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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30. 2020

박 과장이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고, 적합한 업무가 있다.

 "종수야, 이렇게 그만 두면 어떡해. 내가 그렇게 매달렸는데 어떻게 안 되겠니?"


입사하고 팀을 꾸리면서 여러 잡음이 있었지만 어려움을 이겨낸 만큼 우리 팀은 어느 부서보다 끈끈했고, 구성원들 간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도 강했다. 가족적인 회사는 탐탁지 않지만 친구 같은 팀은 괜찮았다. 각 부서별로 기술인력을 착출 하여 우리 팀으로 전배 하려던 계획은 각 팀 팀장들의 태클로 계획했던 판은 엎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박힌 돌과도 의견 충돌로 사이가 틀어져 버렸다. 입사한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주변 도움이 절실했던 나로서는 선택지도 없는 괜한 성질을 부린 꼴이 되었다.


그러던 중 타 부서 팀장이 조용히 나를 찾았고, 자신에게 부담되는 해외 지원 업무를 맡아주면 안 되냐는 의견을 조율해 왔다. 물론 기존 지원 인력을 포함한 트레이드여서 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해외 기술지원 업무에 관심이 있었던 난 인력까지 전배 해주는 조건이어서 의사결정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업무와 함께 우리 팀으로 합류한 인력이 종수라는 동료였다. 나이차도 나고 사회경력은 지금 회사가 처음이었지만 성격이 싹싹하고, 업무도 깔끔하게 하는 편이라 팀에 녹아드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2년의 시간을 함께 했고, 업무적으로도, 업무외적으로도 무척이나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할 것 같던 녀석이 갑자기 면담을 요청했고, 심각한 분위기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을 만큼 밝은 녀석이 어느덧 무척이나 큰 죄를 진 것처럼 무거운 얼굴로 며칠 동안 입을 닫았다. 1차 면담, 2차 면담 그리고 마지막 회유까지 해봤지만 결심이 선 종수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이렇게 시간은 갔고, 아끼던 동료는 개인 사유(이민)로 퇴사를 했다.


떠난 동료를 추억하기에는 늘어난 업무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고, 서둘러 난 결원이 생긴 팀의 티오(TO)를 채워야 했다. 이렇게 시작된 새로운 동료 구하기는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을 인터뷰한 끝에 한 사람을 선택하게 되었고, 입사 지원했던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성실해 보이고, 밝아 보이는 박 과장을 최종 입사 결정하였다.


이렇게 입사 결정을 통보하고 난 어느 날, 박 과장은 기특하게도 현재 직장 퇴사 전까지 자체적으로 스터디해서 입사 준비를 하겠다는 의견을 내게 전달했다. 그래서 난 회사의 솔루션을 외부에서 다뤄볼 수 있게 접속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줬고, 이에 따른 매뉴얼도 전달했다. 이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기다리던 박 과장이 입사를 했다.

오랜만에 새 식구라 너무 기뻤고, 경력직 직원이라 그의 기본적인 기술력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7년 경력이 무색할 만큼 그의 기본기는 많이 부족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입사 전 한 달간 자체 스터디를 하겠다던 그의 성실성도 그의 말 한마디로 모두 무너져 내렸다. 입사 전 한 달간 외부에서 접속 가능하도록 구성해 놓은 솔루션에는 한 번도 접속을 해보지 않았다고 하는 그의 말에 난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처럼 난 박 과장을 이제부터라도 트레이닝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력직 대상으로 처음 입사 교육을 진행했고, 주 단위의 과제를 통해 그의 스킬을 빨리 올릴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그는 실력이 오르지 않았고, 같은 과제로 여러 번 지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개선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 더 이상의 트레이닝 없이 고객사로 바로 현장 체험을 권했고, 처음에는 이 방법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동안은 함께 지원하는 영업사원들의 원성이 무척이나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잡음은 없어져서 걱정을 덜었다.


하지만 우려하던 사고는 멀지 않은 시간에 발생했고, 후폭풍 또한 거셌다. K기관 시스템 업그레이드 계획으로 파트너사의 지원 요청이 있었고, 회사 입장에서는 중요 고객사였지만 큰  리스크가 없는 작업이라는 판단하에 담당자인 박 과장을 보내게 되었다. 작업 시간이 이른 오후여서 이슈가 없으면 퇴근 전에 작업은 마무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업 관련 보고는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없었고, 초조한 마음에 박 과장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박 과장은 그제야 작업 완료 보고를 했고, 작업 시간이 길어진 것에 대해서는 고객 사유로 인해 시작 시간이 늦어졌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까지 작업 관련해서는 별 문제없었다고 보고하는 박 과장의 말은 오후가 되어서야 곤란한 상황으로 전개됐다. 함께 작업했던 파트너사의 클레임이 사업부로 접수됐고, 난 팀의 리더로서 사업부장에게 불려 가 전일 시스템 장애에 대한 책임 추궁을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당혹스러웠지만 담당 영업사원의 부연 설명으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고의 경위는 단순 작업에도 불구하고, 작업 계획 미숙지 및 미숙련으로 작업자인 박 과장이 시스템 장애를 발생시켰고, 장시간 복구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게 사건의 전말이었다. 난 장애를 낸 건 둘째치고 파트너사가 연락이 오기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뗀 동료의 거짓 행동과 위선에 더 화가 났다. 한 동안 믿음에 대한 배신감에 더 이상 질책을 하지도, 그렇다고 다독이지도 않았고, 박 과장그렇게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 일이 발생한 이후 더 이상 그 동료에 대한 기대를 갖기도 어려웠고, 신뢰는 더더욱 쌓일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조직의 특성상 여러 일이 겹쳐서 생기면 업무 정리가 되지 않는데, 그 날은 고객사 장애와 사전에 업무 미팅이 나란히 잡혀 있어서 더 이상의 업무 스케줄 소화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고객사에서 납품한 시스템의 내부 시험 결과를 급하게 요청했고, 팀 내부에서 시험은 고사하고 시험망을 구성할 수 있는 인력조차 없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2주 만에 박 과장을 불러서 업무 지시를 했고, 큰 욕심 없이 저녁에 내가 사무실에 복귀하여 시험 진행할 수 있도록 시험망 구성만을 요청했다. 외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사무실 복귀 후 큰 기대 없이 박 과장을 불렀다.  


  "박 과장, 요청했었던 시험망 구성은 완료했나요?"

  "네, 팀장님. 완료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요 박 과장. 퇴근해요. 나머지 시험은 내가 하면 되니까"

  "아, 팀장님 늦으실 듯해서 제가 시험망 구성 후에 테스트까지 해봤습니다. 결과보고서는 메일로 드렸고요."

  "응? 요청했던 망구성 말고도 테스트까지 완료했어요?"

  "네, 혹시 제가 시험 잘못했을 수도 있으니 확인 한번 부탁드립니다."


난 박 과장의 대답에 많이 놀랐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설마' 제대로 했을까 하는 우려의 마음을 갖고서 메일을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박 과장의 시험 방법 및 결과에는 큰 문제는 없었으며, 몇 가지만 수정 보완을 하면 고객이 요청하는 시험 결과 메일을 정리해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너무 놀랍고, 신기한 마음에 박 과장에게 수고했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날 이후 박 과장에게는 부담이 적거나, 내부에서 시간을 들여 혼자 할 수 있는 업무를 주로 지시했다. 그 날 이후 박 과장은 큰 사고 없이 팀에 적응하며, 작지만 자신의 몫을 다하는 팀의 한 사람으로서 역할을 해나갔다.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고, 적합한 업무가 있는 것 같다. 인터뷰를 통해 박 과장을 채용하고, 우리 팀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당사자인 내가 박 과장을 부인했던 건 모두 내 기준에서 동료를 판단하고, 내 눈높이에서 평가하여 생긴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전임자의 빈자리를 모두 메울 거라는 기대 또한 이런 불상사를 만드는 일에 일조했고, 결국 늦게라도 터질 일이 터졌을 뿐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조바심을 내지 않고, 그 당시 박 과장이 할 수 있는 업무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낸 것에 난 놀랐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모두 자기 색깔에 맞는 업무 스타일과 역량으로 처리 가능한 업무를 하면 되는 것이고, 이런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저런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은 드물다. 동료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만 내려놓고, 비우면 많은 사람들이 편해질 수 있음을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함께한 시간이 2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 직장에서 몇 안 되는 팀 동료였고, 팀 해체할 때까지 함께했던 동료라 더 생각이 난다. 요즘은 연락이 뜨음 하지만 가끔은 그의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하하... 팀장님, 잘 지내시죠?' 하는 웃음 섞인 그 말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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