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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22. 2020

드라마 작가님들 부탁 좀 드려요

내 가족이 새로운 드라마 시작을 반대하는 이유

 "아빠, 이번 주에 나오는 『스타트업』은 안 볼 거야?"

 "응, 별로 안 겨."


내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은 글 쓰기, 독서 그리고 드라마 시청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걸 꼽기는 어렵지만 가장 오래된 취미는 단연코 드라마 시청이다. 난 남자들이 드라마를 좋아하기 시작해서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는 건 보통 사회적 활동이 급격하게 줄어 어울릴 친구가 많지 않거나, 여성 호르몬의 과다 분비로 감성적 측면이 깊어지는 오십 대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걸로 들어왔다.


하지만 세상 일에 대부분 예외라는 게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 시청에 그런 예외가 바로 나였으니 남자들이 오십 대를 기점으로 드라마 채널을 찾아본다는 보편적 가설을 믿을 수도, 믿지도 않는다. 내가 방송 드라마를 좋아하게 된 건 정확히 어떤 드라마에 꽂혀서라기 보다는 그냥 인생 희로애락이 모두 있고, 웬만해서 권선징악의 테두리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장르적 매력을 느꼈고, 당연히 자주 찾다 보니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루하루 물들어 갔다. 굳이 짚어 보자면 삼십 대를 전후했던 시절부터인 것 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풀하우스', '발리에서 생긴 일', '파리의 연인', '내 이름은 김삼순' 등 인기 드라마 대부분을 본방 수했던 것을 시작으로 2010년대로 오면서 다양한 종편과 케이블 채널 활성화로 단순화되어있던 주제와 인기 장르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시도나 형태의 폭넓은 드라마 장르를 개척해 나가는 방송들에도 많은 눈길과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이런 드라마를 개인적인 시각으로 재해석도 해보고, 극 중 주인공의 감정에 과몰입도 해가면서 나의 드라마 사랑은 어느 날인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가 되어있었다. 편성된 드라마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모든 요일에 걸쳐 시청하고 있었고, 대부분 저녁시간이긴 했지만 저녁 식사 이후에는 드라마의 늪에 빠져 가족 간의 불통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아내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드라마 대사에 몰입할 때쯤 참다못한 아내가 한 마디를 쏘아붙였다.


  "철수 씨, 퇴근해서 집에 오면 10시 전 철수 씨와 10시 이후 철수 씨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네요. 내가 무슨 이야기 했는지 들었어요?"

  "아, 미안요 영희 씨. 듣기는 했는데 드라마 대사 듣느라 정확히 듣지 못했어요.(용감도 하셔라) 그리고 내가 가는 귀가 좀 안 들리잖아요. (변명이라고 한 게 이 모양이다)"

  "귀가 아니라 마음이겠죠. 요즘 드라마 너무 빠져 사는 거 아네요."


  웬만해서는 이해하던 아내에게 제대로 핀잔고 나니 어느새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주일 중 하루를 거르지 않고 드라마를 찾고 있는 날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드라마라는 녀석 때문에 내 행복한 저녁시간이 조금씩 금이 가고, 좀 먹어가는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도 창피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가급적 주중에 미니 시리즈 한편, 그리고 주말에 주말 미니시리즈 한편만 보려고 애쓰는 편이다. 특히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면서 드라마 보는 시간을 강제적으로 줄여보고는 있지만 그래도 쉽지만은 않다. 요즘 드라마 작가들이 너무 글들을 재미있게 쓰고, 시나리오로 쓰이는 콘텐츠들도 다양한 소재가 너무 차고 넘친다. 그래서 난 가급적 시작을 하지 않으려고 하루하루를 애쓴다.


하지만 가끔 이런 내 인내심을 참지 못하고 채널을 돌리다가 손이 멈출 때가 있고, 멈춘 채널은 아니나 다를까 또 드라마다. 이렇게 '멍'한 시선으로 '히죽' 거리는 날 볼 때면 거실로 나온 아들이 한마디를 던지며 다시 한번 경각심을 일깨워 주곤 한다.


  "아빠, 그 드라마 새로 시작하려고?"

  "(화들짝)아, 아냐 아들. 이거 그냥 채널 돌리다가 잠깐 멈춘 거야. 이 드라마는 안 볼 거야. 걱정하지 마."


아들의 따가운 시선과 무안함에 냉큼 채널을 돌렸고, 오늘도 난 다시 마음을 부여잡고 드라마를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려 애써본다. 오늘도 새로운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딸아이에게 리모컨을 넘겨본다. 하지만 우리 집엔 똑똑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키면 알아서 해주는 AI (기가 OO)가 있어서 내 좋은 목소리로 녀석을 부르면 언제든지 채널을 찾아 줄 기세로 대기 중이다. 그래서 난 오늘 내 입도 가족들과의 대화에만 사용하려고 애써보려고 한다.


"아빠, 나 내일 학교 끝나고 놀다 와도 돼요?"

"......"

"엄마, 엄마~, 아빠 또 드라마 속으로 들어갔어요."


무언가 새로운 시작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특히 큰 결심하고 줄였던 내 드라마 중독증 같은 경우에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제발 일주일에 두 개 이상 재미있는 드라마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말도 안 되는 소원을 오늘도 한 번 빌어본다. 


드라마 작가님들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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