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이나 지난 일이다. 아직도 그 날의 일을 생각하면 아내가 잘못될까 싶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급하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에 고막이 터져나가는 듯하다.
퇴근하고 평소와 똑같이 평온한 우리 세 가족 저녁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둘째가 태어나기 전이라 우리 집에는 아내와 나, 이제 막 네 살이 된 아들까지 세 식구가 전부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동생이 함께 살았지만 고맙게도 독립을 하겠다며 근처로 이사를 나가 이젠 세 식구만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절이었다. 세 식구 살기에 적당한 크기의 아담하고, 포근한 집이지만 높은 지대의 위치하며, 오래된 주택의 연식 때문에 둘째가 태어날 때에는 낮은 지대의 평범한 다세대로 이사 가기로 마음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 날 오후 아내는 계단에서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고 했고, 마침 뱃속에는 둘째 아이가 있던 터라 가슴을 쓸어내린 하루였다. 다행히 저녁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아내는 엉덩이를 제외하고는 많이 아프다는 곳이 없었고, 나도 큰 탈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상을 치우고 평소와 같이 나는 거실에서 아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간 아내가 잠시 뒤 나를 찾았고, 난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에 조금은 늑장을 부리며 아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내의 상태는 심상치가 않았고, 아내의 안색은 하얗다 못해 파래지기 시작하며 숨이 안 쉬어진다는 말만 반복하며 괴로워했다. 네 살 된 아들은 엄마가 몸져누워있는 모습에 놀라 울음을 터트렸고, 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빨리 구급차를 부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고, 정신까지 나간 나머지 구급차 호출을 해야 하는 전화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았고 저장된 전화번호부에 아내 다음에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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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야, 언니가 쓰러졌는데 119 전화번호를 모르겠어. 119에 전화하려면 몇 번을 눌러야지."
처음에 내 얘기를 수화기 너머로 들은 동생은 오빠가 장난을 치나 싶었지만, 전화 건 내 목소리가 너무 떨리고, 허둥대는 것과 전화 건너로 들리는 조카의 울음소리에 상황 파악을 하고 내게 차분히 말을 건넸다.
"오빠, 진정하고 내가 119에 전화할 테니 오빠 전화로 구급대원이 전화 오면 시키는 대로 잘 따르고 있어. 내가 금방 갈게."
"어, 그래. 빨리 와."
그렇게 체 일, 이분이 지나지 않은 시간에 손에 쥔 폰으로 구급대원의 전화가 걸려왔고, 아내의 상태를 설명 후 구급대원이 일러주는 대로 아내의 입과 코에 비닐봉지를 가져다 대고 아내에게 크게 숨을 쉬라고 이야기했다. 난 구급대원의 조치를 따르면서도 순간 대단한 조치도 아닌 이런 민간요법 같은 단순 조치에 아내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거짓말 같이 아내의 호흡은 정상상태로 돌아왔고, 얼굴색도 훨씬 편안해 보였다.
"선생님, 아내분은 좀 괜찮아지셨나요?"
"네, 훨씬 편안해진 얼굴이에요. 대원님, 감사합니다."
"두 분 부부싸움하신 건 아니죠? 간혹 물리적 충격에 의해서 그럴 수도 있어서요."
"아니요. 그런 일 없었습니다."
난 처음 그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마 구급대원은 부부싸움에서 물리적인 힘을 아내에게 가해서 놀라서 온 증상이 아닐까 싶어 물어본 것인 듯했다.
"아내분같이 일시적인 호흡곤란 증상이 왔을 때에는 과호흡이나, 산소포화도가 높아져서 이런 증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응급조치를 했으니 이젠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3분 내로 도착하니 너무 걱정 마시고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보호자를 안심하게 만든 구급대원이 대단하게 생각되었고, 한편으로는 다양한 응급상황을 모두 겪었을 구급대원을 의심한 내가 잠시 부끄러웠다.
아내의 상태가 괜찮아지자 그제야 아들을 돌아봤고, 조금 전까지 울던 아들은 엄마가 괜찮아진 모습을 봐서 안심이 되었는지 어느새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언제 들고 왔는지 상처 난 곳에 바르는 '후시O' 연고를 가져와 아내에게 건넸고, '엄마, 괜찮아'라고 말하며 연신 아내를 걱정했다.
구급차가 곧 도착했고, 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구급차에 올라 집 근처 응급실이 있는 종합병원으로 이동했다. 응급실 의사는 갑자기 오른 고열에 의한 쇼크이니 수액을 맞으며 안정을 취하면 열이 떨어질 거라고 설명했다. 수액을 맞을 동안만 누워있다가 괜찮은 것 같으면 돌아가도 된다고 추가적인 설명을 하고는 의사는 응급실을 나갔다. 동생은 병원에 들렀다 어린 조카가 힘이 들까 아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간다고 했고, 응급실을 나서면서 내게 조금 전 통화한 내용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오빠, 아까 전화해서 나한테 119 전화번호 물어본 거 알아?"
"내가?"
"오빠가 언니가 쓰러지니 정신이 없긴 없었나 보다. 119 전화 걸려면 몇 번으로 걸어야 하냐고 물어봐서 나도 놀랬어."
내가 정말 그렇게 물었나 싶었지만 그 당시에는 뭐라고 말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동생과 아들을 보내고 응급실을 들어서며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게 되었고, 임신 상태였던 아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파왔다.
"영희 씨, 열은 내렸지만 밤새 어떨지 모르니까 병원에 그냥 있다가 아침에 들어갈까요?"
"아뇨, 민수가 더 놀랐을 거예요. 민수 걱정이 되어서 더는 못 있겠어요. 저 괜찮으니까 수액 다 맞으면 우리 집에 가요."
아내는 임신한 몸에 몇 시간 전만 해도 위험했던 상황이었지만 아들 걱정이 먼저였고, 이런 모성애는 배속에 있는 아이에 대한 마음과도 닿아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낮에도 아마 계단에서 넘어지는 순간 아이를 보호하려던 엄마의 마음이 컸을 테고 아마 앞이나, 옆으로 넘어지는 상황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주저앉았던 게 엉덩방아를 심하게 찧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다.
그런 배속 아이 걱정에 낮에는 괜찮았던 상태가 막상 내가 퇴근해오면서 조금은 긴장이 풀렸고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강한 엄마였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