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지금 당장 나가주세요

아들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 받던 날 생각난 추억 하나

by 추억바라기
죄송한데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퇴근했더니 거실 소파 위에 놓여있는 하얀 봉투가 눈에 들어온다. 봉투를 자세히 보니 동 복지센터에서 보내온 봉투였다. 봉투 겉면을 자세히 보니 받는 사람이 '김민수 귀하(세대주 : 김철수)' 아들 이름으로 되어있고, 봉투 하단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큰 글씨가 시선을 잡았다.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 송부"


봉투를 뜯어보니 봉투 속에는 '귀하께서 주민등록증 발급 연령이 되었음을 알려드리오니...'의 내용이었다. 이제 열여덟 살이 된 아들에게 보내는 국가의 첫 러브레터(?)였다. 이렇게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를 받고 보니 별 탈 없이 잘 커준 아들이 대견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들이 성장한 만큼 내 세월도 많이 지났음을 느끼니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의 입영통지서를 받으면 더 헛헛한 마음이 들겠지만, 마냥 어리게 보였던 품 안의 자식이 이제는 성인이 될 준비를 한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아직 내 눈엔 솜털 가득한 자식이지만 이제 곧 투표도 할 것이고, 군대도 가야 할 나이가 될 것이다. 세월이란 놈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오늘따라 더 실감이 난다.


아들의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를 보며 어릴 적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할까 봐 번번이 마음 졸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손상이 잘 안 되는 내구성 좋은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이지만, 내가 처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던 당시에는 종이로 된 주민등록증을 굵은 코팅지 같은 걸로 코팅한 재질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위조나 변형이 쉬웠던 걸로 기억이 난다. 실제로 위조해서 다니던 친구, 선배들도 있었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주민등록증 발급을 받을 때 당시의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처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시절 때만 해도 난 친구들과 어울려 들락거리던 호프집이나 민속주점 등을 출입할 때면 늘 이 주민등록증 때문에 긴장했었다. 내가 그토록 긴장했던 이유는 미성년자 출입 단속을 위해 주민등록증 검사가 종종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대학 1학년 때만 해도 남들보다 한해 빨리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스무 살이 되지 않았었던 나이가 항상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학교 앞 호프집, 민속주점은 자주 단속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모두 대학생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르바이트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같은 학교 대학생이어서였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학교 앞에서의 자리는 그래도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학교 앞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호프집, 민속주점을 들어갈 때면 입구에서부터 눈을 어디 두어야 할지 몰라 시선은 아래 위로 두리번거렸고, 괜히 함께 들어가는 친구들과 동갑이라는 걸 표시하기 위해 더 시끄럽게 대화하며 들어간 적이 많았다. 하지만 매번 이 방법이 통하지는 않았고, 가끔은 입구에서 덜미를 붙잡히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눈썰미가 있는 사장님이 자리를 턱 하니 지킬 때면 늘 조심은 하지만 7,8명씩 뭉쳐서 들어가는데도 긴 장사 내공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탁 집어내시는 신공이 신기한 적이 많았다. 아니 그때는 너무 어려 보였던 것도 한 몫한 듯하다.


"어이 학생. 잠깐만 여기 와서 신분증 좀 보여줘요."

"저요? 저 대학생인데요."

"그러니까 신분증 좀 보여줘요. 요즘 대학생이라고 하고 그냥 들어오는 친구들도 많아서요."

"..."


이렇게 덜미가 잡히는 날에는 예외 없이 퇴출이었다. 기분 좋게 함께 들어갔던 선배, 친구들은 나의 출생의 비밀(빠른 생년월일)을 알고서 놀릴 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하기도 했지만 자주 경험했던 동기, 친구들은 '또야?' 하는 표정으로 허탈해하며 그곳을 나왔다. 한 번은 입구에서는 무사통과했지만 분위기가 오를 때쯤 찬물을 확 끼얹은 적도 있었다. 주점 입구에서 유심히 보지 않고 주문할 때까지도 신분증을 운운하지 않아 조금은 마음을 풀고 술과 안주를 마음껏 시킨 적이 있었다. 안주와 술이 테이블 위에 놓였고, 동동주에 파전, 찌개까지 주문하고 한 잔씩 빈 뱃속에 넣으며 이야기 꽃을 피울 때 테이블 옆으로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조금은 걱정이 됐지만 이미 자리 잡고 앉은 지 꽤 시간도 지난지라 별일이야 있겠냐는 마음으로 그냥 신경을 쓰지 않으려는 찰나 아르바이트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 조금씩 오르던 몸안에 술을 확 깨게 했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사장님이 거기 계신 분(나) 신분증을 확인하고 오라고 하셨어요."

콕 집어서 아르바이트생은 날 지목했고, 넘어가던 술에 사리가 들려 한참을 컥컥거리다 난 아르바이트생에게 재차 확인했다.

"저요?"

"네, 정말 죄송한데 잠깐만 확인할게요."

"하하, 저 신분증 안 가지고 나왔는데요. 여기 함께 앉아있는 사람들 다 제 대학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 신분증 확인하면 안 될까요?"

"사장님이 꼭 손님 꺼 확인하고 오라고 하셨어요."

"지금 없어요. 죄송해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난 서 있던 아르바이트생을 무시하는 듯 친구들과 다시 이야기를 했고, 마음속으로는 그냥 아르바이트생이 가길 기대했다. 잠시 뒤에 우리 테이블로 나이가 있는 분이 와서 자신이 이곳 사장이라고 소개하며 재차 내 신분증을 요구했다. 난 아르바이트생에게 이야기한 대로 신분증이 없다고 우겼다.

"손님, 죄송한데 그럼 나가주셔야겠어요. 요즘 단속이 심해서 저희가 곤란해요."

대충 분위기를 보고 친구 한 명이 나가 달라고 요구한 사장님에게 재차 양해를 구했다.

"사장님, 지금 주문해서 먹던 것들이 있는데 마저 먹고 일어날게요."

"죄송합니다. 주문하신 음식들 비용은 따로 받지 않을게요. 지금 나가주세요."

"..."


난 또 한 번 친구들에게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고, 한참 물이 오르기 전에 깨진 판은 이미 식은 파전같이 그날의 자릴 ''하게 만들었다. 일부 친구들은 무안해하는 날 위해 '철수 때문에 생전에 없었던 무전취식을 하고 나왔다'라고 농담도 했지만 정작 그 자릴 깨트린 나로서는 미안한 마음이 깊었고, 그렇게 쫓아낸 주점을 보며 다신 그 주점에 오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정작 그 마음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고, 스무 살 생일이 지나자마자 난 당당하게 친구들과 그곳을 다시 찾았다. 마음속에는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길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머니에 있는 신분증을 만지작 거렸지만 그곳을 나오는 순간까지도 그때의 사장님은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조금은 싱겁게 자리가 끝났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그곳을 갔지만 신분증 요청의 날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오늘 아들의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를 보며 우습게도 무려 27년이 지난 그 날의 추억이 생각이 났다. 단순히 주민등록증이 주는 무게는 크지 않겠지만, 신분증을 발급받았다는 것 자체가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공식적인 신분을 부여받았다는 생각을 하니 그 날의 졸였던 내 가벼웠던 마음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진다. 단순하게 쫓겨날 것만 걱정했던 그 시절에는 그 주민등록증의 무게가 그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이 주민등록증은 나를 표현하는 최소한의 표현이며, 발급받으면서 주어지는 의무와 권리 또한 가볍지 않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 아들은 언제쯤 이런 무게를 알 수 있을까? 이건 가르쳐준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닌데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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