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알콜 위로가 되는 이유는 있었다

가끔은 무알콜 맥주로 감동받고, 위로받는 날도 있다

by 추억바라기

"오빠, 내가 택배로 맥주 보냈어. 무알콜인데 정말 맥주 같아."

"그래? 고마워. 그런데 갑자기 무알콜 맥주는 왜?"

"오빠, 요즘도 지수하고 약속한 거 지키려고 일주일에 술 두 번 밖에 못 먹잖아. 무알콜은 먹어도 되니까 오빠 생각해서 보냈지."

"오오, 역시 내 동생. 고마워."


며칠 전 동생이 자기가 먹어봤더니 괜찮은 것 같다고 딸아이랑 약속한 게 있어서 자주 맥주를 못 마시는 오빠를 위해 택배를 보냈다며 연락이 왔었다. 오늘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더니 동생이 보낸 택배가 도착해 있었다. 택배 박스 한 가득 맥주를 담고서 말이다.


언박싱해서 맥주를 꺼내보니 스무 병은 족히 되는 듯 보였다. 아내는 이미 저녁 먹으며 시원하게 먹으라고 날 위해 두 병을 냉장고에 넣어뒀다. 센스가 만점인 내 아내다. 저녁 밥상에 앉아 맥주 따기만을 기다리는 딸아이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맥주를 따서 시원하게 입안 가득 한 모금을 마셨다. 예전 같았으면 '아빠 이번 주 술 마시는 거 첫 번 째지. 이제 주말까지 한번 남았어요' 할 딸아이였지만 이미 무알콜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더 이상 압박을 하지 않는다. 그냥 궁금함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빨리 마셔보길 권할 뿐이었다. 그렇게 난 잔에 따른 맥주를 시원하게 한 모금을 더 들이켰다.


"아빠, 어때? 맥주 맛이 나?"

"음, 백 퍼센트라고 하긴 조금 아쉽지만 많이 흡사하긴 하네. 뒷맛도 개운하고. 딱 내 스타일이네."


그렇게 무알콜 맥주(이하 가짜 맥주)는 내 입맛에 맞는 것 같았다. 예전에 정말 술을 마실 수 없을 때 먹었던 가짜 맥주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고, 조금 오버해서 얘기하면 비교 자체가 불가했다. 맥주와 흡사한 가짜 맥주를 먹고 있으니 과거 술을 먹을 수 없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것도 이 가짜 맥주에 얽힌 예전 추억이...




몇 해전 급성 췌장염으로 쓰러진 후 한 동안 금주를 했었다. 몇 달 금주를 하긴 했지만 전부터 워낙 맥주를 좋아했던 탓에 그 시원함을 잊고 살기란 췌장염으로 배를 움켜잡고 아팠을 때의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을 만큼 그 영향력은 컸었다. 그래도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정작 내 건강을 생각하면 쉽게 맥주에 손이 가지 않을 때였다.


우연히 알게 된 무알콜 맥주로 한 동안은 맥주를 잊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마셔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H"사의 무알콜 맥주는 처음 시원함은 마실 수 없는 맥주의 갈증을 채우긴 하지만 맥주 탄산만이 주는 청량함이나 묵직하고, 쌉싸름한 순수한 맥주 향을 담기에는 무언가 부족함이 컸었다. 하지만 내게는 많은 선택지가 없었고, 그나마 가성비나 어디서나 구매가 가능한 접근성을 고려하면 그만한 것이 없었다. 아쉬움은 옵션이나 선택이 아닌 당연함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수개월을 맥주가 마시고 싶을 때는 가짜 맥주를 찾았고, 그 순간만큼은 내게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사실 급성 췌장염 판정을 받을 당시에만 해도 담당의사 말이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잦은 음주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금주를 권했다. 의사의 이 소견을 들을 때만 해도 마음만으로는 팔, 다리 하나쯤은 잘려 나간 기분이었다. 즐겨하는 맥주를 더 이상 마실 수가 없다는 생각에 정말이지 그 순간의 아픔은 이루 말하기 어려웠었다.


앞으로의 건강보다 당장의 맥주 맛을 놓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처음 2~3주간은 전혀 생각나지 않던 맥주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생각이 나는 일이 잦아졌다. 일부러 마트에 가면 맥주 진열된 냉장고 앞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만큼 강렬했던 내 의지도 시간이 지나며 무뎌지고, 약해졌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것 같아지면서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가끔은 안 될까' 하는 스스로 던지는 유혹에 지고 싶은 마음만 커져 갔다. 그러던 중 마트에서 만난 이 무알콜 맥주(일명 가짜 맥주)는 힘겨워하던 내게 단비 같은 존재였고, 향수로만 남았던 맥주에 대한 그리움을 위로해주던 유일한 음료였다.


첫 만남은 설레었고, 두 번째 만남은 반가웠고, 세 번째 만남은 편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가짜 맥주가 익숙해졌고, 내 몸도 어느덧 췌장염으로 고생했던 고통을 잊어버렸다. 그러면서 한 번, 두 번 다시 찾게 된 진짜 맥주 때문에 내가 힘들 때 위로가 되었던 가짜 맥주와의 만남은 그 횟수가 줄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며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딸아이와 약속 후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절주를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엔 몇 달을 술은 아예 입에도 대지 않을 때라 그 대체 불가할 거라 생각했던 맥주 맛을 내게 선사했던 그 기특한 가짜 맥주가 있어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게 사실이다. 세상을 살면서 '대체 불가'란 말을 가끔 쓰지만 진정으로 '대체 불가'란 없을 것 같다. 어떤 것이 아쉬울 땐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또 다른 어떤 것이 나오고, 탄생하기 마련이다. 마치 이 무알콜 맥주처럼.


아직 남아있는 무알콜 맥주를 보면 오히려 이 가짜 맥주를 대체할 수 있는 진짜 녀석이 궁금해진다. 맥주를 좋아했지만 예전의 나처럼 맥주를 마실 수 없는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녀석인 이 가짜 녀석을 대체할 무엇인가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오늘 저녁에도 남아있는 무알콜 맥주를 시원하게 한 잔 해야겠다. 그 옛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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