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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부터 시작된 오만 원의 행복 릴레이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소비가 우리 가족의 경쟁력이죠

by 추억바라기
"엄마 여기 오 만원. 오늘은 내가 쏜다"


딸아이가 오만 원권 지폐를 오른손에 들고 방에서 나오면서 저녁 외식을 제안했다.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딸아이가 오늘은 통 크게 가족을 위해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 아내나 난 너무도 오랜만에 가족을 위해 돈을 쓰는 딸아이가 신기하기도, 반갑기도 했다. 무엇보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아내는 더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당연히 메뉴 선택은 딸아이에게 우선권이 있었고, 딸아이는 자신이 먹고 싶다던 해물찜을 주문했다. 그날은 딸아이 덕분에 근사하고, 푸짐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녁 준비 없이 편하게 주문 배달하여 해결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종종 자신이 가진 돈으로 가족들을 위해 또는 자신을 위해 소비할 때가 있다. 이런 일들이 자연스러운 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의 긴 시간을 지켜왔던 습관이고, 가족들 배려로부터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의 가족을 위한 배려와 몸에 베인 습관들이 우리 가족이 살아오는 곳곳에서 서로를 웃게도 해주고, 따뜻하게 해 준 흔적으로 지금까지 남았다. 과거 넉넉하지 않은 생활비에 가끔씩 고장 나는 가전이 생길 때면 아내나 난 꼭 필요한 가전이면 울며 겨자 먹기로 소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청소기가 고장 났을 때도 그랬다.


어느 날 결혼하면서 처음 샀던 청소기가 10년을 쓰고는 고장이 나버렸다. 20~30만 원대의 청소기가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평소 소비하던 패턴이 있는데 갑작스럽게 들어가는 돈은 언제나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꼭 갚아야 할 빚과도 같았고, 해야 할 숙제를 미뤄놓은 것 같이 찜찜한 기분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당장은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지만 다음 달에 돌아올 부메랑이 당연히 걱정되는 소비일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그런 마음이 전해졌었는지 아니면 아내와 내가 하는 얘기를 들어서였는지 아들이 갑자기 아내에게 청소기를 사준다고 말했다.


"엄마, 설날에 받은 세뱃돈 모아놓은 내 통장에 돈 있지?"

"그럼, 엄마가 차곡차곡 잘 모아놓고 있지. 왜?"

"내 통장 돈으로 청소기 살 수 있으면 내가 엄마 청소기 사줄게"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덥석 자신이 모아놓은 돈으로 청소기를 사주겠다는 얘기에 아내나 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아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받기로 결심한 나와 아내는 며칠 뒤 '하이 OO'에 가서 청소기를 구매했고, 그렇게 아들이 사준 청소기를 아직까지 쓰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은 자신이 매달 받는 용돈과 명절 때 친지들께 받는 세뱃돈을 조금씩 모아서 자신이 사고 싶었던 제품이나 옷 등을 종종 사고는 다. 아이들이 입는 옷만 봐도 꼭 필요한 옷들은 아내가 사주지만 아이들의 필요에 의해서 사는 건 항상 아이들 돈으로 소비를 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도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자신 앞으로 들어가는 많은 학원비 지출이 미안했는지 십여만 원이나 되는 수능 문제집들을 자신의 돈으로 샀다. 이렇게 플렉스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릴 때부터 세뱃돈 등을 모아놓고 아내가 관리해 주던 통장을 아이들에게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각자 사용하는 통장으로 옮겨주었기 따문이다. 갑자기 불어난 통장 금액에 아이들은 조금 놀라긴 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일부는 소비를 했고, 갑자기 생긴 돈으로 늘어나는 추가 지출 또한 조심하는 눈치였다. 각자의 방식으로 개념 소비나 착한 관리를 하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두 아이는 소비 패턴이 조금씩 다른 편이다. 아들 같은 경우에는 마음에 들어 사려던 옷을 구매할 때면 가끔 아내 것도 함께 사주려고 할 때가 있다. 요즘은 어릴 때보다는 자신을 위한 투자가 많이 필요해서 그런지 많이 인색해졌지만 아직 가끔은 그런 착한 소비를 할 때가 있다. 딸아이는 자신에 대한 소비에도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 편이다. 한 번은 딸아이가 어릴 때 아내와 학교 앞 문구사에 들러 한 참을 이것저것을 사달라고 아내를 졸라댈 때가 있었다. 이렇게 졸라대는 딸아이가 사달라고 조르던 물건을 자연스럽게 손에서 놓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수야, 그럼 지수 통장에 있는 돈 찾아서 사자'라고 아내가 말하면 딸아이는 두 손에 잡고 있던 물건들을 슬며시 제자리에 놓고 오곤 했었다. 하지만 이런 딸아이도 통 큰 소비를 할 때가 있다. 가끔 가족 외식을 제안할 때면 자신의 돈으로 계산한다고 지갑을 열곤 해왔다. 두 아이 모두 가족을 위한 착한 소비를 습관처럼 해왔다.


얼마 전 딸아이의 오만 원 통 큰 소비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던 난 지갑은 가벼웠지만 딸아이 마음이 기특해 조용히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무더위에 지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오늘은 내가 지출을 결심했다. 가족들의 의견을 모아 모아서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서 O 앤 O'에서 배달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배달 주문을 통해 차려진 밥상으로 오늘 저녁 식탁이 푸짐해졌다. 오늘 내 지갑에서 나간 돈은 딱 오만 사천 원, 딸아이에게서 시작한 오만 원의 행복 릴레이다. 가족 모두가 이렇게 오만 원으로 행복해지면 그 돈은 착한 소비인 거다. 거기다 아내의 마음을 대신 한 마디 더 붙여 본다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역시 난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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