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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20. 2021

내 노후를 걱정하는 아들에게

애들 대학 등록금 걱정은 아내 덕에 잊고 살게 됐다

 "아빠, 이젠 소비를 줄여야 할 때에요. 노후를 걱정해야죠"


내 나이 이제 마흔여덟, 내게 남은 직장생활이 언제까지일지 자신할 수 없는 나이다. 슬프지만 이 삼십 대의 패기도 없고, 사십 대의 노련함도 이젠 허울 좋게 변명으로 들릴 수 있는 세대에 진입할 시기가 이제 곧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그래도 내 힘닿는 나이까지는 일하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일하고 싶은 게 작은 소망이다. 큰돈을 바란 적도 없었고, 일확천금의 꿈은 남의 얘기처럼 살았다. 다만 늙어가면서 지금 하고 있는 작은 즐거움들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내 노후의 삶이다.


아들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딸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 된다. 아들은 작년 2학년 2학기가 되면서부터 자신이 목표하는 성적을 위해 내신 관리가 더 철저해졌고, 둘째 아이는 초등학생의 티를 이제야 벗으려고 한다.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이들 앞으로 들어갈 돈은 점점 늘어난다. 아니 정확히는 최근 한 두 해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내 급여 인상률이 아이들 앞으로 들어갈 지출의 증가율에 따라 잡힐까 항상 걱정이다.


아내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따로 목돈 마련이 어려운 외벌이 가장인 우리 집 형편을 생각해 아이들 대학 등록금을 적금으로 들어놓았다. 참 현명한 내 아내다. 10년 전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서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 기특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급여도 훨씬 작았었고, 아이들 대학 갈 때쯤 되면 그때보다 형편이 훨씬 여유가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들을 볼 때마다 '아내의 적금'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의 준비가 없었고, 당장 1년 뒤에 큰 아이의 등록금을 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갑갑해져 온다. 딱 남들 만큼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게 '여유'를 빼야 하는 가혹한 현실이 지금 당장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


아내의 이런 생각은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일을 계기로 아내와 그런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과거 당장 일어나지도 않은 아이들 대학 등록금 문제로 아내와 의견이 달라 얼굴을 붉힌 적이 있었다. 내 급여로 생활하는 데는 전혀 문제는 없었지만 그 당시 급여만으로 아이들의 미래나 우리의 노후까지 걱정하며 계획을 세우기에는 내 급여가 조금은 보잘것없을 때였다. 난 오늘을 사는 주의라 살고 있는 오늘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장의 지출에 인색하지 않았고, 아내는 그런 내 지출에 조금은 제동을 걸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주저 없이 사 먹었고, 철마다 여행도 곧잘 다녔다. 그 당시만 해도 급여 통장 관리를 내가 하고 있던 터라 아내는 평소 지출하던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계획되지 않은 지출에 대해서는 일체 내게 간섭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런 서로 간의 불가침도 아이들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고, 결국 아내와 서로 다른 의견으로 목소리가 커졌다.


 "오빠, 애들이 대학교 학비까지는 걱정하지 않게 우리가 지원해줘야지"

 "영희야, 둘째 지수가 대학교 다닐 때면 내 나이가 오십은 넘었을 텐데 우리 노후도 생각해야지"

 "요즘 젊은 애들 대학 졸업하고 취업해도 빚 갚느라고 힘든 거 잖아. 우리 애들 그렇게 만들 수는 없어"

 "내가 무조건 안 해준다는 게 아니고, 그때 가서 여유가 되면 당연히 해줘야지. 그리고 나도 직장 다니면서 학자금 갚았잖아. 요즘은 다 그렇게 살아"

 "아무리 그래도 난 애들에게 그런 짐을 지우긴 싫어"


이렇게 아내와 나는 서로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뭔가 정리된 답 없이 상한 서로의 감정만을 나눈 채 대화가 끝이 났다. 아내는 가끔 내 생각이 바뀌었는지 확인은 몇 차례 했지만 더 이상 자신의 주장을 내게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작년 여름 아내는 내게 아이들 앞으로 들어간 적금의 실체를 공개했고, 아이들 대학교 학비 지원을 위해 십 년 가까운 세월을 차곡차곡 모아놓고 있다고 얘기했다. 당장 내년이면 아들이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난 아내의 선견지명과 결단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꽤 오래전 과거일이지만 전 직장 사정이 좋지 않아 여러 차례 급여가 정상적으로 지급되지 않은 일도 있었는데 그래도 꿋꿋하게 아내는 적금을 납입해 왔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 버틴 아내가 대견했다.


 난 사교육을 지양하는 편이지만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면 꼭 보내주는 편이다. 그래서 작년 하반기부터 큰 아이 앞으로 사교육비 지출이 부쩍 늘었다. 이번 겨울 방학을 맞아 특강까지 찾아 듣는 바람에 평소의 배가 되는 학원비 지출이 지난달부터 있어왔다. 그래 봤자 아이 인생에 1년이라고 생각하면 못해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아내와 난 올 한 해 아이의 학원비, 인터넷 강의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의 난 과거보다 수입도 많이 늘었고, 코로나로 인해 외식이나 여행과 같은 지출도 줄었다. 게다가 아내의 철저한 계획하에 아들의 대학 등록금 걱정은 당분간 하지 않아도 되니 천군만마가 따로 없다.


아내와 난 이미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는 상태라 지금의 지출은 전혀까지는 아니어도 크게 힘들지는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지출로 인해 아들이 많이 불편해하는 것 같다. 필요에 의해서라지만 자신에게 들어가는 학원비와 인터넷 강의비 그리고 독서실 비용까지 생각하니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으로 인해 늘어난 가계 지출이 걱정이 나 보다. 주말 늦은 오후 거실에 모여 저녁에 배달 음식을 주문할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아들의 대답은 아내와 나에 대한 걱정인 듯싶은 잔소리였다.


 "아빠, 그냥 집에 있는 걸로 먹어요. 이젠 소비를 줄여야 할 때에요. 노후를 걱정해야죠"

 "응? 아들, 우리 노후를 걱정해 주는 거야? 우리 노후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무 걱정 마"

 "엄마, 아빠가 나이 들면 우리가 챙겨야 하는 거 아냐?"

 "지수야, 민수야. 우리가 다 알아서 할 거야. 너희들한테 손 안 벌리고 잘 살 수 있으니까 나중에 아빠 꺼 달라고만 하지 마"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다. 몸도 마음도. 똑같은 하루를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아이들도 부모 걱정을 할 만큼 부쩍 커버린 게 비로소 보인다. 한 팔로 쏙 안을 만큼 작았던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우리보다 더 커버린 게 조금은 서글퍼진다. 아이들 커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나가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아이들이 마음 쓰는 게 싫지는 않다. 조금은 이기적인 부모로 오늘만큼은 '플렉스'하게 즐기련다.




  "아빠, 옛날  아기 때 아빠 배 위에서 자고 그랬잖아요. 지금 아빠 배 위에 자면 되게 웃기겠다 그죠"

  "하하, 그랬지. 예전엔 내가 너 재우다가 내 배 위에 너 올려놓고 나도 잠들고 그랬는데"

  "지금은 내가 아빠보다 더 크니까 아빠 위에 자면 내가 아빠를 다 덮고도 남겠는걸요"

  "지금은 아들이 더 크니까 아빠가 아들 위에서 자야 그림이 나오지"


오늘 저녁 아들의 장난에 그렇게 또 웃었다. 가족이라면 그래야지 싶다. 함께 한 시간이 가장 많고, 함께 할 시간 또한 많을 테니 그 기억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유인 듯싶다. 오늘 하루도 우리 가족의 일상은 그렇게 웃음 한 페이지를 채우며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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