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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20. 2021

당신이 하고 싶은 말 시원하게 해 드릴게요

오늘 내게 필요한 건 업무 분석이 아닌 위로 한 잔이었다

 "저기 이 과장님, 나한테 감정 있는 거 아니죠.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전 원칙대로 할 뿐입니다. 저야말로 김 부장님 때문에 힘들어요"


새롭게 들어간 프로젝트로 정신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래저래 바쁜 일도 문제였지만 일로 엮인 관계의 사람들 때문에 더 힘든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한 가지만 붙잡고 진행해도 수개월을 꼬박 매달려야 하는 업무인데 관리자의 지나친 긍적 마인드와 여러 가지를 움켜쥐고 포기하지 않는 욕심이 결국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 과중한 업무도 업무였지만 함께 하는 업체의 담당자가  피를 말리는 일이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얼마 전 관리자로부터 진행하던 일들 이외에 추가로 다른 업무를 함께 진행하라는 업무지시를 받았다. 안 그래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업무를 처리하던 내게 추가적인 업무 할당은 불어닥칠 사건들을 이미  예견하고도 남았다. 설상가상으로 업무 담당자가  까탈스럽기까지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처음엔 추가 업무 담당자가 기존 프로젝트의 담당자와 동일인임을 알고서는 조금 다행이다 싶었다. 관리자의 계획성 없는 일처리로 일도 여러 가지를 벌려놓고 하는 처지에 사람까지 여럿을 상대하는 건 더욱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른 프로젝트로 만난 그 담당자는 기존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사뭇 다른 업무 태도를 보였다. 업무 처리에 지나치게 주관적  해석을 통한 업무 태도도 그렇고 나이도 젊은 사람이 고압적인 자세까지 보여서 랜선으로 자주 업무를 하는 내가 거부감이 들 정도의 표현들을 자주 했다.


내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더욱 힘들었던 건 검토 요청을 메일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은 전화로 대부분 처리한다는 것이다. 특히 업무가 끝나기 10~ 20분 전에 전화해  보낸 문서의 잘못된 오류를 지적하고, 수정을 요청하는 경우가 생기는 일이 잦아졌다. 난 서로 회사가 다르더라도 함께 일하는 관계에서는 동료애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상식선의 배려가 기본이라는 생각을 해오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는 하루의 업무를 정리하는 퇴근을 앞둔 시간에 요청할 일들을 유선상으로 툭툭 뱉어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곤 했다. 그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오히려 내게 감정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2개월이 넘는 시간을 시간에 쫓기고, 몸을 축내며 달려왔다. 그래도 꿋꿋하게 참아가며 일해왔지만 자꾸 불어나는 새로운 업무와 그 업무 때문에 엮인 사람과의 갈등으로 폭발의 순간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지도 오래다. 요즘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틴다는 표현이 딱 드러 맞는 것 같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주변에 도움의 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관리자 밖에 없는 상태였다. 감정적 전달일 수도 있었지만 난 현재 겪고 있는 업무 진행에 대한 고충과 업체와의 갈등, 업체 담당자의 업무 태도 등을 관리자에게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크게 바뀔만한 대안이나, 솔루션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게라도 위로와 공감을 받길 원했다. 하지만 관리자는 늘 자신의 주관적인 잣대와 지극히 이성적 판단으로 가만히 내가 한 얘기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시시비비를 가렸다. 관리자의 말을 요약하면 업체 담당자는 자신의 일을 철저하고, 꼼꼼하게 잘하는 것이고, 일을 잘하는 사람을 만난 게 조금 피곤한 일이지 그렇게 일하는 담당자를 탓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 관리자의 말이 옳다는 생각은 더더욱 들지 않았다.


지금의 관리자와 함께 일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단순하게 일을 벌이기만 하는 업무 태도나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지나친 긍정적 마인드라서 리스크 관리가 되지 않는 부분이 과거 관리자로서의 경험이 있는 내겐 항상 불편했었다. 일을 할 때마다 종종 거슬리고, 신경이 쓰였지만 평소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 부분들이라 좋고, 나쁜 관리자의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의 일로 난 관리자의 가장 큰 단점을 알게 되었다. 모든 관리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 그에겐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공감(共感)' , 타인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에 찬성하여 자신도 유사하게 느낌. 공감능력은 ‘나는 당신의 상황을 알고, 당신의 기분을 이해한다’처럼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


일을 하다 보면 했던 일이 옳을 때도, 그를 때도 있다. 다만 일에 대한 시시비비만 따질게 아니라 내 부하직원이 얼마나 힘이 들지, 내 동료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모든 관리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공감은 때로는 위로의 다른 표현이다. '공감'이 가진 힘은 무척이나 크다. 작게는 작은 표정과 호응하는 제스처가 있을 테고, 크게는 '맞아, 맞아', '나도 너하고 생각이 같아'와 같이 적극적인 의사 전달도 있을 것이다. 이런 돈 안 드는 작은 말과 표현들이 마음고생, 몸 고생하는 동료나 부하 직원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관리자에게는 당장의 무엇보다 꼭 필요한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들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이 난다. 두 달이 넘는 시간을 지치고, 힘들게 보내고 있는 이번 여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한잔 함께 기울이며 내 얘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관리자의 센스가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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