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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11. 2020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세 번의 촬영 그리고 완벽한 통편집

내겐 필패(必敗)의 경험이 있다. 병도 아닌데 꽤나 날 작게 그리고 힘들게 만드는 그런 증세가 있다. 평소에는 경험하지 못할 일들이라 더욱 심증만 있었지 물증이 없었다. 그 증세는 바로...

 '카메라 울렁증'


그 증세를 처음 경험한 것은 첫 직장에 근무할 때였다. 담배를 끊기 전이라 동료들과 건물 입구에 모여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을 때였다. 내 앞으로 갑자기 들어온 작은 6mm 카메라 한대. 순간적으로 몸은 경직이 되었지만 눈은 카메라 옆면에 붙어있는 프로그램명을 쫓았다.  크지는 않지만 선명한 글씨로 붙어있는 스티커에는 'VJ 특공대'라고 붙어있었다.  


 "안녕하세요, VJ특공대에서 나왔습니다. 잠깐 인터뷰 가능할까요?"

 "아... "


갑작스러운 카메라의 등장과 VJ의 인터뷰 요청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잘못한 게 있어서도 아니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 방금 불을 붙였던 담배도 옆 재떨이에 비벼 끄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순간 카메라 렌즈를 통해 투영되는 내 모습이 비쳤다. 한눈에 봐도 무척이나 당황하고, 어색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고요. 요즘 금연 열풍인데 아직까지 흡연 중인 애연가들 대상으로 금연 계획이나 금연을 시도해본 경험 등에 대해서 묻고 있거든요. 괜찮으시죠?"

 "아, 네. 잠깐이면 되죠?"

 "네, 그럼 잠깐 호흡 크게 하시고요. 카메라 보세요."


이렇게 안심을 시킨 VJ는 팔 아래로 내렸던 카메라를 다시 나를 향해 치켜들었고, 이내 미리 얘기했던 질문을 내게 던졌다.  


 "안녕하세요, 요즘 금연 열풍을 맞아 많이들 담배를 끊고 있는데 혹시 금연을 하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아... 내, 내, 내년에 끓으려고요. 아니 내년 아니고 후년에요."

 "......"


이렇게 내 공영방송 첫 출연의 기회는 날아갔고, 추웠던 1월 날씨도 그 순간만큼은 무척이나 덥게 느껴졌다.


이 사건이 잊힐 때쯤 내게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었고, 그 기회도 역시나 보기 좋게 걷어찬 건 또 나였다. 큰아이가 세 살쯤 되던 1월의 어느 날, 기차를 타고 아산에 있는 워터파크로 놀러 가려고 우리 세 가족(둘째가 태어나기 전)은 용산역에서 기차를 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막 열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에서 열차에 몸을 싣기 전 갑자기 한 명의 젊은 남자분이 꾸벅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저 KBS VJ 특공대에서 나왔는데요. 어디 여행가나 봐요."

 "아, 네 여기 서 있는 열차 타고 아산으로 여행 갑니다."

 "아 그럼, 잠깐 인터뷰 가능할까요? 겨울을 맞아 장항선 열차 타고 여행 가는 분들 대상으로 인터뷰하고 있는데 잠깐만 시간 내주세요."


이렇게 내 두 번째 데뷔 무대는 시작되었고, VJ의 질문은 몇 가지 되지가 않고 간단했다. '어디 여행 가시냐', '뭘 타고 가시냐' 등과 같이 짧은 질문과 마지막으로 VJ 특공대 PD님이 알려준 멘트대로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 그날 인터뷰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할 듯 들렸던 질문과 멘트도 카메라 렌즈가 나를 노려보며 돌기 시작하자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운 마음이 더해져 열차 출발 시간이 다 되도록 제대로 인터뷰를 마치지 못했다. 출발 시간이 다되어 PD님이 알려준 마지막 멘트만 간신히 끝내고서야 우린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1월의 추운 겨울 날씨에도 옷 여기저기가 땀으로 젖어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방송을 어렵게 마쳤지만 결론은 '통편집'이었다. 1주일 뒤 용산역을 배경으로 장항선을 타고 기차 여행을 가는 사람들 인터뷰가 방송을 탔지만 정작 십 분가량을 진땀을 빼며 방송했던 나의 영상은 공중파 방송을 타지 못했다. 조금은 허탈하기도 했고, 조금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 하루였다.

 


세 번째 방송 기회는 전 직장에서 기술팀 팀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주로 외근이 많았던 난 조용히 사무실에 앉아 전날 지원했던 곳의 이슈와 향후 계획 등을 정리하며 오후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내 자리로 마케팅팀 부장님이 와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김 팀장님, 오후에 사무실에 계시나요?"

  "네, 오늘은 계속 사무실에 내근할 생각이에요. 내일 외근 갈 준비도 해야 하고요. 왜 그러세요 부장님?"

  "OO 인터넷 신문사에서 '회사 탐방' 기획 기사로 우리 회사에 오는데 인터뷰할 사람이 필요해서요. 김 팀장님 괜찮으시면 잠깐 시간 좀 내주세요."

  "저요? 아니 이사님 계시잖아요. 원래 이런 일은 주로 이사님이 하셨는데."

  "오늘 이사님 오후에 외부에 발표가 있어서 나가셨거든요. 잠깐이면 되니까 부탁 좀 할게요. 외부에서 발표도 잘하시잖아요."


어쩔 수 없이 떠안기는 했지만 난 자신이 없었고,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 사이 인터뷰 시간이 오고 말았다. 처음 보는 고객들 대상으로도 떨지 않고 발표하고, 대화를 곧 잘 이끄는 난 그냥 기자도 그렇게 대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마음을 최대한 편하게 먹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황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김철수 팀장님"

 "안녕하세요."

 "인터뷰 전에 미리 진행 과정 몇 가지 말씀드리고 바로 촬영에 들어갈게요."

 "촬영이요? 그냥 기자님 기사에 내는 인터뷰가 아니고, 영상을 찍는 건가요?"


난 인터뷰하는 기자가 한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마이크임을 알았고, 기자 뒤로 또 다른 스텝이 들고 있는 것이 카메라임을 알고 또 한 번 절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카메라는 돌았고, 십 여분 동안 내 입으로 나간 말들이 도대체 생각을 하며 뱉은 말인지조차 확인할 방법 없이 그날의 인터뷰도 끝이 났다. 다만 인터뷰하는 동안 내가 기억하는 건 기자의 얼굴이 점점 어이없어하는 듯 변해갔고, 내 목소리는 무척 떨렸다는 정도.


나와 인터뷰를 끝낸 기자는 마케팅팀 부장님을 통해 영업 대표와 인터뷰를 했고, 아니 정확히는 다시 했고 그렇게 내 인터뷰는 인터넷 방송에서도 '통편집'되는 참사를 당해야만 했다. 뒤에 인터뷰했던 '영업 대표'의 인터뷰가 회사 탐방 기사로 나가서 내가 나올 자리는 없었다.




얼마 전까지 난 남들 앞에서 발표하고, 소개하는 업무를 자주 했었다. 작은 자리, 큰 자리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떨리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기분 좋은 흥분감을 줄 때가 많았다. 두 눈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들을 바라보면서 얘기하고, 발표하고, 설득하는 내 직업과 일이 좋았다. 하지만 유독 하나의 눈을 가진 이 카메라 앞에만 서면 당혹감과 당황스러움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조절 능력 범위 밖에 있었고, 하나의 눈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식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요즘은 이렇게 카메라를 마주할 일이 적어서 아직까지 이 울렁증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요즘도 스마트폰 카메라에 포즈를 잡으라고 하면 어색하기만 한 나를 보면 이건 아마 불치병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저마다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듯이 내게도 이 카메라 렌즈는 앞으로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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