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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27. 2020

딸아이가 아빠를 닮으면 어때서요

딸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좋아요

"딸내미가 엄마 닮아야지 아빠 닮으면 어떡해"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내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야 예쁘지 않은 자식이 없겠지만은 그런 자식들을 바라보는 타인들은 자신들의 주관적 시각을 듬뿍 담아 마치 객관적 시각인 양 아이들을 평가한다,  

 

'애가 엄마를 닮아서 공부를 잘하나 보네', '얼굴이 아빠 닮아서 남자답게 생겼어', '딸이 아빠하고 판박이네', '아들이 예쁘장하게 생긴 게 엄말 많이 닮았나 보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세히 아이들을 들여다보면 엄마 쪽이든 아빠 쪽이든 부모의 어느 한쪽을 많이 닮기 마련이다. 이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누구를 닮았다고 이야기하는 타인들의 편 가르기 식 표현은 크게 괘념 치는 않는다.  나 또한 아이들이 가급적 누굴 닮았다고 하는 식의 표현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다. 당연히 아내와 나의 자식이니 날 닮았거나 아내를 닮았다는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딸아이는 커가면서 날 닮아간다. 다행히 이 닮는다는 기준이 외모는 아니다. 딸아이의 취미와 취향이 나와 비슷하다. 그중에서 즐겨보는 영화 취향이나 좋아하는 동물의 취향이 같다. 그래서 둘이서 함께 는 일이 많은 편이다. 2,3 년 전부터 찾는 중고서점도 그중에 하나다. 코로나 사태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딸아이와 가끔 집 주변 '알라딘 중고서점'을 종종 찾았다. 책장 가득 꽂혀있는 책들 하며 책들이 주는 냄새가 좋아서 난 온라인에서 뿐만 아니라 이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 자주 책을 산다. 딸아이는 특히 서점 계단에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집에서는 자주 하지 않는 독서지만 서점에 가면 열독 하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다.


딸아이와 내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건 서점뿐만이 아니다. 영화 취향도 비슷하다. 재난 공포물 중에 상어나 악어가 나오는 동물 영화를 좋아한다. 아내와 아들은 그쪽 취향이 아니라 집에서도 영화채널에 상어악어 영화가 나오면 아내 눈치를 보며 영화를 보곤 한다. 딸아이의 이 상어 사랑은 나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오죽하면 집에 있는 수조를 하나 비워 철갑상어를 키우자고 나를 조르기도 했었다.

 

재작년 개봉했던 메가로돈도 취향이 같은 딸아이와 영화관을 찾았다. 다행히 영화 관람 제한이 12세여서 딸아이와 함께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 영화관에는 상어 공포영화를 딸아이와 둘이 온 아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로 딸아이의 취향은 독특해서 좋고, 그런 취향이 나와 같아서 더 좋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 높지 않은 평점의 영화임에도 몰입해서 봤고, 말도 안 되는 큰 사이즈의 대형 상어가 나올 때마다 우린 함께 흥분했다.


한 번은 아내와 아들의 외출로 주말에 딸아이와 둘이 있었는데 그간 아내가 있을 때는 보고 싶어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영화 '크롤'을 아내의 출타와 VOD 가격 인하로 과감히 딸아이와 결제하고 집에서 시청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악어가 출몰할 때마다 영화관에서 하지 못하는 대화를 하며 딸과 악어 이야기를 즐겁게 이어갔다. 사실 이런 취미나 취향이 나와 같은 아이를 보면 신기하다.


집에서 일부러 아이에게 보여주거나 함께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아이가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너무 기분 좋은 일이다. 올해 광복절을 전후해서 난 여름휴가를 냈고, 딸아이와 휴가 전부터 무척 들뜬 계획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계획은 다름 아니라 집 근처 아쿠아리움에 가서 직접 상어를 보자는 것이었다. 아내와 아들은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눈치여서 딸아이와 둘이 상어를 보러 가자고 잔뜩 들뜬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손꼽고 있었다.


하지만 우린 결국 그 날 이후 현재까지도 아쿠아리움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광복절 이후 코로나 확진자 증가로 인해 아내의 '윤허'가 나지 않았고,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정될 때까지는 아내는 허락하지 않을 태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씩 찾았던 아쿠아리움이었는데 최근에는 가보질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상어를 보지 못한 아쉬움에 며칠 전에도 딸아이에게 아쿠아리움 이야기를 꺼냈다. 아쉽기는 딸아이도 나 못지않았고, 빨리 딸아이와 상어를 보러 가는 그 날이 오기를 오늘 아침 조용히 빌어봤다.


내 딸아이는 나와 많이 닮았다. 취향도, 취미도 그리고 가끔은 성격도. 아내와 난 아들이나 딸아이가 우리 부부 중 어느 쪽을 닮았든 아이들이 자신만의 색깔 빛내며 자라나길 바란다. 난 내 아이들이 자신이 느끼는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항상 세상을 밝고, 즐겁게 살았으면 한다.


아내를 닮았든, 날 닮았든 간에 말이다.




아내는 가끔 딸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수야, 넌 나중에 아빠 같은 남자 만나야 해. 아빠처럼 너만 사랑해주는 그런 남자 알았지?"

"에이, 난 박서준이 더 좋아. 아빠는 그냥 엄마 남자고, 우리 아빠인 걸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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