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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27. 2021

아내가 내게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한 어느 날

나를 위로하는 한 마디가 너무 따뜻했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게 전쟁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순간 잊고 산 말이었다. 매너리즘에 빠질 만큼 익숙해진 업무와 반복된 루틴으로 일상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참 열심히 살던 시절과 비교하면 너무도 부끄러웠던 몇 년이었다. 처음 직장생활을 하고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긴장도 됐고, 몸은 힘들었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과 기술력이 늘어나는 게 냥 좋았다. 함께 일하는 선배들 칭찬하는 소리가 좋았고, 회식에서 가끔 부서장이나 팀장이 나를 부추기는 말들이 듣기 좋았다. 잘하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일했다.


회사를 옮기고 시간이 지나 관리자 자리에 앉으면서도 내가 맡은 실무에는 끝없는 욕심을 가졌고, 부서 관리도 열심히 하려고 나름은 애썼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의 팀원들은 내가 원하는 업무 스타일을 이해했고, 내 관리 아래 일사불란까지는 아니라도 질서 있는 모습으로 유기적인 관계들을 보여줬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면서 식지 않는 내 열정에 스스로가 놀랐고, 늘 무언가 해내고, 성취하는 일들에 만족감을 느끼며 지냈다. 일을 하며 부대끼는 일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내게는 늘 가족이라는 지원군이 있었고, 쌓인 스트레스를 갖고 집에 들어가는 날에는 아내와 대화를 하다 보면 스트레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A 지자체 담당자는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 같아요. 솔루션을 자신들 입맛대로 어떻게 바꿔요"

 "그러게요. 중소기업 살려야 된다면서 왜 공무원들이 그렇게 중소기업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그러지?"

 "아휴, 그래도 설득하다 안되면 개발팀에 요청사항 정리해서 줘야죠. 그나저나 팀원 인재로 담당 고객사에서 담당 엔지니어 바꿔달라고 클레임이 왔어요. 내일 내가 고객사에 들어가 봐야겠어요"

 "그래요. 몸도 잘 챙기면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요"


내게는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도 항상 따뜻하게 돌아갈 보금자리가 있다는 게 너무도 힘이 되었고, 무겁게 퇴근한 발걸음은 다음날 '폴짝폴짝' 어느새 가벼운 발걸음이 되어 출근길에 나서고는 했다. 늘 든든한 지원군들 덕에 편하게 일 할 수 있었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난 내 일을 좋아했다. 일이 많아서 몸이 힘든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일이 없어서 무료하고, 심심한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내게 조직 내에서의 갈등과 직속 관리자의 음해 등은 결국 나를 처음으로 포기란 단어를 생각나게 할 만큼 핀치로 몰아세웠고, 결국엔 남의 일처럼 흘려만 들었던 번아웃 상태까지 오게 했다.


'월급 루팡. 남의 일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시간이 지나 밀려온 부서에서 맡은 일은 예전 부서에 있을 때 일이 없어 보여 조금은 무시하던 부서의 업무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업무와 부서로의 발령이었다. 처음엔 회사가 내게 한 조치의 부당함에 화도 많이 났지만 그 부서의 업무에 익숙해지자 업무 시간에도 개인 시간이나, 자기 계발이 가능한 업무량에 스스로가 점점 더 만족해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 수행해야 하는 업무가 있었지만 일 년 중 사, 오 개월 바쁘게 처리하면 되는 일이라 나머지 육, 칠 개월간 주어지는 자유로 충분히 보상이 됐다.


그렇게 이년을 지냈다. 난 업무의 만족도도 낮았고, 재미도 없는 일을 수동적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내 커리어와 상관없는 업무를 하면서 스스로를 죽이고, 수동적인 생활을 버티며 살았다. 그렇게 살아온 내게 늘 하던 루틴의 업무는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유사하면서도 사람이 바뀌니 하는 업무는 조금씩, 혹은 많은 부분 달라졌지만 그 또한 원하던 업무가 아닌 딴에는 가슴이 뜨거워지지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지도 않았다. 게다가 노력에 비해 진행은 더뎠다. 무겁고, 지루한 마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퇴사 그리고 이직밖에 없었기에 차곡차곡 계산해서 이직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고,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렇게 옮겨온 회사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수년간 하고 싶었던 업무였고, 과거 회사에서 어떻게든 만들어보려던 사업 분야였지만 좀처럼 투자를 아끼는 회사에 많은 실망도 했었던 분야였다. 때마침 주어진 업무나 포지션도 기대가 큰 일과 위치였다. 그렇게 의욕적으로 시작한 새로운 회사생활, 난 맡은 업무에 어떻게든 빨리 적응하려고 애썼고, 새롭게 맡은 일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이며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몸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관리할 조직도 커지고, 새로운 업무에 대한 부담이 커서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욕심인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몰아세우는 날들이 많았다. 잘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인지, 자존심 때문인지 8시간을 회사에서 몰입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늘 집에서는 배터리가 조금도 남지 않은 방전된 건전지 같았고, 소파에 앉으면 조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내는 늘 이런 나를 곁에서 보며 불안감을 가졌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였다. 이런 아내의 걱정이 최근 내게는 더 부담스럽게 다가왔고, 오히려 힘들게 밖에서 일하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내의 생각이 조금은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어느 퇴근 후 저녁,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퇴근한다고 했지만 긴 퇴근 거리 탓에 아이들이 식사를 마칠 때쯤 난 식탁에 앉을 수 있었다. 최근 잦아진 야근과 몇 번의 외부 식사자리로 아내는 걱정스럽고, 서운한 마음을 비추던 때였다. 아내와의 대화에서 지금 회사에서의 일들과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책임감이나 마음을 전했다.


 "요즘 내가 식사도 함께 자주 못하고, 집에 오면 늘 지쳐있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 같네요. 근데 아마 당분간은 이런 모습일 거예요. 새로운 회사에, 업무도 해왔던 업무와 전혀 다른 업무지. 게다가 맡은 직책도 본부를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위치라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래도 나 지금 있는 곳에서 잘해보고 싶거든요"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굳어졌던 아내의 표정이 풀렸다. 생각해보니 요즘 내가 집에서는 회사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하지 못했고, 예전과 다르게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쏟고 와서 집에 오면 늘 지쳐있는 모습만 보인 듯 싶었다. 그런 내 건강 걱정에 아내는 늘 불안감을 비췄지만 속 좁게 그걸 '간섭'이라는 오해로 혼자 옹졸하게 해석하고, 스스로를 더 불편한 감정으로 몰아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에게 부끄러웠고,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날 밤 잠을 청하기 위해 아내와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평소 같으면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쓰고 잠을 자던 아내가 오늘따라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은 내 머리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조명 없는 깜깜한 방안임에도 아내의 시선이 느껴졌고, 무언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이 입을 움직이더니 내게 한 마디를 건넸다.


 "너무 애쓰지 마요 철수 씨" 어둠 속에서도 따뜻한 아내의 표정이 느껴졌다.

 "그래요. 걱정 안 끼치게 너무까지는 아니고, 조금만 애쓸게요"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로 지치기도, 지쳐서 쓰러지기도, 쓰러져서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지쳐도 위로해주고, 쓰러져도 일으켜주고,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데 이유는 충분한 듯하다. 인생의 목표는 저마다 다르다.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런 인생의 최종 목표가 있다. 변하지 않는 하나의 목표였다. 무언가 대단한 성공도, 근사한 명예도 아니다. 다만 지금 내 곁에 있는 나의 아내와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삶을 끝까지 지키는 게 나의 단 하나의 목표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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