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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19. 2020

내 몸에서 몹쓸 녀석 두 개를 떼어내던 날

당신과 함께 한 가을날의 하루여서 더 아름답습니다

오늘의 행복한 하루가 언제까지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내 행복했던 기분까지 모두 적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 해마다 하는 연례행사가 있다. 회사의 복지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많은 회사들이 이 건강검진을 직원들에게 시행하는 게 보편적이다. 내가 다녔던 그리고 다니는 회사들도 매년 이 보편적인 복지를 대체적으로 잘 이행해오는 회사들이었다. 신입 때나 30대 때에만 해도 이 건강검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많이 간과한 편이었다. 신입 때는 건강검진이 있는 날은 그냥 오전 업무를 땡땡이 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고, 30대 때에는 바쁜 업무 때문에 이런 기본 중에 기본인 내 건강검진조차도 귀찮고, 번거롭기가 일수였다.


하지만 어느덧 나이가 마흔에 들어서면서 해마다 변해가는 내 몸을 보며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란 걸 차츰 알게 되었고, 어머니의 폐암 진단과 함께 일하던 동료의 암 선고로 인해서 조금 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30대 중반부터 다녔던 회사들은 2년에 한 번이라도 종합 검진이라는 명목으로 다양한 방식의 건강체크를 도와줬고, 마흔이 넘고부터는 이런 검사를 매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의 폐암 진단으로 요즘은 흔하다고는 하지만 조기 발견을 강조하는 '암' 유전인자를 몸에 지니고 산다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내게는 과거 끊었던 담배임에도 긴 시간 흡연해왔던 스스로를 책망하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 폐암 진단 후 수년은 종합검진이 있을 때마다 위 내시경, 대장 내시경, 암 유전자 검사 등 암 관련 검사만 매년 할 정도로 잔뜩 겁을 먹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어머니의 병환이 익숙해져 갔고, 경각심도 조금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동료가 병가로 출근을 하지 않았고, 한 부서도 아니고 업무도 겹치지 않아 인사 정도만 하던 동료였던지라 병가의 사유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었다. 그 동료가 병가를 내고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가까운 동료로부터 그 동료의 소식을 알게 되었고,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게 그 소식을 전해준 동료의 이야기로는 '간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라고 했고, 전이가 심해서 위중한 상태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병가를 내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인사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고, 건강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위험 신호는 언제든지 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미쳤다.


그 동료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등졌고, 그의 얼굴과 이름은 기억이 나지만 수년을 함께 근무하며 말 한마디 제대로 따뜻하게 나눠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게다가 작년 연말에는 어머니까지 5년의 긴 병환을 끝내고 내 곁을 떠나고 나니 건강의 중요성이 조금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았다.


어제는 1년 만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아침 8시 30분이 안되어서 검진센터에 도착했지만 사람들은 이미 북적였고, 많은 사람들은 이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는 듯 보였다. 4년 만에 대장 내시경을 했고, 4년 전에는 없었던 용종이라는 놈을 이번에는 두 개나 떼어냈다. 내 대장은 괜찮을 거라는 믿음은 깨졌고, 몸에 있던 녀석을 떼고 나서 떼어낸 부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들었던 생각은 이제는 이상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이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음을 새삼 느꼈다. 그렇게 건강검진을 마치고 센터를 나온 난 잠깐 들었던 우울했던 기분도 털어내고, 평일 오후 광화문이라는 위치 특성상 그냥 집으로 귀가하기에는 아쉬운 날씨도 나의 발목을 잡았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온 지 벌써 4년. 그래서 그런지 아내와 난 어느덧 사대문 안  서울이 무척이나 낯설었고, 또 한편으로는 새로워 보였다. 가을볕이 좋아 아내와 인사동을 걸었고, 빨갛고, 노랗게 물드는 궁 안의 나무들이 아름다워 창경궁 산책을 즐겼다. 창경궁 산책로는 서울 속 작은 숲 같은 느낌이었고, 빨갛게 물든 색동옷을 갈아입은 나무는 오늘 검진 결과로 잠시 우울했던 내 마음을 치유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함께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아내였기 때문에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영희 씨, 이쪽으로 서봐요. 사진 찍어 줄게요."

 "아뇨. 철수 씨, 같이 셀카 찍어요. 뒤에 있는 빨간 단풍나무 잘 나오게 폰 위로 더 들어봐요."


아내와 난 11월 5일 인사동 거리와 창경궁에서 짧지만 즐거웠던 오후 데이트를 즐겼다. 2020년 11월 5일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우리의 기억과 사진 그리고 나의 브런치 글에 오늘의 행복한 하루가 언제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내 행복했던 기분까지 모두 적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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