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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n 14. 2021

같은 날 결혼한 직장 선배 때문에...

동료들에게는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아내와 난 오랜 기간 장거리 연애를 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보니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내와는 자주 만나봐야 일주일에 한 번이 고작이었고, 가끔은 이주일에 한 번씩 만나기도 했었다. 그래서 방학만 되면 난 남들처럼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고향집에 내려가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직접 용돈을 벌며 자립하던 학생이 아니었던 시절이라 오히려 직장을 다니던 아내가 날 찾는 날이 많았고, 학생 주머니 가벼운 걸 알던 아내가 가끔은 내 차비도 챙겨준 적도 종종 있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떨어져 연애를 하다 보니 직장을 다니면 서둘러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머릿속에 있었다. 하지만 막상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니 막내 신입사원에겐 그리 많은 돈과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토요일도 회사로 출근을 하던 시절이라 대학 때처럼 금요일 오후면 아내를 만나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던 그런 설레는 주말은 좀처럼 갖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나마 격주 출근으로 바뀌면서 쉬는 토요일에는 아내를 만나러 갈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는 듯했지만 휴일 근무가 만연하던 때라 갑자기 일이 터지면 잡아놓았던 데이트 약속도 반납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니 혼자 하는 저녁이 늘 외로웠고,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 그리웠다.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하고, 서둘러 양가의 허락을 받아 입사한 해 가을에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다. 결혼이 결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나보다 5~6년 나이가 많은 옆에 부서 선배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그 선배도 나와 같은 가을에 예식을 올린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함께 회사 농구 동호회에서 운동을 하는 사이라 일로는 엮이지 않아도 제법 친한 선배였다. 직접 선배의 자리로 찾아가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나도 이번 가을에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그리 크지도 않은 회사여서 경조사가 있는 날이면 직원들 대부분이 참석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결혼식 날을 받기 전이라 우린 서로의 결혼식에 참석이 당연히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결혼식 날짜가 결정이 되었고, 청첩장을 찍어서 회사에 돌리던 날 그 선배와 난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우리 둘 모두 결혼식이 한날이었고, 시간까지는 같지 않았지만 그 선배는 식을 서울에서, 난 지방에서 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회사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래도 나보다 회사를 오래 다닌 그 선배의 결혼식 참석을 고려하는 눈치였다. 마음으로 서운하기는 했지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분위기였다. 어림잡아 내 결혼식을 오겠다는 사람들을 손꼽아 보았더니 입사 동기 두 명과 팀에서 친한 선배 한, 두 명이 전부였다. 아무리 지방에서 결혼이라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회사 다니는 아들, 사위 회사 직원들의 참석 인원을 알게 되면 양가 부모님도 실망하실까 싶어 조금은 더 신경이 쓰였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결혼식을 2주도 남겨놓지 않은 어느 날 본부장님이 회의실로 나를 따로 불렀다. 직접적으로 업무 지시를 할 관계가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긴밀한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궁금증은 회의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김 주임, 2주 뒤에 결혼이지? 결혼 준비는 다 됐어?"

 "네, 본부장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내가 김 주임 보자고 한  다름이 아니라 우리 사내 산악 동호회 동료들이 김 주임 결혼식에 참석하면 어떨까 해서"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그럼 이번에는 산에 안 가고 모두 제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뭐 꼭 산에 가야 되는 모임도 아니고, 1팀 유 대리 결혼식 하고 날짜가 겹쳐서 회사 직원들이 참석을 많이 못한다고 들었어. 그래서 겸사겸사 우리가 가면 김 주임 면도 좀 살고 그러지 않을까 해서"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그럼 몇 분 오시는지 말씀해주시면 미리 방을 잡아 놓겠습니다"

 "아 그럴래? 안 그래도 되는데 그래 주면 우리야 고맙지. 기왕 방 잡는 거 2박으로 부탁해"

 "2박이요?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안 그래도 걱정이었던 회사 동료들 불참이 단번에 해결된 느낌이라 기분 좋게 회의실을 나왔다. 이틀 후 사내 산악 동호회 총무인 영업부서 선배로부터 메일이 왔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참석률에 참석자 면면히 참석 목적을 따져 묻고 싶었다.


 '철수 씨, 본부장님께 말씀 들었죠. 우리 동호회에서 이번에 17명 갑니다. 숙박 예약 잘 부탁해요. 참고로 그래도 동해안인데 바다 쪽에 숙소면 좋겠네요'


감사함에, 고마움에 제안한 숙박도 '아무리 사내 동호회라도 멀리 강원도까지 주말에 시간 내서 얼마나 참석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얘길 꺼냈는데 동호회 인원에 플러스알파(+a)의 참석인원이 모일 줄은 몰랐다. 내가 재직 중일 당시 전체 직원이라고 해봤자 70명 규모의 작은 회사였고, 산악 동호회 회원은 열명 남짓이었다. 난 메일 내용에 쓰여있는 참석 인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볍게 꺼낸 호의에 본부장님이 덥석 2박까지 말을 꺼낸 터라 무르기도 어려웠다. 다들 내 결혼에는 관심이 없고, 아마 회사 야유회 가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얄밉게도 느껴졌다.


해 놓은 말이 있으니 숙박은 책임져야 했고, 시골집에 계시는 어머니께 숙박 예약을 부탁드렸다. 내 부탁을 듣고 어머니는 참석하는 직원들의 숫자에 놀랐고 그리고 반가워하셨다. 그렇게 내 결혼식 이틀 전까지 시간은 흘렀고, 결혼식 전날 내 결혼식 참석하는 동료들은 이른 오후에 회사를 나와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로 하나, 둘씩 도착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직원들 마중도 할 겸, 잡아놓은 숙소도 둘러볼 겸 난 미리 어머니가 예약해 놓은 숙소에 도착했고, 어머니가 내 동료들에게 전한 감사의 마음, 아들을 부탁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숙소는 바다 전망의 2층으로 된 큰 펜션이었다. 큰 방이 4개나 있는 단체 펜션이었고, 어머니는 동료들이 넓게 쓸 수 있도록 2층 전체를 예약해 놓았다. 1층은 펜션에서 운영하는 횟집인데 어머니는 직원들이 머무는 2박 3일 동안 조식, 석식을 사람 숫자에 맞춰서 예약해 놓은 걸 알게 됐다. 덕분에 동료들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식사 걱정 없이 1층 횟집에서 맛있는 해산물 파티를 할 수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회사에 복귀하고서 알게 된 얘기지만 내 결혼식에 참석한 동료들은 어머니가 예약해 놓은 숙소에 1박만 묵고,  나머지 1박 숙박 비용과 예약한 식사비용을 숙소에서 환불받았다고 했다. 나머지 1박 2일은 속초로 이동하여 설악산에 올랐다가 속초에서 하루 더 자고 다들 서울로 복귀했다고 했다. 물론 환불받았던 돈은 숙박업소 사장님을 통해 어머니에게 돌려드리려고 했지만 사정을 안 어머니가 동호회 총무에게 나머지 1 박하는데 보태 쓰라고 말씀을 전하셨다고 했다. 회사 동료들은 덕분에 강원도 구경도 잘하고,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왔다며 내게 감사함을 전했다.


그때 한 날 나와 직장 선배인 유 대리의 결혼으로 회사 내에서도 말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둘이 사이가 안 좋은 거 아니냐', '선호도도 아니고 인기투표하냐', '둘 다 참석하지 말아야 하나' 등. 그런 얘기들이 오갔어도 많은 동료들은 이동 거리가 짧고, 나보다는 회사에 오래 재직 중이었던 유 대리 결혼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 결혼식은 다른 동료들 결혼식과는 다르게 참석했던 동료들에게 오랜 시간 회자됐다. 다녀왔던 직원들마다 하나같이 '태어나서 이렇게 회하고, 해산물을 배 터질 정도로 먹어본 적이 없어', '회로만 배부른 적은 처음인 거 같아', '펜션 창문에서 일출이 그냥 보여. 펜션 뷰가 와~' 등. 다녀왔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칭찬 덕에 오히려 유 대리 결혼식 참석자들이 부러워하고, 후회할 만큼 나의 웨딩은 인기가 많았고, 오랫동안 동료들 기억 속에 두고두고 추억됐다.


처음에는 2박이나 해달라고 부탁한 직장 상사나, 3일간 식사까지 예약한 어머니나, 하루 숙박료와 하루치 식사값을 환불받아간 동료들이나 조금은 서운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동료들 입에서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에서 들여다본 진심을 알게 되면서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혹은 가족의 결혼식이 아닌 이상 누군가가 나의 웨딩을 두고두고 추억으로 얘기해 준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신기한 일인지 겪어본 사람만 알 일이다. 그렇게 나에게만 특별할뻔했던 내 웨딩이 누군가에게도 특별하게 기억되었다면 비싸지 않은 비용으로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즐겁게 식사하던 동료들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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