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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03. 2020

난 혼밥을 고깃집에서 배웠습니다

내가 혼밥을 할 수 있었던 건 그 식당 사장님 때문이다

 "사장님, 여기 소금구이 1인분 하고, 소주 한 병이요."


대학을 다닐 때 가장 힘들었던 일 중에 하나가 혼자 밥 먹는 일이었다. 외향적인 성격에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었지만 내겐 혼자 있는 시간이 특히나 어색하고 힘들었고, 특히 밥을 혼자 먹는 일은 좀처럼 경험하기 싫었던 일 중에 하나였다. 배가 고프면 고팠지 학생식당에서조차 함께 먹을 친구들이 없으면 가끔 식사를 건너뛰기도 했었고, 세끼를 거르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나에게도 이 혼밥의 용기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요즘이야 곳곳에 혼밥족을 위한 테이블이 있는 식당이 즐비하고,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식당을 함께 찾아도 마치 혼자 밥 먹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혼밥 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만 해도 학생식당을 제외하고는 혼자 밥 먹을 만한 공간은 패스트푸드점이 전부였을 정도로 혼밥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다.


난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아서 학교 근처에 있던 패스트푸드점은 혼자 밥 먹기가 쉬운 편이었지만 그 난이도 '하'조차도 쉽게 출입이 되지 않을 때였다. 특히 집안 사정으로 1년을 휴학하고 복학했을 때에는 동기들과 다른 수업을 많이 듣다 보니 복학초에는 이런 이유로 점심밥을 굶는 일이 빈번하게 생겼고, 오히려 이렇게 점심을 거르는 게 싫어서 허기가 지지 않는데도 점심을 먹겠다는 친구들이 있으면 함께 가서 이른 점심을 먹을 때가 많았다.


이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 선배들과 점심을 매번 함께 해결하니 이 혼밥의 기회가 많이 줄어서 좋았고, 특히 저녁도 야근하는 선배들 틈에 끼여서 해결하는 일이 종종 있어서 혼자 밥 먹을 일은 우려할 만큼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저녁을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점심도 아닌 저녁이다 보니 건너뛰면 밤새 허기진 배에 기껏 채울 수 있는 게 배달음식이나 라면이 전부였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쳐 가끔 술 생각이 날 때도 있고, 혈기 왕성했던 20대이다 보니 고기 생각도 자주 났다. 결혼 전 혼자 자취하던 집 근처에는 늘 지나치는 고깃집이 있었고, 작지만 늘 손님들이 제법 아서 삼삼오오 고기를 구워 먹는 냄새에 집에 가는 내 발길을 멈추게 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혼밥 하는 게 어려운 내게 혼자 고기 구워 먹으며 반주까지 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매번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내딛기를 반복하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하루 종일 외근에, 몇 시간을 고객사에서 시달리고 났더니 배도 너무 고프거니와 술 한잔이 너무너무 생각나는 저녁시간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고깃집을 지나는데 어김없이 오감을 자극하는 맛있는 고기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식당 앞을 지나는 날 붙들었다. 무엇에 씌었는지 나도 모르게 들여놓은 발걸음이 식당 입구에서 정신이 퍼뜩 들었지만 다시 발걸음을 돌려 나가기에는 이미 사장님의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와 편안한 미소를 마주한 시점이라 어쩔 수 없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고 말았다.


 "손님, 혼자 왔어요? 뭘로 드릴까요?"

 "아... 그냥 고기 주세요. 2인분이요."

  식당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 게 처음이었지만 난 최대한 익숙한 척 주문을 했다. 하지만 이내 사장님은 이런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조금 더 편안한 어조로 주문 번복을 권했고, 난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식당 벽에 있는 메뉴판을 보았다.

 "손님, 우리 집은 삼겹살, 갈매기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지만 소금구이가 전문이라 목살이 괜찮을 거예요. 게다가 혼자 온 거면 1인분 먹어보고 시키는 게 어떨까 한데."

  메뉴판에는 1인분 주문도 가능하다고 친절하게 쓰여 있었고, 나처럼 혼자 오는 직장인들을 위한 배려로 생각되니 훨씬 편한 마음으로 사장님을 대할 수 있었다.

 "그럼 사장님 소금구이 1인분 주시고요. 먹어보고 더 주문하겠습니다. 참, 소주도 한 병 주세요."


그렇게 주문이 들어가고 금세 내가 앉은 테이블은 세팅이 되었고, 사장님은 처음 온 날 위해 소금구이 1인분을 직접 굽고 잘라주셨다. 게다가 소주병을 따서는 한 잔 따라주시고는 천천히 편하게 식사하다가 가라고 하셨다. 이날 전까지만 해도 혼밥은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로 생각했는데 사장님의 배려로 혼밥도 큰 용기 없이도 가능하다는 걸 알았고,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혼자 밥을 먹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날 이후에도 결혼 전까지 여러 번 이 식당을 찾았고, 한 번 찾았던 곳임에도 사장님은 이내 내 얼굴을 알아보시고는 항상 편안한 미소로 1인분을 주문받아 주셨다. 아쉽게도 결혼 후 이사를 가는 바람에 이 식당을 찾아갈 일은 없어졌지만 혼자 밥을 먹을 일이 생기면 늘 이 식당과 사장님 생각이 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동료들과 윗사람들 뒷담 화하며 일상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왁자지껄 수다로 푸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조용한 식당에서 내게 시그니처 같은 음식과 술 한잔으로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할 때가 있다. 혼밥이 불편하고, 어색했던 그 시절 그 소금구이 식당은 내게는 든든한 저녁과 직장에서의 피로를 한 번에 씻어낼 수 있었던 추억의 장소였고, 추억의 음식이었다. 혼자 자취하며 보냈던 그 시절 가뭄에 단비 같은 그 시간이 가끔은 그리워지는 건 내가 나이 들어서일까, 가을 탓일까. 무슨 이유에서건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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