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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26. 2020

새벽부터 서둘러 담양을 찾은 이유

아쉬움은 있지만 가을 담양 여행은 옳았다

깊어가는 가을 어느 날,

난 계획했던 대로 1박 2일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는 대나무의 도시 전라남도 담양.

줄곧 도심에서 생활하던 내게 담양은

과거로의 여행 같았고,

내게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 여행이었고,

가을 여행이 '정답' 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줬다.


아침 일찍 용산역 6시 30분 KTX를 타고 이동한 곳은 광주 송정역, 가볍게 국수 한 그릇으로 아침을 채우고 통근열차를 이용해 광주역으로 이동했다. 금요일 아침이라 출근길에 나선 사람이 많을 줄 알았던 통근열차는 시간이 9시가 넘은 시간대라서 그런지 나와 비슷한 목적의 여행자들 몇 명이 전부였다.


광주역에 내려 담양 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여행지 선택에 조금은 후회가 몰려왔다. 이동 시간도 아쉽거니와 이동하는 버스나 교통편도 들떴던 여행을 조금은 가라앉게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50여분을 버스로 이동하고 내린 내 마음은 어느새 그 얄팍했던 후회를 밀어냈고, 담양 죽녹원 입구에 들어서면서 지그시 내려다보는 대나무 숲의 압도적인 광경에 여행 자체를 즐기는 여행자로 다시 돌아왔다.

죽녹원을 산책하는 내내 난 십여 미터 이상의 장대의 숲에 쌓여 여행지를 찾은 작은 나를 들여다보았고, 조금은 숨이 차오르는 오르막길에서도 양옆으로 솟은 대나무를 보며 연신 토해내는 탄성이 내 가쁜 호흡 때문인지 이런 풍경에 압도된 내 마음의 탄성인지 알지 못한 채  걷고, 또 걸었다.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웅장한 대나무 숲은 마치 파도가 치는 바다를 연상케 했고, 난 그 대나무 숲 바다를 한 시간이나 표류한 끝에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매력의 숲을 묵묵히  빠져나와 있었다.


죽녹원을 뒤로하고 나온 다음 목적지는 관방제림. 죽녹원 바로 옆에 있어서 여행자들에게는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길게 뻗은 산책로는 걷기 좋아하는 여행자들을 위한 또 하나의 서비스 길이다. 주말 전이라 관방제림을 찾은 여행객은 많지 않았고, 불어오는 바람과 조금은 일찍 찾은 을씨년스러운 날씨 때문인지 산책길 위에 놓인 길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 걷는 내내 다른 여행자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1.1Km 가까이 뻗은 이 산책길은 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근처 주민들도 자주 찾는 힐링이 되는 산책길일 듯싶었다. 길게 뻗은 산책로를 따라 쭉 뻗은 강줄기와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은 절정의 가을로 치닫고 있음을 다시 한번 알게 해 주었다.

※담양 관방제림(출처 : Daum 백과)

관방제는 관방천에 있는 제방으로서 담양읍 남산리 동정자 마을로부터 수북면 황금리를 지나 대전면 강의리까지 길이 6km에 이르는 곳이다. 관방제가 유명한 이유는 약 2km에 걸쳐 거대한 풍치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풍치림을 관방제림이라고 부르는데 면적 4만 9228㎡에 추정 수령 300~400년에 달하는 나무들이 빼곡하고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1991년 11월 27일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산림청이 주최한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관방제림을 따라 이어진 산책길 끝에서 담양의 대표적 여행지인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만났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들은 마치 줄을 맞춰 서있는 병정 같은 느낌이었고, 이국적인 모습으로 마치 대한민국이 아닌 것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가까이 갈수록 그 크기와 높이에 압도 당해 올려다본 나무의 끝자락에는 마치 하늘 위 구름이 나무 끝에 걸려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길 위로 끝이 없이 놓여있는 모습에 그저 보이는 것은 나무와 길 그리고 그 위에 탄성 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숲 속도 아닌 곳이 이 길 안에만 들어와 있어도 마치 나무들이 주는 침묵은 이 길 위를 걷는 나를 복잡한 생각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길을 느끼게 해 줬다.


1Km가 훨씬 넘는 길을 쉬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왕복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었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벗어나면 나오는 메타 프로방스에서 아침부터 서둘렀던 여행길에 피로를 조금은 내려놓았다.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 이국적인 분위기의 이곳에서 커피 한잔으로 시간 도보여행에 잠시 쉼표를 찍었다.


용산역에서 나서서 담양 도착한 시간이 10시 20분, 조금 느리지만 알차게 세 곳을 돌았더니 어느새 시간이 오후 1시를 넘어섰다. 배꼽시계는 허기진 배의 알람을 울렸고, 근처보다는 관방제림 입구에 있는 국수거리로 돌아가 멸치국수와 파전 그리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오늘 여행지에서 만난 이곳, 저곳을 느끼며 사진을 들여다봤다. 담양에서 식사하는 동안 음식에 대한 편견은 필요가 없었고,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인 음식이 주는 즐거움에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음식 하면 전라도, 전라도 하는 줄 알게 된 것도 이번 여행의 수확이라면 수확.


 참고로 이번 담양 여행지에서 먹은 내 수라상은 담양 국수 거리에서 먹었던 국수를 시작으로, 저녁에는 창평 국밥 그리고 2일 차 아침은 가볍게 창평 어느 백반집에서 가정식 백반을 먹었다. 점심은 처음 세웠던 계획보다 서둘러 올라온 탓에 일정 조정이 불가피했고, KTX 출발 열차 시간에 맞춰 올라오느라 광주에 와서야 늦은 점심으로 끼니를 때웠다.


시간도 조금 애매하거니와 가볍게 걸친 막걸리가 결국 내 엉덩이를 무겁게 붙들었고,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탓에 오후에 가려던 용마루길 산책로는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그렇게 급하게 선회한 다음 목적지는 오늘 숙소가 있는 창평 슬로시티였고, 담양 여행에서 가장 불편하게 생각한 대중교통 버스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솔루션이 담양 시내에서 내가 탈 시티투어 버스임을 깨닫고는 안 그래도 흔들렸던 용마루길 산책로 코스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이유가 돼버렸다. 시간을 미리 알고 코스 선정만 잘하면 이 시티투어버스로만 여행해도 괜찮을 듯싶었다. 다만 버스 차간 배차 간격이 꽤 긴 것은 참고해서 여행 계획을 잡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했다. 버스를 타니 버스 안 승객이라고는 달랑 나 하나. 왠지 버스를 전세 낸 것 같아 부담이 생길 법했는데 그런 부담보다는 기분이 좋아지는 건 즐길 마음을 품고 있는 여행만이 주는 묘미다. 문화회관에서 탄 버스는 15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입구에 있는 청평면사무소가 제대로 목적지를 찾아온 것을 알려줬다.


분위기 있는 면사무소는 흔한 동 자치센터와 차이가 있었고, 겉보기에는 관광지에 있는 오래된 가옥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면사무소의 뒷 뜰은 어느 오래된 고택의 잘 정돈된 정원과 같은 모습이었고, 잠깐을 둘러본 여행자에게 또 한 번의 여유와 힐링을 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면사무소를 나와 숙소로 가는 길은 모두 오래된 한옥이었고, 집들 주변으로 둘러진 돌담은 켜켜이 쌓인 잘 정돈된 돌무더기의 오래된 세월이 고스란히 입혀진 모습이었다. 마을에는 사람 그림자를 찾기 힘들 정도로 조용했지만 돌담 밑으로 피어있는 많은 꽃길 때문에 사람 없는 이 길조차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마을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린 시간은 30여분 남짓. 실제 어른 걸음걸이로 제대로 걸으면 10여 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지만 이 마을의 이름이 '슬로 시티'인 만큼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여행의 테마 또한 '슬로~, 슬로~'라는 생각에 난 보고, 느끼고 그리고 또 보면서 천천히 그 길과 돌담 그리고 꽃들과 함께 했다.

 

이렇게 마을 구경을 마치고 들어간 숙소는 내게 또 하나 즐거움을 선사했고, 집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 마을을 찾기에 충분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숙소와 전통 카페를 겸해 운영하는 주인장 부부는 코로나로 쓰고 있는 마스크 밖으로도 충분히 밝은 웃음이 보일만큼 환하게 손님을 맞았고, 처음 이 마을을 찾으며 느꼈던 불안감은 어느새 고즈넉한 고택의 아름다움과 편안한 주인장 부부의 인상에서 주는 안도감이 자리 잡았다. 또한 어둠이 내려앉은 고택은 낮에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했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만큼이나 사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또한 여행의 조건임을 새삼 깨닫게 해 줬다.

조용한 마을 분위기만큼이나 밤은 일찍 찾아왔고, 창평 마을의 밤은 고즈넉한 분위기만큼이나 조용히 그리고 길게 머물다 지나갔다. 밤하늘에 별을 기대했지만 흐린 날씨 때문에 별구경을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밤이었다. 슬로시티 슬로건을 가진 마을이지만 여행자인 내겐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잠이 깰 수밖에 없었고, 침대에서 자던 습관 때문에 온돌방은 내게 허리 통증이라는 부작용을 선물했다. 아침부터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오늘 첫 일정인 소쇄원으로 출발하기 위해 든든한 아침식사와 짐 정리를 한 후 고택 민박을 나와 조용히 산책할 시간을 조금 더 갖고 이동했다.


어제 탔던 시티투어 버스를 다시 한번 이용해서 창평 슬로시티에서 소쇄원까지 이동했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시티투어 버스 안 승객은 나 혼자였다. 30분 남짓 이동했더니 버스 기사님의 안내가 있었고, 버스는 소쇄원 공영 주차장 앞에 차를 세웠다. 소쇄원은 담양의 대표 유적지답게 입구부터 장엄한 대나무가 양쪽에 도열하여 여행자를 맞았고, 어제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에서 거대하고, 높은 나무들을 만나서 조금은 덜 놀랐지만 이곳도 그곳의 나무들 못지않게 장엄함을 뽐내며 평범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들어선 소쇄원의 첫 느낌은 달리 표현할 만한 수식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 옛날 선조들의 풍류와 아름다움이 지금보다 못하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기 충분했다. 걸음을 떼는 곳마다, 움직이는 시선마다 보이는 풍경은 또 다른 새로운 장면들을 연출했고, 보는 각도마다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는지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소쇄원(출처 : Naver 지식백과)

1530년(중종 25) 조광조의 제자 소쇄옹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芝谷里)에 건립한 원우(園宇). 명승 제40호이다. 소쇄옹 양산보는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스승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사망하자 이에 충격을 받고 벼슬길을 등지게 되었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소쇄원을 지었다.


소쇄원을 나오면서 어제 오후 추웠던 날씨와 내 게으름으로 계획했던 용마루길 산책로를 가지 못했던 마음속에 불편함이 없어졌고, 소쇄원 한 곳 다녀간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룬 느낌이 들 정도로 무척 강렬했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잘 배치된 정자들과 정자에서 바라보면 보이는 풍경들은 정자 처마 밑에 가만히 앉아서 주변을 조용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장소였다. 다시 찾아보고 싶은 여행지로 손꼽을 만한 곳이었다. 이곳을 나와 마지막으로 가사문학관을 둘러보고 광주로 나왔고, 내 이틀간의 짧지만 긴 여행은 내년을 다시 기약하게 됐다.


사진을 보니 어제 느꼈던 그 감정, 그 기운이 그대로 올라오는 것 같아 다시금 설레고 좋다. 날씨가 조금만 허락했다면 조금 더 둘러보고 왔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여행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이겠지만 이런 아쉬움도 여행이 주는 묘미, 맛이 아닐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좋은 여행을 했으니 내년에도 좋은 기운 받아 힘차게 다시 한 해를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내년 이맘때 혼자만의 여행을 조금 더 멋지게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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