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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04. 2021

회사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고요?

코로나 검사를 처음 받은 날의 단상

 "코로나 검사가 처음인데 그거 아프지 않아?"



하루 중 가장 업무에 몰입하는 오전 근무 시간이었다. 갑자기 직원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궁금하긴 했지만 최근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은 관계로 동료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동료의 입에서 나온 '확진자'라는 말에 고개를 돌려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같은 회사 직원은 아니지만 다른 층에 근무하는 계열사 직원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얘기였다. 직접적인 밀접 접촉자는 아니지만 그 사람과 한 층에 근무하는 우리 회사 직원들이 적지 않았고, 그중 일부는 내가 근무하는 공간으로 자주 방문을 하곤 했다.


이렇게 코로나가 가까이까지 온건 처음이었다. 회사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건 처음이어서 직원들은 우왕좌왕했고, 관리부서의 대처나 대응 요령 또한 별도의 전달 사항이 없었다. 개인들의 의견이 분분하고 모두들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관리자로부터 메일이 왔고, 오후에 휴가자 포함한 전 직원들은 가까운 선별 진료소를 방문해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지시였다.


오전 11시도 안된 시간이었지만 당장 검사를 가라는 것도 아니고 오후에 검사를 받으라는 지시사항부터 조금 걱정이 됐다. 하지만 내가 더 걱정스러웠던 건 바로 코를 통해 하는 코로나 PCR 검사였다. 평소에도 병원 중에서 유독 가기 싫은 병원이 이비인후과일 만큼 코를 통해 무언가 들어오는 것을 난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코로나 검사는 싫든 좋든 선택이 아닌 의무이므로 피할 길이 없었다.


다른 팀 일부 직원들은 얘기가 나오자마자 삼삼오오 가까운 선별 진료소를 방문해 검사를 받았고, 나도 팀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 이후에 선별 진료소를 찾기로 했다. 함께 가는 팀 동료들은 모두 PCR 검사의 경험이 있었지만 난 이번 코로나 검사가 처음이라 많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운 마음에 검사를 받고 온 직원들에게 물어봤지만  구체적인 통증이나, 그 통증의 강도에 대한 답변 없이 돌아오는 말들은 모두 아프진 않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는 말이 전부였다.


그렇게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찾아간 선별 진료소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혼잡하지는 않았고, 대기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길지 않은 대기시간이 오히려 내게는 아쉬웠고, 검사를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초등학교 때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교실 밖 복도에 서서 두려움에 떨었던 그 시절의 시간을 생각나게 했다. 앞으로 빨리 줄어드는 대기줄이 내겐 야속하기까지 했다.


줄어드는 대기줄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뒤로 가고 싶은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도축장에 끌려가는 가축만큼은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이미 유체이탈 상태였다. 반 백 살이 다 된 사람임을 잊은 체 무거워진 발걸음을 떼서 검사를 담당하는 검사관 앞으로 다가섰다.


 "여기 앉아서 마스크는 코까지 내리시고, 입은 가려주세요"

 "네"


코로 밀려오는 느낌도 잠시, 갑자기 코 끝에 전해오는 짜릿하다 못해 찡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내려왔다. 2~3초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임에도 내게는 10여 초 이상의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다시 경험하기 싫은 느낌이었고, 검사를 하고 나온 뒤에도 코 끝의 찡한 여운은 꽤 오랜 시간을 머물다 없어졌다.


 "아휴, 너무 아픈 거 아니에요. 한참을 찔러서 정말 욕할 뻔했어요"

 "원래 그렇게 아픈 게 아닌가요?"

 "오늘 검사한 분이 유독 좀 깊이, 아프게 찌른 거 같더라고요"


함께 검사를 받았던 동료의 말을 들어보니 오늘 경험한 PCR 검사가 전에 검사받았던 것보다는 조금 깊게, 오랜 시간을 찔렀던 것 같았다. 그렇게 내 코로나 첫 검사는 어린 시절 교실 복도에서 예방 주사를 기다리던 것처럼 두려움으로 대기하고, 수 초간의 짜릿한 경험으로 짧았지만 강렬한 느낌을 남겼다. 확진자가 나왔던 층에 근무하는 직원들 포함한 다른 층에 부서원들은 사무실로 복귀 후에 오후 근무를 모두 재택근무로 변경했지만, 내가 근무하던 부서는 근무하는 층도 다르고 밀접 접촉자가 없는 관계로 퇴근 시간까지 사무실을 지켰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PCR 검사 결과가 나온 후에 결과에 따라 익일 출근이 종용되었고, 난 사무실까지 거리도 있고 해서 오전은 재택근무를 하고, 오후에는 휴가를 쓰겠다고 미리 관리자에게 보고를 했다.


퇴근길 평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지하철에서도 최대한 사람들과 접촉을 피했고, 퇴근해서도 식사를 할 때와 잠을 잘 때를 빼고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가족과의 물리적 격리가 쉽지 않은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가족과 거리를 두고, 식사와 잠도 따로 하는 게 최선이었다. 거기다 평소 같으면 한 참 수다를 떨어야 할 저녁시간에 난 일절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아이들과 아내 반경 1~2M 내에는 가지 않았다.


이런 생경한 상황은 다음 날 오전 9시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OO구 보건소로부터 카카오 메시지를 받고서야 비로소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고,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서야 답답했던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웃고, 얘기할 수 있었다. 반나절밖에 되지 않았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가 격리도 해봤고, 세, 네 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재택근무를 경험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두려워했던 코로나 PCR 검사도 받아보면서 코가 찡했던 경험은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렵다고 피하기에는 그리 고통스럽거나, 놀랄만한 통증은 없었다. 무엇보다 코로나가 아니라는 게 무척 기분 좋고, 기뻤다.


처음으로 해 보는 일들은 50년 가까이 살았어도 신선하고, 두렵다. 매사에 처음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두려움에 걱정만 할게 아니라 한 번 경험해보다 보면 두 번째는 조금 더 수월해질 것이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열 번이 되는 일들이 많다. 물론 코로나 검사를 그렇게 많이 받으라는 건 아니지만 두려움만 가져서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에 소심해지고, 작아질 수밖에 없다. 대범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접하는 첫 경험들에 대해 조금은 과감한, 두려움을 조금은 뺀 사실만을 생각하면 도전이라는 게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새롭게 도전하는 건 나이가 정해져 있지 않다.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듯이 무슨 일이든 경험해보면 그만큼 어떤 일에 대한 판단의 기준점도 명확해지고, 살면서 쌓이는 지혜 또한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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