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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12. 2021

두 번이나 아내에게 폭언을 퍼부은 그 의사는...

지나친 자부심이 때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 선생님은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네. 갈 때마다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고"



집 근처에 병원들은 많지만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이비인후과는 한 곳이 전부다. 이 이비인후과 병원을 서울에서 이사 오고 난 이후에 가족들 중에 누가 감기가 걸리거나, 아이들 비염이 심해지면 종종 찾았다. 가깝기도 했고, 근처에 이비인후과가 그 병원 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 가족들은 아플 때마다 자주 병원을 찾는 편은 아니지만 환절기가 되면 아내는 감기를 달고 살았고, 아이들은 비염이 있어서 자주는 아니지만 심해지면 가끔은 찾는다.


어느 날 아들의 비염 증상이 심해져 아내는 이비인후과를 아들과 함께 찾았다. 아들과 진료실에 들어가 아들의 증세를 설명하고, 진료고 처방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단순히 병원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진료를 고 온 하루가 지난 이후에 아들의 몸에 발진이 일었고, 아내는 피부과를 갈까 하다 근처 내과를 찾았다.


 "선생님, 아들 몸에 팔뚝에 있는 것 같이 발진이 일었어요"

 "잠깐 볼게요. 음~ 최근에 평소에 안 먹던 걸 먹은 게 있나요?"

 "며칠 전에 비염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다녀와서 처방해주신 약을 먹고 있어요"

 "처방받은 약 봉투 혹시 가져왔으면 좀 볼까요?"

 "네, 안 그래도 혹시 보자고 하실까 싶어 가져왔어요"  


그렇게 아내는 내과 선생님에게 약을 조제해준 약국의 봉투를 내밀었고, 한참을 들여다보던 선생님은 약봉투에 있는 특정 약을 가리키며 그 약이 안 맞는 사람은 아들과 같이 발진과 같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내는 진료 후 이비인후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더 이상 아들에게 먹이지 않았고, 다음 날 다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그렇게 이비인후과 진료실에 들어가 내과에서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하지만 이내 이비인후과 선생님의 표정은 바뀌었고, 아내에게 말도 안 되는 폭언을 퍼부었다.


 "선생님, 아들이 병원 다녀간 다음날 피부에 발진이 생겨서 옆에 내과를 가서 진료받았는데요. 선생님 처방해주신 약 중에 그런 증상 일으킬 수 있는 약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보호자분, 아니 왜 그걸 내과에 가서 물어요. 저희 병원에 다시 오신 것도 아니고, 피부과에 가신 것도 아니고"

 "그게 피부발진은 다른 이유인가 싶어서. 근처에 피부과도 없고요"

 "하~, 아니 제 처방전 못 믿어서 내과에 가서 확인하신 거잖아요.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이네"

 "........."


그 말 이후에도 여러 번 폭언을 하면서 선생님 자신의 화를 아내에게 쏟아냈고, 아내는 너무 어이없고, 황당해서 더 이상 말을 지 못했다. 그날의 사건이 아내가 이비인후과를 결정적으로 싫어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진료 후 병원을 나와서 처방전을 받아 들고 병원 옆 약국에 와서 아내는 약사님에게 이비인후과 선생님과의 사건과 들었던 폭언을 얘기했고, 약사님은 자주 겪던 일인 양 한 숨을 섞어 때로는 동조, 때로는 위로를 하며 아내를 다독였다.


 "에고, 오늘도 병원 선생이 터트렸네요. 어머님 화 푸세요"

 "아니 제가 너무 당황스럽고, 억울해서요. 진료 보러 갔다가 이게 무슨 봉변이냐고요"

 "그러게요. 한두 번도 아니고 병원 선생이 좀 많이 너무 했네요"

 "선생님 무서워서 병원 다니겠어요. 그렇게 화낼 일이냐고요"

 "죄송해요. 어머니. 이구 병원 선생이 오늘은 백번 잘못했네요"


아내는 좀처럼 밖에서 흥분하지 않는 사람인데 워낙 황당한 나머지 병원 옆 약사님에게 자신이 당했던 이야기를 자신의 감정을 섞어 쏟아냈고, 시원한 마음은 들었지만 병원 선생님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는 약사님이 조금은 의심이 되었다. 아주 합리적인 의심이.


그 사건이 있고 아내는 1년여를 그 병원을 찾지 않았다. 환절기에 감기가 심해져도 이비인후과 대신 내과를 찾았고, 아이들 비염 때문에 병원을 찾아야 할 때도 내가 시간이 되는 날 애들을 데리고 가던가 아들은 혼자 보내고는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작년에 오랜만에 아내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그렇게 찾았던 병원에서 다시 발길을 하지 않을 사건이 또 발생했다.


 지금은 오히려 더 심하지만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아내도 병원 진료실에 들어서면서도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과 코를 진료하는 이비인후과 특성상 진찰대에 앉은 아내는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리고 선생님이 지시하는 대로 입을 크게 벌렸다. 입안과 코를 들여다본 선생님은 찍었던 사진과 진료차트를 한 참 들여다보고 있었고, 아내는 선생님이 이젠 입과 코를 들여다볼 일이 없다고 생각해 습관적으로 턱 아래로 내렸던 마스크를 올려 입과 코를 막았다. 이런 행동을 본 의사 선생님은 또 한 번 아내에게 한 마디 했고, 아내는 다시 한번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환자분 지금 마스크 올리신 거예요? 전 목숨 내놓고 환자분들 진료하는데"

 "......."


아내는 그 상황에서 더 할 말은 없었고,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어서 진료실을 나올 때까지 선생님의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는 병원을 나서며 다시는 이 병원을 찾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약국에 가서 마음 좋은 표정의 약사님에게 오늘의 사건을 소상히 고했다.


 "이구, 도대체 저 선생은 환자 대하는 태도가 정말 꽝이죠. 이러다 병원 문 닫으면 어쩌려고. 어머니가 너그럽게 이해하세요. 저 선생이 생각 없이 뱉는 말이 좀 많아요"

 

아내는 위로는 됐지만 집에 와서 내게 이 얘기를 하면서도 좀처럼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했던 의심은 점점 더 확신이 되어갔다. 그 약사님과 의사 선생님은 부부가 아닐까 하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자신감이 지나쳐 자만으로 포장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그런 자신감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라 사람 없다. 좋은 직업을 가졌거나, 많은 돈을 가졌다고 누군가를 무시해도 된다는 권리를 받은 적은 없다. 자기 분야에서 갖고 있는 자부심은 훌륭한 덕목이 되지만 '프라이드(Pride)'는 표현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느낄 때 진정으로 빛을 발하고, 칭찬받아 마땅한 자세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아마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약에 대한 설명을 아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했으면 조금 더 그의 프라이드가 빛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요즘도 그 병원을 찾지 않는다. 물론 근처에 이비인후과가 없어서 도저히 이비인후과를 찾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면 가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럴 일이 없었다. 웬만해서는 집에서 쉬면서 면역력을 높이던가, 조금 더 심하면 약국에서 파는 약으로 치료를 한다. 혹은 내과를 찾아 진료를 받는다.


원수까는 아니지만 아내는 두 번의 황당한 사건으로 더 이상 그 병원을 찾지 않게 되었고, 덕분에 애들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찾을 일이 생기면 딸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는 건 내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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