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아내와 난 텔레비전 앞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드라마에는 주인공이 자신의 아이들을 베이비시터에게 맡겼지만, 아이들이 유별나 베이비시터가 그만둔다는 말에 무척이나 곤욕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화면 속 곤란해하는 주인공을 보며 자연스럽게 아내와 난 아이들 키울 때 얘기를 꺼냈다. 아들을 키울 때는 처음이라 아내와 난 둘 다 서툴렀고, 아들도 조금은 예민했었다. 하지만 둘째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순둥순둥 해서 아내는 애 키우는 게 둘째만 같으면 하나를 더 키워도 되겠다는 농담도 했었다.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아이들은 어느새 부쩍 커 한 녀석은 고등학생, 또 한 녀석은 중학생이 되었다. 우리가 훌륭한 부모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껴준 부모임에는 틀림없다고 자부하며 키웠던 것 같다.
"영희 씨, 민수는 첫째라서 우린 정말 책 보고 키우다시피 했잖아요."
"그러게요. 애들 키우는 게 다 그렇지만 민수는 잠투정이 좀 심하긴 했어요."
"그렇게 보면 지수는 정말 순둥이었죠."
"네, 지수 아기 때는 밤에 너무 잘 자서 아침에는 깨워서 젖 먹일 때도 많았잖아요."
큰아이를 키울 때는 층고가 있었던 조금은 오래된 연립주택 3층에 살던 때였다. 바로 옆집에 아들보다는 조금 형뻘인 아이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들이 어릴 때만 해도 아내는 연고가 서울이 아니다 보니 친구도 없었고, 만날 사람도 많지 않아 나에겐 늘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었다. 아들보다는 많지만 예닐곱 살쯤 되는 남자아이들이 있는 바로 옆집에는 아내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아주머니가 살고 있었고, 다행히 아내와 종종 인사하며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를 하곤 했어서 조금은 가까워졌던 때였다.
더위가 조금씩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어느 여름날 아내는 아들과 집에 있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는 두 돌이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들과 놀다가 아들 낮잠 잘 시간이 되어서 아들을 재웠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종종 시원한 복도의 냉기로 환기도 할 겸 현관문을 열어놓고는 했는데, 그날도 덥혀진 거실의 온기를 식히기 위해 아내는 현관문을 열어놓았다. 아내는 아들이 낮잠을 잘 때 집안일을 마치려고, 서둘러 주방과 욕실을 청소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집에서 아내를 부르는 소리에 아내는 복도를 내다봤다.
"민수 엄마, 집에 있어?"
"네, 길동이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응, 민수 우리 집에 있다고. 애 없어져서 놀랠까 봐 바로 왔지."
"네~에? 민수가 언제 그리로 갔데요. 아까 자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온 거 같아. 우리 집 거실로 언제 들어왔는지 길동이랑 놀고 있더라고. 나도 깜짝 놀랐어."
우리 집도 현관문을 종종 열고 지냈지만, 옆집도 자주 현관문을 열고 지낼 때라 생긴 일이었고, 그 후로도 가끔 있었던 일이다. 아들의 첫 가출에 아내도 놀랬지만,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난 놀라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웃음을 참으며 그날 저녁에 민수를 붙들고 꽤나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애 먹었던 기억이 난다. 큰 아이는 아들이어서 그런지 다른 집 남자아이들처럼 작은 사건, 사고 정도는 종종 일으켜서 아내와 내게 아이 키우는 생동감을 조금씩은 선물로 줬었다.
하지만, 딸아이는 아기 때부터 너무 얌전해 조금만 늦게 퇴근해서 들어가면 일찍 잠을 자고 있을 때도 있었고, 좀처럼 울지도 않아서 큰아이 키울 때와 너무도 달랐다. 아내는 딸아이를 키울 때 생각이 깊어졌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아내에게 지수 키울 때가 그렇게 좋았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지수랑 놀던 때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요즘 아내는 딸아이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 중학생이 된 딸아이가 아무래도 사춘기여서 그런지 아내와 내 말을 종종 듣지 않는 게 잔소리의 이유다. 친할 때는 둘도 없이 친하다가, 아내의 잔소리가 터져 나올 때면 딸아이는 입을 닫고 묵비권을 행사한다. 딸아이에게는 비밀이지만 내가 봐서도 아들 민수보다 딸아이 지수가 말은 더 안 듣는 편이긴 하다.
"영희 씨, 어릴 때 그렇게 얌전하고, 키우면서 편했잖아요. 아마 그래서 요즘 말을 부쩍 안 듣나 봐요. 아기 때 말 잘 들었던 게 억울해서 아마 한꺼번에 몰아서 말을 안 듣는 게 아닐까 싶네요."
자녀를 키우면서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보내는 많은 시간들은 함께한 시간보다는 각자 서로 다른 시간들의 합집합 시간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자녀들과 함께하는 교집합의 시간은 아주 작지만 부모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 교집합의 시간에도 아이들은 모르는 부모만의 시간이 있다. 정확히는 아이들이 너무 어려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은 부모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고, 아이들도 함께했지만 그 감동은 부모만이 소유할 자격이 있는 추억이다.
내 아이들을 키우며 지나온 시간들 모두가 소중했던 것처럼 내 부모님에게도 날 키우며 보낸 시간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추억까지도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될 것이다. 언젠가는 내 자식들도 나와 같이 부모가 된다면 나와 아내의 마음과 같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소중했던 시간이었음을 알아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우리와 아이들의 시간은 자주 혹은 가끔 교차하듯이 흘러간다. 내 부모님과 나의 시간이 그랬던 것처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