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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05. 2020

딸아이를 괴롭히던 녀석을 한방에 보냈다

녀석을 잡은 내게 아내는 돈을 주지 않았다

 " 현상금 주긴 주는 건가요. 영희 씨"


며칠 전부터 아이들이 집에 모기가 있다고 난리도 아니다. 퇴근해 집에 갔더니 방방마다 문이 모두 굳게 닫혀있다. 아마도 방으로 꼭꼭 숨어들 모기를 원천 봉쇄하고, 오늘 거실에서 기필코 모기를 박멸하겠다는 아내의 강력한 의지로 보인다.


난 집에서 모기가 제일 물리지 않는 고귀한(?) 분이다. 아니 정확히는 모기도 물기 싫어하는 47년 산 혼탁한 피의 소유자다. 아무래도 내 피엔 소위 얘기하는 '단내'도 나지 않고, 모기에겐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여름 내내 좀처럼 모기 물려 살이 부풀어 오르는 일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난 우리 집에서 모기 물리는 순번으로 따지자면 단연코 뒤에서 일등이다. 딸과 아내가 제일 잘 물리고, 그다음이 아들이다. 삼순 위의 아들과 첫 번째에 랭크되어 있는 딸이 어제도 모기에 물렸다. 여름 내내 집에 등장하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더니 요 며칠 사이에 벌써 세 번째 아이들을 물었다.


아내는 아이들 취침을 방해하는 모기를 잡기 위해 큰 결심을 한 얼굴로 거실에 모여있는 가족들을 보며 중대 발표를 했다.


 "현상금을 걸겠어요. 오늘 모기 잡는 사람에게 거금 천 원을 주겠습니다. 단, 잡은 모기의 사체는 육안으로 볼 수 있게 잘 수거해 오세요."


아내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모기에게 현상금을 걸었고, 아이들과 내 얼굴을 보며 뭐하느냐는 눈으로 빨리 행동에 옮기라는 식의 제스처를 취했다. 그래서 난 아내의 중대발표에 맞서서 조금 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제안을 했다.


 "그럼, 난 오늘 모기를 잡는 사람에게 현상금 이천 원을 걸겠어. 얼른 다들 잡아야지 뭐해."


딸아이는 나의 현상금 인상에 조금은 관심을 보였고, 아내는 조금은 어이없어했지만 이내 행동에 들어가 모기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넓은 거실을 훑고 다녀도 좀처럼 모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하긴 추워지는 날씨 탓에 밖에서 기생하기 어려운 모기가 어렵게 어렵게 들어온 아늑하고, 따뜻한 우리 집이 녀석에게는 천국이었고, 아내가 키우는 식물들이 즐비한 아이들 방과 거실은 천애의 은폐가 좋은 장소일 것이다. 어떻게 지켜온 생명인데 그리 쉽게 눈에 띌 리가 없을 테고, 손에 잡히지 않으려고 딴에는 안간힘을 쓰고 있을 테다. 이렇게 모기를 찾지 못하고 시간은 흘렀고, 저녁에 학원을 다녀온 아들이 아직 모기를 잡지 못했냐며 이야기하고는 내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다.


 "아빠, 원피스(애니메이션) 보면 해적이 강해져서 조금 더 나쁜 짓하고, 여기저기 부수고 다니면 현상금이 올라가잖아요. 혹시 모기도 계속 잡히지 않으면서 우리나 엄마 피를 빨고, 괴롭히면 아빠가 현상금을 더 올려요?"

 "어...... 어? 그래."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들의 제안에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아들은 모기 생명 연장을 기원하며, 며칠 있다가 내가 현상금을 더 올리면 잡겠다고 이야기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시간은 지나 딸아이가 잘 시간이 되자 딸아이는 모기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잘 수 없다고 투덜댔고, 안 그래도 늦게까지 잠을 안 자려는 딸아이에게 잠을 자지 않아도 될 핑곗거리를 만들기 싫어 아내와 난 다시 모기를 잡으려고 거실 여기저기를 수색했다. 여기저기를 파리채로 훑다가 거실 창에 까맣고, 통통한 배를 보이며 붙어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영희 씨, 여기 모기, 모기 맞죠?"

 "네, 맞네요. 놓치지 말고 잡아요."


이내 한차례 스윙으로 그렇게 애를 먹이던 모기 녀석을 한방에 보내 버렸다. 모기는 그렇게 며칠간의 여정을 끝내고 저 세상으로 갔고, 나의 파리채에 쓰러진 녀석 덕에 내가 걸어놓은 현상금은 내 주머니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되었다.  모기를 잡았다는 소식에 딸아이는 환호를, 아들은 며칠 뒤에 자신이 잡으려 했다며 아쉬움을 보였다. 이렇게 돌아서는 아이들에게 아내는 한마디를 했고, 아이들은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퇴장해 갔다.


 "얘들아, 아빠가 모기 잡았으니 우리 돈 모아서 아빠 천 원 줘야지."

 "아, 맞다. 현상금 주긴 주는 건가요. 영희 씨"


잡힌 모기에겐 미안하지만 오늘도 우리 가족의 평온하고, 따뜻한 가을밤은 이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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