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꿈이 아닌 나의 꿈이었나 보다

아이들을 믿고, 묵묵히 바라보는 게 부모가 할 일

by 추억바라기

"아들, 안정적인 직장 하면 공기업이지. 어릴 때처럼 기상청 가야지."

"아빠, 언제 적 얘기예요. 그리고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나요?"




누군가에게는 처음 가졌던 꿈이 성장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성장하면서 자주 변하는 경우도 있다. 어릴 적부터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내뱉던 꿈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잊히고, 퇴색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렇게 가졌던 마음을 부끄러워하는 꿈도 있다. 어떤 사람은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일을 성장하면서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결국은 그 꿈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다.


너 꿈이 뭐니?


누군가에게는 의례 던지는 가벼운 질문일 수 있어도, 질문을 받는 당사자들에게는 그 질문의 경중을 따질 수가 없을 만큼 의미가 깊다. 꿈을 꾸는 것은 돈이나, 시간이 드는 일은 아니다. 그렇게 단순히 꿈을 꾸는 일만으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꿈의 크기와 상관없이 크고 작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릴 적 내 부모님은 내게 커서 어떤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어릴 적 내 꿈을 얘기하고서부터 꿈에 대한 말씀을 하시지 않은 듯하다. 난 초등학교 시절 그 나이 남자아이들이 많이들 꿈꾸었던 '과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부모님께 얘기한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날 이후 부모님은 내게 꿈이 무어냐고 물어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는 이미 다른 꿈을 꾸었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적은 없지만 중학교에 가서는 또 다른 꿈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전 아들과 진로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아들의 꿈이 특별히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아들이 희망하는 전공이 있다고 생각해서 난 당연히 원하는 꿈이 있을 줄 알았지만 아들의 적성은 고등학교 문과, 이과까지였고, 올해 희망하는 대학과 대학에서의 전공은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의 입학이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우리 아이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나도 그랬고, 지금 대학을 다니는 어린 학생들도 많이들 비슷한 생각으로 대학을 진학했다.


아들이 어릴 때만 해도 난 아들의 꿈은 NASA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 항공 우주연구원 정도의 목표는 두고 있는 줄 알았다. 사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내가 아들에게 알려준 것이지만. 아들은 어릴 적부터 별에 관심이 많았고, 책도 우주나 별 관련 서적을 많이 봤었다. 이런 아들이 기특해 아이들의 외삼촌은 천체망원경까지 선물로 사줬었다. 하지만 아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아내와 난 아이에게 조금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고, 그날 이후 아들은 기상청 입사를 다음 꿈으로 가졌다. 결정적으로 기상청은 그 당시 살던 우리 집에서 많이 가까워서 더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아들의 꿈이라고 생각했던 기상청 입사는 아들이 성장해가면서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뀌었고, 고등학교에 진학 후 본인이 희망하는 진로와는 전혀 무관해져 퇴색되어 갔다. 현재 아들이 희망하는 대학 학과는 공대 계열이다. 이유는 오히려 예전보다 심플하고, 간단해졌다. 본인이 가고 싶지 않은 학과를 제외하고, 졸업 후 취업이 제일 잘되는 학과를 선택했다. 이런 아들의 생각에 나도 큰 이견은 없다. 아내와 난 부모로서 당연히 자식의 생각을 존중한다. 그래서 지금은 가장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고 아이와 함께 고민한다. 대신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지원만을 하려고 애쓴다. 생각해보니 한국 항공 우주연구원이나 기상청은 아들이 가졌던 꿈이라기보다는 아내와 내가 희망하는 꿈이었다. 아들은 한 때 별이 좋았고, 우주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서울 대공원에서 A은행이 주최한 그림 대회가 열렸다. 아들이 희망하여 이 대회에 참여 신청을 했었고, 대회의 그림 주제는 '나의 꿈'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들은 기상청에서 일하는 자신을 꿈꾸며 그림을 그려 입상을 하였다. 그래서 더 아들의 꿈이 기상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아들은 요즘 무척이나 열심히다. 과거 자신의 꿈을 향해서는 아니지만 현재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내일을 향해 뛰고 있다. 이젠 난 예전처럼 아들의 꿈을 만들어 주는 부모가 아닌 아들이 잘 뛰고, 넘어져도 일어나도록 응원하고, 지켜봐 주는 그런 역할로서의 부모로 아들을 바라본다. 아들의 꿈은 아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도 그렇게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얼마 전까지는 잊고 살았었나 보다.


아들이 입상했던 서울대공원 그림대회에서 5살이던 딸아이도 그림을 그렸었다. 참가 연령이 되지 않아 정식으로 참가 신청은 못했지만 4살 터울의 자신의 오빠 옆에서 준비해 간 스케치북에 5살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서 그림을 그렸다. 딸아이의 스케치북을 가득 채운 그림은 세명의 긴 머리 여성이었고, 화려한 색상의 옷과 큰 목걸이가 포인트였다.


"지수야, 여기 여자 세 명은 누구야?"

"응, 공주야. 세명 모두 공주"

"하하, 모두 공주구나. 세명 모두..."

"응. 아빠. 난 커서 공주 될 거야. 예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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