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 남편과 낙제점 사위 사이 어디쯤

만점 남편이고, 백점 아빠지만 낙제점은 면할 수가 없네요

by 추억바라기
연애할 때 내가 속았어요. 어른들에게 잘할 줄 알았는데...


아내와 결혼한 지 어느덧 20년이 되어간다. 우리 부부는 가끔은 삐걱대는 일도 있었지만 아내를 향한 변하지 않는 내 한결같은 마음과 이런 내 마음을 너무도 잘 아는 아내가 만나서 살고 있으니 삐걱대는 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도 늘 한결같았다.


아들을 키울 때는 한창 바쁠 30대 초반이었음에도 많은 부분 아내와 육아를 분담했었고, 아들의 이성 문제나 진로 문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쿨하게 때로는 함께 고민하는 멋진 아빠의 모습을 지켜가려고 애썼다. 딸아이와의 친밀도는 비교군은 적지만 많은 공감대를 가지려고 나름 애썼고, 실제로 비슷한 취미와 관심을 갖는 놀이 등을 함께 해왔다. 특히 우리 가족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은 많은 시간의 대화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저녁 식사 시간은 각자 하루를 보내면서 특별했던 일이나 가족들 간에 공유할만한 이야기들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했다. 오래전부터 우리 집 저녁시간은 7시 30분으로 정해져 있고, 중요한 일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저녁식사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우리 집에 불문율처럼 공공연히 지켜져 온다.


평소 저녁을 먹고 나면 늘 하는 아내와 나의 대화이다.

: "영희 씨, 저녁 잘 먹었어요. 오늘 음식들이 전반적으로 모두 맛있었어요."

아내 : "철수 씨는 매일 맛있다고만 해요. 그럼 내가 요리 실력이 늘지 않는다니까."

: "맛있는걸 맛있다고 하는 건데요. 이젠 쉬어요. 저녁 설거지는 내가 해요."

아내 :"아니, 같이해요. 그래야 빨리 끝나죠."

: "좀 늦으면 어때요. 소파에 가서 앉아 쉬어요. 설거지 다 하고 차 마셔요."


주말 오전 오랜만에 약속이 잡힌 아내가 외출을 한다. 저녁 먹기 전에 올 테니 그냥 쉬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나간다. 아내가 나가고 난 뒤 난 오늘 내가 할 일들을 정리해 본다. 잠깐 차를 마시고 오후에 할 일들을 해 놓고 나면 외출했던 아내가 돌아와서 핀잔 같은 칭찬을 한다.

아내 : "철수 씨, 다녀왔어요. 저녁 준비 이미 다 해놨나 보네요. 음식 냄새가 솔솔 나는 거 보면."

: "오늘 즐거웠어요? 저녁은 된장찌개 끓였고, 제육볶음 했어요. 괜찮아요?"

아내 : "오랜만에 좀 쉬지 그랬어요. 저야 좋죠."

: "청소도 했고, 빨래도 다 해놨으니까 내일 휴일은 영희 씨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아내 : "못 말린다니까요. 이러니 모임 나가면 내가 제일 잘 사는 거라고 배 아파하시는 분들이 자꾸 생기죠."


늘 오는 휴일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가족이 먹을 아침을 준비한다. 오늘 아침 메뉴는 내가 좋아하는 카레다. 가족의 건강과 내 취향을 고려한 건강식이다. 세 가지 이상의 야채와 성장기 아이들의 균형 있는 영향을 고려해 달걀을 풀어 살짝 익힌 후 밥과 카레 사이에 넣어서 훨씬 식감도, 맛도, 영향도 좋아지는 장점이 있다. 식사 준비를 모두 끝내고 아내와 아이들을 깨운다.

: "영희 씨, 일어나요. 아침 다 차렸어요. 지수야, 민수야. 아침 먹자. 오늘은 아빠표 특제 카레야."

아내 : "철수 씨, 오늘 아침도 맛있게 잘 먹을게요."

: "혹시나 싶어서 아침에 아이들 교복이랑 흰 빨래도 돌려놨어요."




난 항상 아내에게 특별한 남자이고 싶고, 아이들에게도 만점짜리 아빠이고 싶다. 물론 이런 평가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아내나 아이들이 하는 거지만 지금까진 아내와 아이들의 평가가 그리 박하지는 않다. 딸아이가 종종 친구들 아빠와 나를 비교하며 '우리 아빠'라서 항상 좋다는 표현을 꾸준히 하는 것이나, 아내가 오랜만에 바깥 모임에 다녀와서 다른 아주머니들 남편들 이야기를 듣고 으쓱해하며, 아주머니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런대로 난 백점까진 아니어도 준수한 점수의 남편과 아빠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결혼 후 아내에게 늘 낙제점을 받는 게 있다. 자식으로서, 사위로서는 난 낙제점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알아서 안부 전화를 드리는 일은 전무하고, 기념일이나 명절에 용돈을 챙겨드린 적도 거의 없다. 물론 아내가 잘 챙기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그나마 아내가 시키거나, 눈치를 주면 안부전화를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조금 나아진 점은 아내가 부모님들 생일 날짜만 이야기해주면 알아서 축하전화 정도는 알아서 한다. 물론 전화를 해서도 1분을 넘기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낳아 주시고, 예쁘게 길러주신 부모님이고, 내 아버지이니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이다.

아내는 가끔 연애할 때를 생각하면 내게 속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땐 내가 어른들한테 싹싹하고, 잘할 것 같아 보였단다. 주변 어른들에게 인사 잘하고, 어려운 어른들에게도 씩씩했다고 하면서. 하지만 그땐 아내를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시절이었다는 게 아내가 오판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는 걸 그 당시 아내는 몰랐었을 뿐이다. 사랑을 하면 용감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최근엔 이 낙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부모님들은 우리들 곁에 항상 계시지 않을 걸 잘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야 철이 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금 내 점수는 59점 정도는 받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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