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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08. 2021

이사님의 브런치

동료가 내 브런치 글을 읽고 있습니다

"쓰고 계시는 브런치 글들 읽었습니다"


얼마 전 이직한 회사에 워크숍이 있었다. 회사가 크지는 않지만 본지사로 나뉘어 있다 보니 전사 행사에도 많은 협조와 조율이 필요했다. 최초 계획했던 일정보다 일주일이 연기된 지난주에 행사가 개최되었고, 대표 이사의 당부 아래 한 명도 빠짐없이 전 직원이 참석하는 행사로 이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워크숍 장소로 집결하기 위해 서울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이동했고, 약속한 시간 안에 모든 사람들이 행사 장소로 모였다. 계획했던 식순에 따라 행사는 진행되었고, 매끄럽게 진행된 행사는 아니었지만 회사나 직원들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진행은 식순에 따라 대표이사가 올 한 해 성과와 내년도 경영계획 등을 발표했고, 각 조직별 운영 계획에 대한 발표를 각 부서장들이 발표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 부서를 맡은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부족하지만 직원들을 대상으로 내년 부서 운영계획에 대한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


모든 식순에 따라 10시 30분부터 시작된 행사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행사가 끝났고, 회사 행사이다 보니 전 직원이 모이는 회식자리로 이어졌다. 사전에 예약해놓은 식당으로 이동하여 각자 친한 사람들끼리 혹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섞여서 테이블을 차지하여 자리에 앉았다. 나도 입사하고 갖는 첫 회식자리라 대부분의 사람들과 관계가 서먹했고, 그나마 같이 서울 사무소에서 함께 있는 직원과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회식 시간도 어느 정도 흘렀고, 치울 술병도 조금은 쌓일 때쯤 비어있던 옆자리에 본사의 영업 직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월요일 아침마다 원격회의를 하면서 얼굴은 익지만 실제 대면은 오늘이 처음인지라 잠시 그와 나 사이에 서먹한 공기가 흘렀다. 하지만 그도 나도 이런 분위기를 오래 하고 있는 직군이나 스타일이 아닌 관계로 잠시의 서먹함을 서둘로 정리하고 반갑게 인사부터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사님"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차장님. 화면보다 실물이 낫네요"

 "감사합니다. 이사님도 화면에서 뵙는 것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이세요.

 "감사합니다. 더 들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사실 제가 차장님 하고 몇 살 차이 안 나요"

 "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참 제가 이사님 쓰고 계시는 브런치 글들 읽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브런치'라는 단어에 순간적으로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아내를 제외한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을 가까이서 만난 건 처음이었고, 또한 그 대상이 같은 회사를 다니는 직원이라고 하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글을 읽었다는 그에게 잠시 감사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교차했다. 조금은 당황했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고 그에게 내 글을 읽게 된 경로와 읽고 나서 드는 감정이나 소감을 물었다.


 "이사님 글 읽으면서 많이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됐어요" 술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그의 말이 단순하게 직장 상사에게 하는 립서비스 수준은 아닌듯했고, 그 이유가 궁금해진 난 그에게 조금 더 바싹 다가앉아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래요? 어떤 점이요"

 "한 회사의 임원인 분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들을 하면서 살았고, 상처를 받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므로 크게 반박하지 않았고, 회사 동료에게 민낯을 보인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공감을 해주는 그의 표현이 듣기 좋았다.

 "고마워요 김 차장님. 그래도 회사 얘기도 곧잘 쓰고, 제 감정에 솔직한 글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아서 함께 일하는 직원이 제 글을 읽는 건 개인적으로는 부끄럽네요. 읽더라도 제 감정 부분에 대해서는 적당히 걸러서 읽으세요"


언제나 글을 쓰며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주길 원한다. 내게 무의미한 글은 없었으며 적어도 글 쓸 당시의 감정만큼은 너무도 솔직했다. 그래서 그런지 3년이나 글을 쓰며 필명을 고집했으며, 가까운 누군가가 내 글을 알아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내 글에 솔직해지면 솔직해질수록 그런 마음은 더 커졌고, 조회 수와 라이킷 수가 늘어나서 즐겁고 기쁜 반면에 내가 아는 사람이 혹은 글 속에 있는 누군가가 내 글을 알아보는 것이 두렵고,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민낯'


내 글의 민낯은 어떠한가? 민낯이라는 단어를 광의적 의미로 해석하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서인지 막상 풀어쓰려니 손가락은 어느새 타이핑을 멈췄다. 하지만 단순히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라는 협의적 의미로 접근 해석하면 내 글의 민낯은 단순하다. 솔직하고, 진솔함을 추구한다. 꾸밈이 없으려고 애쓰고, 순간의 감정에 솔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럼 솔직한 내 글이 부끄러운 걸까? 아니면 글을 쓰는 순간의 내 감정이 부끄러운 걸까? 아직은 명확히 답을 내놓지 못하겠지만 두 부끄러움 때문에 글을 못 쓰는 경우는 과거에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필명이 아닌 내 이름 석자로 글을 쓰는 게 당연해지는 그날까지 이런 고민은 이어져갈 것이다. 당장 몇 개월  혹은 일이 년 뒤에는 내 글과 내 감정에 대한 부끄러움에 크기는 점점 줄어들고, 점점 가벼워져서 결국에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오늘같이 동료의 말 한마디에도 '고마워요', '구독 신청해야죠'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것이다. 내 글이 '민낯'이 가진 부정의 의미를 벗어나 자연스럽다는 긍정적 의미로 자신 있게 내세우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회사의 전사 워크숍은 12월 6일부터 시행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표전 진행했던 행사입니다. 또한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서 무사히 잘 끝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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