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은 방이 하나 있는 단칸방에 주인집을 포함한 여러 세대가 마당을 함께 쓰는 'ㅁ'자형 주택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다세대에서 다섯 살 때부터 아홉 살, 열 살 때까지 살았으니 동생을 포함해 네 식구가 그렇게 방이 하나밖에 없는 단칸방에 살았었다.
처음 내 방이 생겼던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좁은 방에 가구라고는 책상밖에 없었지만 처음으로 가져본 내 방이라는 즐거움에 무척이나 설레 했었다. 집이란 게 함께 밥 먹고, 잠자는 가족 공동 공간이라는 생각에서 공부하고, 놀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게 그렇게 신기하고, 좋았던 것 같다. 내 방이 생기기 전만 해도 자신의 방이 있는 친구가 너무 부럽고 신기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내게도 그런 공간이 생기고 나니 친구 집에 가는 날보다는 친구를 집으로 부른 날이 많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내 방이라는 공간은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나만의 프라이빗(Private)한 조금은 사적인 공간의 의미가 컸고,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던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내 작은 방 턴테이블 위는 휴일만되면 좋아하던 뮤지션들의 앨범이 방안 가득 소리를 채워가며 돌아가는 게 휴일 내 일상이었다.
그렇게 나만의 공간이었던 내 방의 의미는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집의 개념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결혼 초 아내와 난 모아놓은 돈도 없었고, 집안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던 시절이라 TV에서 봐오던 근사한 신혼집과는 거리가 있는 반지하, 방 두 개짜리 전세에서 우린 시작했다. 그렇게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시절을 반지하에 살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나의 로망은단순했다.지금처럼 방 창문을 열면 사람들 다리가 보이는 게 아닌 지나다니는 사람이 내려다 보이고, 창이 있는 안 방에만 볕이 드는 집이 아닌 해가 떠 있는 종일 전등을 켤 필요가 없는 집을 원했다.
그런 집에 대한 로망을 갖고 살던 어느 날 우린 처음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이사를 간 집은 내가 한 동안 원했던 하루 종일 볕이 집에 들고, 창문을 열면 사람이 내려다 보이는 그런 집이었다. 방은 좁았지만 두 개의 방 모두 큰 창문이 있었고, 좁지만 우리 세 식구(그때는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가 자리 잡고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하며 밥 먹을 작은 거실도 있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 로망 하던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그 집은 높아도 너무 높은 언덕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고, 볕이 너무 많이 드는 구형 맨션 맨 위층이라 여름에는 더워도 너무 더웠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인지 원했던 집에 이사를 했더니 또 다른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볕이 들더라도 여름이 너무 더운 맨 꼭대기 층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등반의 기분으로 집에 오르는 게 아닌 조금은 낮은 평범한 지대의 주택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했다. 게다가 아내까지 임신을 하게 되자 네 식구가 살기에는 조금은 좁은 집이 더 아쉽게 보였다. 그래서딸아이를 낳기 전에 우리 세 식구(아내의 복중에 있는 딸아이까지 네 식구)는 보금자리를 또 한 번 옮겼고, 이번에는 넓은 거실에, 방도 세 개나 있는 다세대 구조의 큰 집 1층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반 지하가 있는 1층이라 일반 1층에 비해서 지대도 조금 높았고, 주변 편의 시설이며 큰 도로와도 가까워 결혼하고 7년 만에 가장 만족할만한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그렇게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도 태어났고, 우리 네 식구는 무려 6년을 그 집에 살았다.
하지만 마음에 맞는 집이라도 내 집이 아닌 이상 언젠가는 떠나야 할 때가 오게 되고, 주인아주머니 사정으로 우린 6년 만에 정이 찰떡같이 붙은 그 집을 떠나야 했다. 한 동네에 오래 살면서 이웃들과도 너무 친해져서인지 우린 그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고,근처의 빌라로 이사를 가게 됐다. 내부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인지 전에 살던 집에 비해 깨끗했고, 결정적으로 긴 베란다가 있어서 그맘때 자전거를 타던 아들과 난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겨서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더구나 3층이라 조금은 윗 공기를 쐴 수 있게 됐고, 전에 살던 집은 창을 열면 앞을 막고 있던 다른 다세대 주택들이 있어서 조금은 답답했었는데 이사 간 집은 창을 열면 앞뒤가 트여 있어서 막힌 무언가가 뚫린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내부 인테리어를 했다고 해도 빌라는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연식이 조금 지난 빌라 같은 경우에는 집안에 작은 문제들이 자꾸만 불거지곤 한다. 우리가 살던 집도 그런 일이 자꾸 생겼고, 외벽으로 스며드는 물 때문에 아이들이 쓰는 방 벽이 곰팡이가 잔뜩 쓸 정도로 문제가 커졌다. 내 집이 아닌 이상 내 돈 들여 꾸미기도, 수리하는 것도 어려우니 집주인에게 수리 요청을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때 스멀스멀 올라왔던 생각은 깨끗한 내 집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말도 되지 않는 욕심이었지만 몇 번의 이사와 그 날의 처지를 생각하니 이제는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고 내 맘대로 수리하고, 꾸밀 수 있는 집이 조금은 절실한 생각이 들었던 때였다.
남에 집 살며 작은 문제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오래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온 집 또한 내 집이 아니어서 이사 4년 만에 집주인으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고, 내 집 마련의 꿈이 없던 내게 큰 결심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렇게 우린 오랫동안 살아온 서울 생활을 접고, 더 이상 이사하지 않겠다며 지금 사는 고양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집을 구하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찌 되었건 우린 지금 사는 곳에 안착해 5년째 살고 있다. 더 이상 이사 걱정을 하지 않고. 하지만 아내나 난 늘 꿈꾼다. 우리의 취향만 따지면 지금 사는 아파트 같은 주거 형태는 아내와 내게는 맞지 않다. 늘 식물을 심고, 꽃을 가꾸는 삶을 원하는 아내나 친구들 불러다가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으며 막걸리 한 잔을 하고픈 나에게는 아파트는 그냥 편리함만을 제공하는 스쳐 지나가는보금자리일 뿐이다.
30대 중반 때까지만 해도 누가 내게 나이 들어서 어떤 집에서 살고 싶냐고 물었다면 난 주변에 산이 있고, 물 맑은 계곡이 있는 곳에다 펜션을 지어놓고 살고 싶다고 했을 것이다. 평일에는 아내와 농사짓고, 주말에는 펜션을 찾는 사람들과 어울려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면서 보낼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을 것이다. 조금 나이가 들어 40대 초반에 똑같은 질문을 했다면 난 조금은 시골이지만 사람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에서 카페를 차려놓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세상 사는 이야기와 진한 커피 향을 카페 가득 채우며 살고 싶다고 했을 것이다. 요즘은 글 쓰고,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서조금 더 나이 들면 글 쓰고, 책 읽으며 사는 생활을 꿈꾼다. 집필이 가능한 나만의 서재가 있고, 철마다 색동옷 바꿔 갈아입는 꽃밭이 있는 마당 있는 집을 꿈꾼다. 아파트 화단 볕 좋은 곳을 찾아 눈치 보며 꽃씨를 뿌리는 게 아닌 내 집 마당에 아내와 철마다 꽃씨를 뿌리고, 조용히 나무 그늘 아래에서 차 한잔 할 수 있는 그런 여유 있고, 그림 같은 집을 늘 마음속에 그리고 산다. 집바깥쪽에는 북카페같이 작은 차 마시며, 책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우린 오늘도 언젠가는 지금 사는 아파트를 벗어나 넓지는 않지만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는 날을 꿈 꾼다. 예전에는 집이란 대단한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나와 우리 가족이 마음 편안히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생각하고, 꿈꾸는 집은 지금 우리가 20대 때부터 그려왔었던, 그리고 이루고 싶은 작은 소원들이 이루어진 작은 선물 상자 같은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꿈꾸던 곳으로 이사할 날을 손꼽으며 우린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