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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18. 2020

낮말은 새가, 밤말은 쥐가, 내 말은 상사가 듣는다

내가 한 뒷담화를 직장 상사는 듣고 있었다 

삼삼오오 사석에 모여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들 중에 가장 흔한 주제가 되는 것이 잘난 체하는 친구, 막무가내 직장상사, 어처구니없는 대표이사 등 모인 사람들 도마 위에 공통적으로 오를 수 있는 사람의 뒷담화 하는 것을 흔하게 듣고, 본다. 그렇게 입방아에 오르는 사람들은 흔히들 권력자 이거나, 힘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더더욱 앞에 나서서 험담을 할 수 없으니 뒤로 모이면 이렇게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곧잘 한다.   


뒷담화(談話) : 담화(談話)와 우리말의 뒤(後)가 합쳐져 생긴 말. 보통 남을 헐뜯거나, 듣기 좋게 꾸며 말한 뒤 뒤에서 하는 대화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뒷담화라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는 않지만 힘없는 약자 입장에서는 힘이 있거나, 잘 났거나, 대항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과실이나 실수, 부당한 행동 등을 뒤에서라도 이야기해야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릴테고, 불편했던 마음이라도 이렇게 쏟아내야 조금은 편해질 것이다. 그래서 이런 뒷담화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가 없다.


많은 직장 상사들이 노골적으로 '뒷담화'를 제어하려는 사람들은 없지만 자신을 '뒷담화'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상사도 별로 없다. 늘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고, 후배들, 부하직원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생각을 한다. 일각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이지만 진심에서 후배, 부하직원들에게 인정을 받는 직장상사가 간혹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대부분 상사는 몇 가지의 결점과 몇 가지의 단점을 갖고 있는 우리가 아는 그냥 평범한 뒷담화의 타깃이 되는 상사들이 대부분이다. 내게도 이런 상사들이 많았고, 물론 나도 다른 후배들에게 이런 상사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뒷담화는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의 자유 의지이다. 이 뒷담화를 해라, 하지 마라고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말 그대로 뒷담화는 조심스레 뒤에서 시작해서 끝이 나야지 뒷담화의 대상자 앞에서 이런 랄한 이야기를 하고, 듣는 순간 말한 사람도, 듣는 사람도 곤욕스럽기는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진다.


나에게도 이런 곤욕스러운 상황이 있었다. 기술팀장으로 입사하고 꽤 시간이 지났을 무렵 팀은 그대로인데 상급 부서가 바뀌어서 부서 매니저도 함께  바뀌었고, 설상가상으로 바뀐 상급 부서는 기술팀과는 조금은 맞지 않는 사업부서였다.  처음에는 단합도 되고, 분위기도 좋아서 좋은 시너지를 예상했고, 처음 일 이년은 그런대로 크진 않지만 노력한 일들에 대해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매출과 직결된 부서에 소속되다 보니 아무래도 상급부서의 매출 결과에 따라 부서 전체의 분위기가 조석으로 달라졌고, 연말 인사평가 시에 오롯이 매출로만 평가받는 사업부서와는 달리 내가 소속된 기술팀은 사업부서 내에서도 조금은 다른 평가를 받게 되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매니저 입장에서는 원래 속해있던 구성원들(사업팀)에 비해 기술팀의 인사고과가 조금은 좋게 나오다 보니 서운한 감정을 조금씩 드러냈고, 잘 안 되는 집안에서는 뭘 해도 안 되는 것처럼 부서의 분위기는 점점 더 나빠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객사 영업지원 목적으로 외근을 갔다가 제대로 고객 요구사항을 전달하지 못한 영업사원 때문에 고객사에서 낭패를 본 일이 생겼다. 그런대로 고객에게 변명하며 제대로 준비 못한 상황을 둘러댔고, 사정하여 다시 한번의 기회를 받아 들고 잔뜩 짜증이 난 상태로 회사에 복귀했다. 담당 영업사원뿐만 아니라 사업팀 자리가 모두 비어있었고, 그냥 참고 넘기기에는 너무도 화가 치밀어 어딘가에는 억울함을 쏟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비슷한 시간에 외근을 다녀온 동료가 자리에 있길래 오늘 벌어졌던 상황에 대해 설명하였고, 담당 영업사원에 대한 짜증과 분노를 동료에게 신랄하게 토해냈다.  


 "아휴, 아니 이 차장은 자기가 나갈 것도 아니면서 고객 요구사항을 제대로 전달도 못해주고. 나가서 고객한테 싹싹 고개 숙여 사과하느라 얼마나 곤혹스러웠는데요. 너무한 거 아닌가요? 차장님."

 "그러게요. 안 그래도 요즘 요청하는 일마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일 투성이에요. 팀장님"

 "이게 다 사업팀에 팀장이 없어서 그래요."

 "홍 이사님이 팀장같이 보시잖아요."

 "아니 사업본부장이 팀장까지 할 수 있나요. 사업본부장 역할도 제대로 못하시긴 하지만요. 도대체 왜 최 부장을 팀장 발령 안내나 몰라요. 그렇게 다 틀어지고 있어야 속이 시원하실래나."


결국 비난의 화살은 최근 자주 마찰을 빚었던 사업 총괄인 사업본부장에게 돌아갔고, 그간 사업팀 구성원들의 관리의 부재가 가장 눈에 띄어서 결국 쌓이고, 쌓였던 말까지 쏟아내고야 말았다.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렇게 이야기하던 중에 조금은 '싸'한 기운을 느꼈고, 입을 닫자마자 옆자리 사업본부장 자리에서 조심스러운 기침소리와 함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파티션 위로 사람 머리가 '스윽' 올라왔다. 순간 난 머리가 쭈뼛 섰고, 빨갛게 달아오르는 뺨의 열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소리 없이 밖으로 나갔고,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에 난 고개를 들지 못했고 내  앞으로 지나가는 그의 모습을 살며시 치켜뜬 눈으로 조심스레 관찰했다. 내가 본 그의 얼굴도 어느새 빨갛게 상기된 채로 출입문쪽을 향하고 있었다.


 "팀장님, 본부장님 언제부터 있었던 건가요? 하~ 이거 큰일 났네요. 다 들었을 텐데."

 "에.. 헴. 아, 아니 우리가 뭐 틀린 말 했어요. 그리고 뒷담화 좀 했다고 문제 삼겠어요. 어차피 대놓고 앞에서 이야기한 모양새가 되었으니 괜찮을 겁니다."  


막상 담담한 척 이야긴 했지만, 내게 그 순간 든 생각은 '퇴사'였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없는 자리에서 험담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너무도 비겁했던 행동이었고, 두려웠던 시간이었다. 그 날 이후 그 일을 문제 삼지는 않았지만 며칠간 부서 분위기는 조용한 도서관 면학 분위기 같았다. 본부장과 나  둘 모두 그 일은 부서 안에서는 암묵적으로 함구한 채 애꿎게 시간은 흘렀다.


상사에 대한 뒷담화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당연시되는 관례처럼 여겨진다. 아무리 좋은 상사라도 한, 두 가지쯤 흠이 있기 마련이고, 일 잘하는 동료도 인간성까지 두루두루 좋은 경우는 흔치 않다. 쌓이고, 쌓였던 스트레스의 탈출구로 저녁시간 마음 맞는 동료들과 시원한 맥주 한잔과 최고의 안주로 종종 올라오는 상사의 뒷담화지만 자주 하면 버릇되고, 시간과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도리이다. 혹시라도 오늘 상사 뒷담화를 한다면 주변을 잘 살피고, 믿을만한 동료와 진실에 기반한 뒷담화를 권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낭패를 치를 수도 있고, 나 또한 다른 누군가의 뒷담화 술상, 밥상에 올라가는 안주나 반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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