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코였으면 어쩔뻔했어

110 볼트 전압의 추억

by 추억바라기

"220V가 편하고 좋지만 예전에 220V였으면 난 아마 이 세상에 없을걸요"

"왜요? 사고가 있었어요?"



그 일은 내가 두, 세 살 쯤일 때의 사건으로 들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아버지는 회사를 다녔고, 어머니는 할아버지 댁을 오가며 농사일을 자주 도왔었다. 그렇게 시부모의 잦은 호출로 함께 살지 않으면서도 시집살이를 하던 어머니의 기억엔 잊히지 않던 나에 대한 기억이 있다며 늘 하시던 말씀이 있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와의 불편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잊지 않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두 가지가 있었다.


그 기억중 하나는 내가 갓난아기일 때 아버지는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할아버지 댁 농사일을 돕지 못했고, 할아버지 댁 농사일은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어린 나를 등에 업고 할아버지 농사일을 도왔고, 보통의 아기들보다 조금은 우량아(?)로 태어나 무거웠던 나는 어머니가 계속 등에 업고 일을 하기에는 어머니 체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불행히도 어머니가 일하는 동안 할머니가 손자인 나를 봐주시지 않아서 논이나 밭두렁 위 잠을 자던 나를 싸고 왔던 포대기 위에 종종 재우고는 했었다. 이런 어머니에게도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던 게 고추밭에서 일했을 때라고 했었다.


내가 어머니 등에 업혀 늘어져 자고 있어서 고추밭 한쪽에 눕혀놓고 일을 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이 얘길 했더니 고추밭에 뱀이 많아 애만 그렇게 눕혀 놓는 건 위험하다는 할아버지의 경고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일하는 내내 보지 못했지만 종종 나타나는 뱀 때문에 내가 잘못되었으면 어떡할 뻔했냐고 그날 저녁에도 퇴근해 온 아버지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했더란다.


어머니의 기억중 두 번째는 내가 감전사고를 당할 뻔했던 일이다. 어머니 말로는 내가 아기 때는 너무 얌전해 혼자 방에다 둬도 잘 놀거나, 잘 잤다고 했었다. 물론 잠을 자지 않을 때는 혼자 둘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만큼 얌전해서 잠을 잘 때도, 자지 않을 때도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고 했었다. 하루는 늦은 오후 초저녁 내가 잠을 자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저녁 식사 준비를 하셨고, 한 동안 너무 조용해 어머니는 내가 계속 잘 자는 줄 알고 있다고 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아버지는 퇴근해 오셨고, 아버지가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벽을 보고 혼자 앉아 뭔가 꼬물 되고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들어오자 뭔가에 놀란 듯 난 이내 울음을 터트렸고, 아버지는 놀란 나를 달래고는 내가 앉아있던 벽을 보셨다고 했다.

내가 앉아있던 곳에는 벽에 전원을 꽂는 전원코드가 있었고, 전원코드 한쪽에는 젓가락 한 개가 꽂혀 있었다고 했다. 나머지 젓가락 하나는 제대로 꽂지 못했는지 꽂았다가 빠졌는지 전원코드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그제야 아버지는 내가 벽을 보며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았고, 놀란 마음에 어머니를 불러 상황을 설명했고, 방바닥에 내가 집을만한 위치에 젓가락과 같은 철로 된 물건들을 모두 치우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기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 때만 되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작은 아버지도 온통 이 사건을 이야기하셨고, 정작 그 날의 기억이 없는 난 도대체 어른들이 하는 내 얘기가 사실인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도 궁금하지만 내가 젓가락 두 개를 모두 꽂아서 감전이 되는 바람에 울음을 터트렸는지, 아니면 어린 마음에 무언가 몰래 하다가 아버지가 들어와 들킨 것에 놀라 울음을 터트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당시에는 110V 전압을 사용하던 터라 젓가락을 꽂기도 힘이 들었을 것이고, 실제 감전이 되었다고 해도 생명에 영향을 줄 정도의 강력한 전압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때 지금과 같은 220V의 전압을 사용했다면 난 아마도 크게 잘못되었지 싶다. 친절하게도 젓가락을 두, 세 살의 어린아이가 손쉽게 꽂기도 구멍이 크고, 220V의 전압이면 최악의 경우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큰 전압이었으니 그때 당시 110V 전압이 내 생명을 살린 거라고 할 수도 있지 싶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말 '내가 그랬나' 싶을 정도로 믿기 어렵고, 조금 민망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나도 내 기억 속에는 없지만 나의 부모님이 아기 때나, 어릴 때의 이야기를 해줄 때면 조금은 과장되리만큼 '에이~, 설마요', '제가 그랬어요'라는 말로 그 민망함을 감추려고는 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주 오랜 시간을 소중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건 그만큼 그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날 얼마나 사랑했나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나도 내 아이들의 어릴 때 함께 한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런 사실들을 부정할 수 없게 한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랜 시간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시간을 함께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곁에 안 계시지만 아마도 어머니는 평생 가족의 행복했던 기억을 안고 살아가셨겠지 싶다.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은 오늘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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