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Nov 16. 2020

난 당신 무릎 위에 앉았던 그 남자를 기억한다

지하철 안에도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여자는 '어머'라고 소리를 쳤고, 당황할 법한 남자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얼마 전 마스크를 하지 않고 지하철에서 맥주를 마시고, 마스크를 바로 써달라는 다른 승객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소리치고 흡연까지 하는 어떤 중년 남자의 뉴스를 보았다. 이렇게 세상은 넓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가 사는 삶 속에서도 매번 같은 이야기 같지만 깜짝 놀랄 이상한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는 한다.


우리가 타는 지하철에도 많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타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이다. 매일 같은 시간을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아마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이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끼리의 공간일 것이다. 저마다 바쁜 일상에 힘이 들고, 짧은 이동 시간이지만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주변을 신경 쓰지 않을 뿐이지 옆, 앞에 있는 사람들은 어제도, 그제도 아마 자신과 한 공간에서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글을 쓰면서 생겨난 버릇 중에 주변을 종종 관찰하고, 관찰 대상이 된 모습이나 사건들을 자주  메모한다. 그래서 난 지하철 메모에 남았던 사람들은 다른 날 같은 지하철에서 만나게 되면 조금은 반갑기까지 하다. 물론 그 사람은 나를 몰라보겠지만 난 그가 어제 한 일을 알고 있어서 친근함까지는 아니지만 완전히 모르는 타인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그런 완전한 타인이 아닌 어떤 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몇 달 전부터 나와 같은 시간, 같은 전동차 칸에 타는 젊은 남자분이 있다. 참고로 내가 출근 시간에 타는 전동차는 내가 타는 지하철역에서 출발하는 전동차여서 조금 일찍만 나가서 줄을 서 있으면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시간 이동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딱 좋은 솔루션이 아닐 수 없다.


그 남자는 내가 지하철을 타려고 줄을 서면 항상 맨 앞줄에 줄을 서있었다. 어느 날, 그 남자는 평소와 같은 시간 맨 앞줄에 줄을 서 있었고, 열차가 도착하자 그는 늘 자신이 앉던 끝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난 그의 옆에 앉아 조용히 책을 펴고 출근 시간에 주어지는 독서의 즐거움을 한창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 젊은 남자 앞에 서있던 젊은 여성분이 그 남자를 불렀고, 고개를 든 남자는 자리를 양보하라는 여자분의 얘기에 무척 당황했지만 그 여성분 옆에 선 임산부를 보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자리를 양보했다.


그 날 이후 그 남자는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열차를 기다리지만 전동차가 도착하여 자리를 앉을 때는 자신이 늘 앉던 그 상석(맨 끝자리)에는 앉지 않는다. 그 날 이후 그는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는다. 덕분에 난 그 남자 뒤에 줄을 서는 날이면 그 남자를 대신해 맨 끝자리 상석에 앉는 날이 많아졌다. 어부지리라고 하면 너무 얄미울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난 그 남자 덕에 끝자리에 앉아서 출근한다.



오늘도 난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전동차를 타기 위해 지하철역 플랫폼에 줄을 섰다. 늘 같은 시간에 줄을 서지만 오늘은 유독 출근하는 사람이 평소보다 많게 느껴졌다. 출근 전동차가 들어왔고, 뒤에 줄을 서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자리다툼이 벌어졌다. 난 다행히 그런 틈바구니에서도 앞에 줄 서 있었던 덕분에 여유 있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지만, 뒤에 따라 들어오던 사람들끼리는 약간의 사소하지만 밀고, 당기는 모양새가 아침부터 벌어졌다.


겉으로는 표 내지 못했지만 조금은 당혹스러운 연출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것도 내가 앉은자리 바로 옆자리에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일부러 연출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그런 장면이 말이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은 어떤 젊은 여자였고, 그 젊은 여자 무릎 위로 덩치가 있는 어떤 남자가 자신의 묵직한 엉덩이를 올려놓은 것이다. 순간 여자는 깜짝 놀라 '어머'라고 소리를 쳤고, 당황할 법한 남자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먼저 앉은 여자를 한 참 노려보고 다른 전동칸으로 이동해 갔다. 자세히 보니 그 남자는 매일 사람들을 밀쳐대며 자리를 차지하려고 앉던 사람으로 내겐 익숙한 얼굴이었다.


지하철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어린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를 만날 때도 있고, 자신이 내릴 지하철역을 지나쳐 소리치며 자신을 책망하는 젊은 여자분을 만날 때도 있고, 스마트폰에 DMB를 이어폰 없이 크게 켜 놓고 당당하게 드라마를 보시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분을 만날 때도 있고,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애정 어린 시선과 스킨십을 하는 젊은 남녀를 만날 때도 있다.


이렇게 지하철 안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는 게 우리들 삶이다.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쩌면 똑같은 우리의 일상과 닮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도,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승객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똑같은 일상, 승객은 없다. 매일 같은 시간에 전동차를 타더라도 타고, 내리는 승객들 모두가 매일 같을 수 없듯이 우리가 사는 일상도 하루하루가 조금씩은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갈만한 인생이고, 삶이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딸아이를 괴롭히던 녀석을 한방에 보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