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창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맞벌이를 하셨다. 아버지는 유통업을, 어머니는 속옷 브랜드 대리점을 운영하셨다. 두 분이 벌어들이는 매출이 얼마나 되는지 몰랐지만 동생과 내가 다른 사람들 부러울 것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건 부모님 덕이었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제법 크게 사업을 하신 덕에 부모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 두 분 모두 고향이 아닌 곳에서 자리를 잡으셔서 그랬는지 친하게 지냈던 대부분의 분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확히는 사업을 하면서 만난 사이였다. 그렇게 만난 사이라고 하더라도 만나는 횟수가 빈번하다 보니 많이들 친하게 어울렸고, 가족들 간에 교류가 있었던 분들도 많았다.
이렇게 어울려 가깝게 지내던 지인분들 중에 아버지 사업장 가까운 곳에서 매장을 운영하시던 '아저씨'가 계셨다. 이 분 또한 아버지가 사업을 하면서 지역봉사 단체에서 만나게 된 분인데 두 분이 동년배이신 데다가 사업장도 가까워 아버지와 '아저씨'는 자주 어울렸었다. 더욱 아버지와 그분이 가까워진 건 '아저씨' 아들이 나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와 아버지는 함께 자리를 자주 하며 더욱 친해졌고, 어머니와 아저씨의 아내분인 '아주머니'까지 포함한 부부 동반 모임도 종종 갖게 되었다.
이렇게 가까워진 사이는 급기야 어머니와 '아주머니'도 서로 말을 놓을 만큼 친해졌다. 종종 내가 어머니 속옷 매장에 들릴 때면 '아주머니'가 계셨고, 그렇게 '아주머니'와 어머니도 많이 가까워지셨다. 아주머니는 나와 동갑인 아들 말고도 두 살 터울의 딸이 있었는데, 이렇게 어머니 매장을 찾을 때면 가끔 자신의 딸과 함께 걸음을 했었다.
이렇게 수년이 흐르면서 더욱 부모님들과 두 분은 가까워졌고, 나중에는 오래된 친구처럼 어울려 다니시기까지 하셨다. 하지만 그렇게 지냈던 관계는 '돈'이 얽히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IMF 여파로 아버지의 사업장이 어려울 때쯤 금융권 이외에도 친한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쓰셨고, 그 친한 지인들 중에 그 '아저씨'도 포함되어 계셨다.
이렇게 돈을 빌리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더욱 어려워진 사업장 때문에 결국 아버지는 '아저씨'에게 진 부채를 다 갚지 못했다. 당연히 '아저씨'와의 사이는 금이 갔고, 오히려 돈으로 인해 두 분은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아저씨'를 볼 때마다 죄인이 되었고, 그렇게 예전 관계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가버렸다.
그렇게 여러 달이 갔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던 난 휴학을 하고 집에 내려와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장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고, 어머니의 속옥 매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 당시 어머니는 오랜 시간 운영하던 매장을 쉽게 놓지 못하고 계셨다. 가끔 어머니 매장으로 찾아오는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참고, 버티려고 애쓰시는 모습이셨다. 그 이상한 아이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줌마. 속옷 이거랑, 저거 주세요. 제 사이즈 아시죠?"
"그래, 여기 있어"
"다음에는 신상품도 가져다 놓으세요"
"12만 8천 원인데, 계산은 뭘로 할 거니?"
"계산은 무슨 계산요"
그 이상한 아이는 어머니 가게에 자주 오던'아주머니'의 딸이었다. 자신 부모님의 채무 관계에 있는 어머니의 매장에 가끔 들러 속옷을 그냥 가져가고는 했다. 계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매장인 양 속옷을 골라 매번 그냥 가져갔다. 조카처럼 예뻐했던 아이의 어이없는 이런 태도에 어머니는 안타까워했고, 한편으로는 허탈해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어머니는 이젠 정말 내려놔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시간이 가면서 이 아이의 행동은 더 자주 반복되었고, 나중에는 나도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엄마, 쟤 수진이 아니에요? 양아치도 아니고 정말 어이가 없네"
"에휴, 이젠 아예 쇼핑백을 가져와서 말도 안 하고 그냥 가져간다. 내가 매장을 그만두던가 해야지 이 꼴을 안 보지"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속옷 매장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아버지의 사업장도 매각 처분되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보고 싶지 않은 그 아이의 행동을 그만 봐도 됐지만 어머니 젊은 시절의 일터를 잃게 되었다. 그 아이의 그런 행동은 지금 생각해봐도 상식 밖 행동이었다. 부모들 간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꼭 자신이 채권자인 양 나이도 어린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에 지금 생각해봐도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행동이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안녕하세요', '다음에 가게로 또 놀러 갈게요' 그렇게 살갑게 어머니에게 인사하던 아이가 가면을 제대로 쓰고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인격을 보였다고 생각하니 소름까지 돋았다.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을 두고 잊지 못하는 행동들이나, 상처가 되는 말들이 있다. 살면서 후회하지 않고 사는 삶은 없다. 내가 후회하는 행동과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말은 내게 오랜 시간 기억 한 편의 아쉬움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그런 행동이나 말로 상처를 받고, 피눈물을 쏟았던 사람을 생각하면 나의 후회나 아쉬움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상처를 받은 사람의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면 그건 내게도 회한의 상처로 평생 남게 되지 않을까.
아버지의 채무로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드렸던 빚은 아주 오랜 기간 아버지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도 큰 마음의 짐이셨다. 하지만 그 아이의 상식 밖의 행동으로 어머니가 입은 마음의 상처 또한 적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잘못된 행동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도 정작 상처를 받는 사람의 마음은 치유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도한 행동에 의해서 받게 되는 상처는 사람 자체에 대한 불신과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를 만들 수도 있음을 상기시켜줬다.
착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아프고, 상처를 주는 행동이나 말은 2021년에는 하지 않는 한 해로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