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Mar 04. 2022

최고가 아니더라도 최선을 선택했다는 믿음과 용기

리더로서 신중함과 단호함이 가진 무게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할 수는 없어요'


내가 아내에게 자주 하는 말이고, 스스로에게도 위로의 주문처럼 곱씹는 생각이다. 며칠을 무거워진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결코 가볍지 않았던 마음이었고, 진중한 결정이었다. 스스로에게 수십 번을 묻고 또 물었다.


십여 년 전 처음 관리자의 직책을 받았던 시절 팀원은 열명이 넘었고 당연한 얘기지만 각기 외모도, 성격도 달랐다. 공통점이라고는 하는 일 정도가 고작일 정도로 모두 젊고, 저마다의 스타일이 었다. 그렇게 가깝다고 생각했던 동료들도 관리자라는 직책을 받고 보니 조금은 거리가 생기고, 농담같이 주고받는 대화에도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팀 동료로 함께 일하던 시절과는 사뭇 달랐고, 격 없이 리더 역할을 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동료들이 그리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관리자의 자리가 불편하고, 외로운 자리임을 실제로 느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팀이 너무 바빴고, 바뀐 리더에게 거는 기대감도 꽤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감성적인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제대로 된 리더로서의 역할 수행을 위해 의욕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한 마디로 그 시절엔 회사에도, 동료들에게도 모두 인정받는 리더가 되고 싶었고, 삼십 대 중반에 받아 든 직책이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상장 같은 마음에 더 열정적일 수 있었고, 열심히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넘치는 의욕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이 팀원들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팀원일 때는 친한 동료들끼리만 자주 어울리고, 어색하거나 불편한 사이 간에는 업무 이외에는 개인적으로 대화를 할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직책을 받는 순간 모든 팀원들을 파악하고, 리더로서 팀을 이끄는 게 본연의 업무이다 보니 개인들 면면을 들여다보고, 개별 업무 역량이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 세명이나 되는 팀원들을 시간을 내서 개별 면담을 했고, 많은 얘기들을 들었다.


누군가가 '관리자라면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가이드를 주지 않았지만 나름 생각했던 리더로서의 업무를 수행했고, 별 탈 없이 팀이 돌아가는 것 같아 나름 자부심도 가지게 됐다. 게다가 주변에서까지 '잘한다'라고 부추기는 말들에 더 한껏 어깨가 올라간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십여 명이나 되는 팀이 운 좋게 잘 운영돼서 큰 소란은 없더라도 어디에나 사소한 사건, 사고들은 있기 마련이다. 결국 그 작은 사건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서 시작됐다. 한 동료가 있었고, 내게는 늘 마음에 차지 않는 동료였었다. 늘 업무를 후임들에게 미루고, 자신의 고객사임에도 휴일이나 야간에는 직접 지원하지 않고 후배들을 보냈다. 전임 팀장은 입사 동기였고, 가깝다는 이유로 그 동료의 업무 처리를 어느 정도는 묵인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쌓이자 후배들의 불만이 자꾸 귀에 들어왔고, 늘 이런 태도를 일관하는 모습이 내게는 동료애가 부족한 직원으로 비쳐서 그 동료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팀장으로 직책을 받으며 처음 생각했던 리더로서의 업무를 업무의 형평성, 역량에 맞춰서 업무 분장을 하고, 모두 불만이 없는 조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동료로서 하지 못했던 일을 팀장을 맡으면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 많은 후배 팀원들을 위해 문제(?)의 동료와 마주하게 됐다. 팀장과 팀원으로. 모든 일이 잘 해결되고, 마무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생각하는 대로 되지는 않았다. 가끔은 작은 사건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는 순간 큰 여파로 다가올 때가 더러 있다. 당시의 그 문제도 처음에는 내 가벼운 경고를 동료가 어느 정도 수긍하고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동료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틀 만에 퇴사 의사를 회사에 밝혔다. 그렇게 그 동료는 2주간의 인수인계와 2주간 회사에 두문불출하더니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날 일로 나는 한동안 관리자라는 직책 수행에 위축됐고, 내가 하는 말들에 더 조심하며 고민하는 여러 달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그 동료가 그만둠으로써 결원에 따른 불편함은 잠시였지만 많은 후배, 동료들은 오랜 기간 공통된 업무 환경에서 자신의 역량에 맞는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따른 평가를 받았다. 희생에 대소를 따질 수는 없지만 굳이 나눠야 한다면 작은 희생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있지 말기를 희망했지만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사다. 내가 늘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고 개인적으로는 변명이다.  


리더는 말 그대로 'Leader'이다. '이끌다', '데리고 가다'의 명사형이다. 누군가를 이끄는 사람은 이끌려 오는 사람들에 의해 평가된다. 권한이 있음에도 신중해야 하는 것도 그에 따르는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리더의 오판으로 많은 조직이 잘못된 길로 인도되고, 회생 불가능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작게는 하나의 작은 팀이 될 수도 있고, 크게는 하나의 회사가 혹은 나라가 될 수도 있다. 휘두를 수 있는 칼이 있어도 칼집에서 빼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꺼내 든 칼은 다시 집어넣을 수도 자신을 벨 수도 없으므로 그 날카로움과 무게감을 늘 경계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볍게 언쟁하다 너덜너덜해진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