량에서는 비위가 약한 어른도 멀미하기 마련이니 아들 속은 아마 꽤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불편한 속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량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장시간 속이 비어서 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로 위에 파는 쌀 튀기와 술 빵으로 간단하게 허기를 때우며 불편해하는 아이들을 얼러가며 마음으로 막힌 길이 어서 뚫리길 빌고 또 빌었다. 중간에 가다, 서다 그리고 쉬다를 반복하길 네 시간이 다 되어서야 예약한 펜션에 도착할 수 있었고, 우린 무척이나 끔찍한 곳을 벗어난 안도감에 펜션에 서둘러 짐을 풀고 한 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이렇게 잠시 누워있다 보니 해는 어느새 늦은 오후의 풍경으로 바뀌었고, 길 위에 버린 시간에 조금은 허망했지만 오랜만에 나온 야외라 기분은 금세 다시 끌어올려졌고, 준비해 온 음식을 풀어놓고 본격적인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예약한 펜션은 잔디밭 마당이 넓은 집이라 17개월째 접어든 딸아이가 넘어지며 뛰어 놀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두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에 우린 금세 출발 전의 기분으로 돌아왔고, 남아있는 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열심히 아이들과 맛있는 저녁을 함께하고, 어두워지기 전에 잔디밭을 열심히 뛰어놀았다. 밤이 되니 서울에서 들어보기 힘든 풀벌레 소리와 밤하늘의 별은 여행의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다음 날 아침도 전날 저녁 좋았던 기분이 이어졌고 가볍게 펜션 주변을 산책하며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기 좋은 조금은 서늘해진 가을 공기를 마시며 우린 상쾌한 아침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일어나 펜션 앞마당에서 뛰어놀기 시작했고 우린 특별할 것 없는 아침을 즐기며 짧은 휴가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어제와 같은 교통체증을 겪기 싫어 우린 오후 일정을 포기하고 오전에 나서기로 했지만 생각만큼 이른 시간에 펜션을 나서지는 못했다.
출발을 서두른다고 했지만 12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고 그래도 난 어제 같은 교통난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바람은 금세 깨어졌고, 어디서 나온 차량들인지 알 수 없는 차들이 도로 위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어제의 악몽이 생각나면서 좀 더 서둘러 나왔어야 했나 하는 때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서둘러 교통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 폰을 검색 도중에 이 교통체증의 이유를 알게 되었고, 조금은 짜증이 났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런 모습을 본 아내는 폰을 들여다보던 내게 물었다.
"차가 너무 막히는데 이 근처에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네, 최진실 씨 발인하고 묘지를 여기 양평 쪽 어디에다 썼다고 하네요. 아마 그것 때문에 교통이 막히나 봐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난 아내는 고개를 주억되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듯해 보였고, 나머지 식구들도 더는 불평, 불만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앞 뒤로 줄 서 있는 차량들의 행렬에서 누군가를 보내는 아픔과 슬픔 그리고 아쉬움이 묻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가족, 부모, 형제들을 가슴에 묻고, 차디찬 땅에 두고 가야만 하는 유족을 생각하니 막혔던 교통체증에 짜증을 가졌던 마음이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내게 잠깐의 불편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아픔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에 돌아오는 길은 조금은 이해하고, 주변의 소중한 누군가를 잃지 않았다는 감사함을 갖고 돌아올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 짧았던 1박 2일의 시간이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그런 기억이 함께 한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더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녀가 간 이후 그녀의 동생까지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 너무 안타까웠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추억이 또렷이 생각나는 건 단순히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보낸 여행이 아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나에게 불편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픔이었던 그 날의 기억 때문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