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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29. 2021

과거에 꿈꿨던 10년 뒤 내 모습이 지금과 같다면

새롭게 옮긴 직장에서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눈이 번쩍 떠졌다. 알람이 울리기 전이다. 어제 긴 시간이었지만 세 명이서 비울 막걸리 양은 아녔다. 대충 봤어도 10병은 비운 듯싶다. 다행인 건 술 종류를 섞지 않았다. 직장을 옮기고 직장 동료들과 처음 갖은 술자리였다. 늦은 시간 귀가했지만 섞지 않은 술 때문인지 아니면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여서 그런지 아니면 둘 모두가 이유인지 아침에 숙취도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속은 뜨끈한 무언가를 원했다. 그래서 손에 든 것이 라면이었다. 조금 더 빨리 라면을 끓이기 위해 전기 포트에 물을 올렸고, 끓은 물은 냄비에 채우고 라면과 수프를 함께 넣었다. 끓여놓았던 물 때문인지 라면은 금세 끓기 시작했고, 라면 냄새는 온 거실을 점령했다. 짙게 스며든 라면 냄새에 아직 잠자리에 있어야 할 아내가 잠에서 금방 깬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얘기를 건넸다.


 "아침부터 왜 라면을 먹어요"

 끓이던 라면이 붇지 않게 불을 끄고 냄비 뚜껑을 덮어놓고서는 아내 앞으로 다가갔다.

 "국물 있는 걸 찾다 보니까 라면이 당기더라고요. 혼자 잘 챙겨 먹고 갈 테니 더 자요"

 "얼굴에 아직 술이 떨어져요. 이제 나이도 있는데 술 그렇게 먹으면 안 돼요. 밖에서 실수할까 봐 걱정돼요"

 "네,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걱정하는 아내를 안심시키고, 서둘러 라면을 먹고 출근을 서둘렀다. 집에서 7시가 되지 않은 시간에 나서는 출근길은 길어진 밤 때문에 요즘은 더 이른 시간처럼 생각되곤 했다. 길어진 출퇴근 시간만큼 지하철 안에서 할 일이 늘었다. 오늘 같이 전날 늦게 귀가해 조금은 부족했을 잠을 청하기에도 괜찮았다. 펴놓은 책을 잠시 덮고 지하철 좌석에서 잠시 잠을 청하고 나면 어느새 도착역에 가까워 왔음을 몸은 이내 알고 있는 듯했다. 역사를 빠져나오며 피곤했던 몸을 조금 각성하기 위해 오늘은 아메리카노 기본에  추가가 필요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그렇게 주문한 커피를 들고 오늘도 새롭게 하루를 시작한다.


이직한 곳에서의 첫 한 달은 나름 무난했다. 20년 이상을 하던 일과는 조금은 무관한 업무를 하다 보니 가끔은 당황스러운 일도 생기고, 신입사원과 같이 회의 중간중간 이해가 안 가는 업무들도 많았다. 하지만 주변에는 이런 상황일 거라는 예상을 미리 한 것처럼 감사하게도 도움의 손길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도움의 손길도 지금은 당연히 받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둘러 업무 파악 및 직책에 맡는 퍼포먼스를 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과거의 삶보다 몸과 마음은 편하게 지내지만 전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살려고 한다. 편한 마음과 치열한 삶은 부자연스럽지만 지금의 내 마음이나 각오가 딱 그렇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무언가 되어야겠다는 꿈이나 희망을 잊고 살았다. 그냥 직장인으로서의 하루하루를 보내며 다음 달 월급을 받는데 부끄럽지 않게 일했고, 진급 시기가 되면 진급이 되기를 바랐다. 인사 고과 시기가 되면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평가가 되기를 빌곤 했었다. 뭐 딱히 관리자의 욕심이 있지도 않았고, 남들 얘기하는 거창한 야망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러던 내게 미래를 한 번 그려볼 수 있게 한 시간이 있었다. 처음 팀장으로 발령 후 받았던 관리자 교육에서였다. 내게는 워낙 생소한 교육들이었지만 관리자로서의 첫 역량을 키울 수 있었던 좋은 자리로 기억에 남았다.


그중에서도 내게 지금도 특별하게 기억이 남았던 시간이 '앞으로 10년 뒤 자신의 오늘 하루가 어떨 것이다'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내겐 막연히 다른 직군에 비해 직장생활을 이어가기가 IT 관련 직군은 더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오십 대 중반까지만이라도 직장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미래만 있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그 시간은 십 년 가까이 직장생활 한 내게 처음으로 꿈이라는 걸 갖게 해 줬고, 앞으로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난 주어진 시간 동안 10년 뒤 오늘의 모습을 써봤다.


월요일 아침 주간 회의가 있는 날이다.
매주 회의는 팀장 둘과 본부장인 나와의 짧은 미팅이 보통이지만
오늘은 영업본부 전체 회의로 주관하기로 하고 본부 직원 전체를 소집했다.
이유는 지난주 발표된 사업에서 우리 부서가 수주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수개월을 준비했던 사업이고, 사업규모만도 백억이 넘는 규모다.
준비하느라 고생한 본부 직원들을 격려도 하고, 앞으로 진행해야 할
사업 준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겸.....


13년 전 관리자 교육에서 10년 뒤 나의 모습이란 주제로 글을 썼고, 각자 그 글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당시 내가 그렸던 내 10년 뒤 모습은 사업부 본부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형 사업을 수주하고, 사업 수주를 위해 노력한 직원들을 격려하던 모습을 그렸었다.


세월이 지나 13년이 지난 지금 난 한 본부의 본부장 직책을 받았다. 과거 10년 뒤의 모습을 그렸던 순간보다 늦었고, 본부의 구성도 사업본부도 아니고, 부서원의 규모도 작아졌지만 실제 내가 갖는 책임감은 더 커졌다. 새롭게 시작한 곳에서의 책임감은 다른 한편으로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13년 전 꿨던 꿈을 근사치에 가깝게 이룬 것만으로도 난 그 부담감을 충분히 감사하며 즐길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보금자리에서도 '티격태격', '아웅다웅' 잡음들이야 생기겠지만 이젠 그 잡음의 주체에서 그 잡음을 조용히 무마하고, 조율하고, 균형을 맞춰 이끌어야 할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이라는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창하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표현은 어색하고, 부끄러운 표현이지만 이 글을 읽은 지금 5년 뒤, 10년 뒤 오늘의 내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꿈 하나 정도는 가슴에 품고 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려진 모습대로 이루어지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도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만이라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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