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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n 25. 2021

일과 나를 분리해야 하는 이유

미생인 내가 한 걸음은 완생으로 다가갔을까

커져가는 목소리, 혼자 흥분을 쏟아내며 퇴근 무렵 걸려전화기 너머 있는 한 남자에게 늦어진 퇴근을 보복이라도 하듯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분노를 터트렸다. 근거를 가지고 하는 말들일 텐데 그렇게 흥분할 일이 아니었다. 기관에서  하는 논리를 바꾸긴 어려우니 요청한 내용대로 내부 방안을 마련하고, 협력업체에도 무조건 해야 한다고 전달하라는 관리자의 한 반응에 기운이 빠져 버렸다. 아니 관리자가 너무 쉽게 얘기하는 듯한 반응에 화가 났다. 그러고서는 내 입으로 뱉어진 말은 자조 섞인 배배 꼬인 언어의 집합이었다.


"상무님, 너무 담백하게 말씀하시네요. 에휴~ 흥분해가며 기관과 싸운 제가 우습게 생각될 정도로. 앞으로 저도 담백하게 일해야겠어요"




최근 얼마 전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잡힌 업무 일정인 데다 주어진 시간조차 평소보다 많이 줄었다. 안 그래도 시작 단계에서는 늘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평소보다 시간까지 없으니 더 버거울 정도의 업무 양을 처리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스트레스와 쌓인 피로로 어제까지 2주 넘게 힘이 들었다가 이제야 조금은 숨을 돌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늘 마지막 업무 처리를 끝내고 시계를 본 시간은 퇴근을 10분 남짓 남겨놓은 시간이었다.


조금은 마음을 놓고, 몸도 조금은 나른해지던 찰나 갑자기 울리는 진동에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겼고, 액정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이번 프로젝트 관련 업체 담당이었다. 슬쩍 퇴근을 핑계로 둘러대며 피곤해질 일은 내일로 미룰 결심을 했고, 전화를 받으면서도 조금은 더 밝은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계획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고, 전화를 건 당사자는 첫 멘트만 양해를 구하는 허울 좋은 인사를 하고서는 자신이 하려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말을 끊을 틈도 없이 무언가 큰 문제를 찾은 자신의 대단함을 과시하듯, 수정 보완해야 하는 근거를 카드로 꺼내 들며 빠른 시일에 조치하지 않으면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는 경고성 협박까지 곁들이며 나를 옥죄었다. 그는 퇴근을 생각하며 무방비 상태였던 나를 무차별 폭격으로 일순간 무너뜨렸다.


논리적으로 따져 묻고 싶었지만 이미 무장해제된 데다 정신까지 무너진 상태라 바로 맞대응은 힘들었다. 하지만 그대로 당하기엔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정신을 가다듬고 그의 얘기 하나하나에 조목조목 따져 묻기 시작했고, 가볍게 완승을 기대했던 그는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담당자 본인의 개인적 의견이 아닌 기관 담당자들의 전체 의견을 잘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때그때 바뀌는 담당자들 의견에 대해 화도 나고, 조금은 '너도 당해봐라'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장장 30분의 통화로 나도, 그도 흥분되고, 지쳐서 더 이상 이성적 판단이 서질 않을 것 같았고, 실제 득 보다 실이 많은 싸움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의 무의미한 대응을 자제했다.


그렇게 그와의 통화는 끝났고, 전화를 끊고 당장 내일 일이 걱정도 되고 분이 아직 삭히지 않아서 퇴근하지 않은 관리자에게 통화했던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감정도 조금 섞어가며 보고했다. 물론 프로젝트 일정에 대한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멘트는 넣어 사안에 대한 심각성을 함께 알렸다. 얘길 모두 들은 관리자 반응은 조금은 귀찮다는 반응을 보였고, 남의 일인 양 그냥 협력사에 기관의 얘길 전달해서 안되면 협력사는 이번 사업에서 빼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게 전했다. 그것도 너무 쿨하게. 내가 지금까지 왜 흥분했는지 스스로가 납득이 가지 않게 말이다.


일을 하며 가끔은 하던 업무가 꼭 나의 자아인 양 업무와 나를 구분하지 못하고 감정을 섞는 경우가 있다. 열정이 넘치던 20, 30대 때에는 더 자주 겪는 일이었지만 나이가 들고 여유라는 것을 즐기기에 충분한 경험이 쌓인 지금은 감정에 대한 컨트롤이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은 오늘과 같이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터져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그 순간에는 업무에 대한 부족한 정보를, 운영하는 시스템의 오류를 마치 나의 부족함과 나의 오류에 대한 지적을 받은 것처럼 감정을 몰아세우면서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에게 분을 토해내는 나를 가끔 만난다. 그때 바라보는 난 안타깝고, 어떨 땐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업무는 업무일 뿐 내가 될 수 없는데 가끔씩 혼돈하는 날 보며 아직도 난 미생이지 싶다. 내 생애 완생을 이루게 될 날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 거란 믿음만은 확실하다. 그거면 됐다는 생각이 내 감정을 조금은 위로하는 퇴근길이다. 내일은 한발 더 완생에 다가갈 거라 기대하며 무겁게 누르던 기분도, 어두웠던 마음도 먼지 털듯이 툭툭 털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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