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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24. 2021

이직한 회사에는 텃새가 삽니다

역지사지보다 중요한 건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2011년 가을, 회사 경영 악화 등으로 난 5년 만에 다시 이직을 해야만 했다. 헤드헌터로부터 제안받았던 포지션도 관리자였고, 업무나 급여 등의 조건도 만족할만한 제안이어서 나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내가 오히려 이직을 간절히 원했다. 관리자 포지션의 면접은 처음이라 긴장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자신감 있는 태도로 면접을 무난하게 치렀다. 나오는 질의에 준비된 답변으로 대응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도 순발력 있게 잘 대응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면접을 보고 난 뒤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합격 통보를 받았고, 그로부터 두 달여 뒤에 난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전 직장에서 관리자 경험이 있긴 했지만 전임 팀장의 퇴사로 자연스럽게 차석인 내게 기회가 왔고, 엉겁결에 팀장이 된 터라 준비된 관리자가 아닌 준비되지 않은 수습 관리자 같은 모양새로 일을 했었다. 하지만 이직해 간 곳은 외부 관리자를 영입하는 자리였던 터라 준비된 관리자 인양 보이고 싶은 욕심이 컸었다. 하지만 실상은 생각했던 조직과는 모양새가 달랐다. 새롭게 꾸려지는 조직이라 팀원도 없었고, 수행 업무도 대표 이사와 부서장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계획만 있던 상상 속 부서였다.


실망이 컸지만 손 놓고 시간을 보내기엔 내 성향도, 개인적인 욕심도 당면한 상황을 그냥 참고 있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직한 회사가 보안 솔루션 벤더이다 보니 제품을 기존 인력보다 많이까지는 아니어도 비슷한 수준으로는 알아야 말도 통하고 가까이할 수 있을 거라고 나름 판단했다. 그래서 매일 혼자 테스트룸에 처박혀 틈 날 때마다 제품을 시험해보고, 문서를 만들었다. 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객사에 나가는 타 부서 엔지니어를 따라나서기도 여러 차례 해봤다. 사서 고생이다 하는 말들이 오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시간을 보낸지도 두 달이 되어 갈 때쯤 정식으로 팀이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인사팀 담당자의 소식이 들려왔다. 당연히 새로운 팀의 팀장 자리는 나로 내정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함께 일할 부서원들에 대한 구성이 문제였다. 기존에 있었던 각 팀에서 인원을 전배 해야 하는데 이놈의 회사는 인사에 대한 모든 권한조차 팀장에게 있었다. 부서장의 방관 아래 각 팀 팀장이 알아서 자신의 팀원 1명씩 전배를 권고하는 형태였다. 당연히 협조적인 부서는 없었고,  기존 박힌 돌끼리 사전에 담합하여 내게 부당한 요구까지 서슴지 않았다.


부서장이 명을 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 중 한 명이 내게 따로 회의 요청을 했고, 시간에 맞춰 회의실에 들어간 난 내게 회의 요청한 팀장외에도 나머지 팀 관리자 세명까지 함께 있는 걸 확인하고 좋지 않은 상황임을 직감했다. 결국 회의실에서는 팀장들마다 팀별 인원 전배에 따른 조건들을 제시했다. 충원 인력을 뽑기 전까지 삼 개월의 한시적 전배부터 전배 되는 인력의 업무까지 이관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다들 최소한의 피해를 보겠다는 얄팍한 계획들로 도배된 자리였다. 너무도 어이없고 기가 막혀서 모든 인원들을 고사하고 회의 자릴 나왔다. '니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멘트는 덤으로 얹고서. 그렇게 일인팀으로 시작해서 결국 두 명의 충원으로 정예(?)의 팀을 만듦으로써 조직에 걸맞은 일들을 해나갈 수 있었다.


그 시절 텃새 아닌 텃새를 겪으면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뺄 수는 있어도 뭉쳐진 박힌 돌들을 모두 빼긴 역부족임을 깨달았다. 역시 뭉치면 쓸데없이 용감해지고, 없던 대의도 생기는 듯싶다. 그들의 그런 행동이 옳다고 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꼭 그릇된 행동으로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놓고 보았을 때 자신이 가진 걸 지키고, 보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조직, 사람, 일과 같이 회사에서 생긴 무형, 유형의 가치들은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닌 회사 공통의 자산이자, 재산이다. 단지 그들의 실수는 그런 자산이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해서 자신이 가진 사람, 일을 뺏긴다는 생각에 없던 부서 간의 결속, 단합까지 해가며 단지 지키려고 했던 것뿐이다.


누구나 '역지사지'를 운운하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남'을 탓하지만 정작 내가 그 '남'일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아주 작은 손해나 피해까지 입는 것조차 싫어서 조금은 치졸하고도, 못난 행동들을 곧잘 한다. 단지 자신의 것을 지켰다는 핑계 아래 그런 그릇된 생각과 행동은 스스로를 묵인해 왔고, 여러 사람의 생각으로 확대되면 양심이나 부끄러움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이 만든 대의와 명분이 마치 정의인양 점철된다. 회사생활에서 개인의 역량을 제외한 모든 유무형의 시스템, 사람, 조직은 누구나 사용하고, 활용 가능한 구성 요소이자 도구이다. 자신 주변 환경의 가치나 힘을 자신이 가진 자산으로 오해하는 일은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 조직생활에서는 역지사지에 앞서 이런 오해(?)에서 비롯되는 일들을 더욱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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