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했더니 사과(Apple)가 생겼다

아들 덕에 사과 제품도 써보네요

by 추억바라기

작년 11월 회사를 이직했다. 10년을 다녔던 회사를 이직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10년이나 다녔던 회사였으면 다들 미련도 있을 테고, 아쉬움도 있었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그리 감정을 정리하냐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였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돌아보면 그냥 덤덤하다. 아니 조금 더 감정을 얹으면 후련하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그만큼 미련이 없다. 앞으로도 긴 시간 몸 담았던 곳이어서 잊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좋은 추억으로만 남겨놓으려는 마음뿐이다.


그렇게 10년을 다녔던 곳에서 쉽게 마음을 접을 수 있었던 것은 다녔던 회사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지금 이직한 곳에서의 희망과 꿈이 더 컸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나이 오십을 앞두고 꿈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자니 부끄러운 마음도 들지만 타이핑을 하는데 전혀 망설임이나, 주저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이직한 회사에 대한 만족도는 지금까지도 꽤 크다. 지금 이직한 회사는 개인적으로는 이직한 회사 중 가장 짧은 고민의 시간으로 결정을 한 곳이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지금까지 눌렸던 욕심을 마음껏 부려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옮겨온 회사에서 첫 행사를 작년에 가졌다. 전 직원이 모여 앞으로를 얘기하는 자리였고, 의미가 있었던 자리였던 만큼 직원들도, 대표님도 모두 설렘 가득한 행사였다. 이런 마음일 거라는 직원들 생각을 미리 읽었는지 대표님이 직원들을 위해 내건 경품들도 기대 이상이었다. S사 스마트와치부터 태블릿에 사과 회사 에어 팟까지. 다들 욕심이 날 법한 상품이었고 나 또한 그중 하나에 꽤 사심을 갖고 있었다.


아들이 노래를 부르던 바로 사과 회사 제품의 '에어 팟 프로'. 회사 임원으로서 직원들에게 경품이 돌아가길 빌어야겠지만 행사 경품은 참석한 직원들 모두에게 주는 공평한 기회였으므로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행사가 모두 끝나고 모든 직원이 기대하던 경품 추첨에 들어갔고, 5등 상품인 '에어 팟 프로' 발표에 난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말로는 본부에 부서원들이 받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지만 정작 마음은 내가 갖고 있는 행운의 번호가 당첨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 드디어 6등 당첨되었던 직원이 번호표를 모아놓은 상자에 손을 넣었고, 뽑아 든 종이를 사회자에게 건넸다. 번호표를 건네받은 사회자는 아주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고, 크게 번호를 불렀다. 그 호명한 번호가 내가 갖고 있는 번호와 일치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와~, 와우~ 감사합니다. 고마워 이 주임"


난 부끄러움은 1도 없이 너무도 쉽게 속내를 내보였고, 그 감동(?)의 창피한 순간을 직원분이 카메라에 담았다. 그 순간 너무도 기뻤지만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직원들 보기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받아 든 '에어 팟 프로'는 고대하던 아들 손에 쥐어졌고, 아들이 사용하던 '에어 팟 2세대' 제품은 딸아이의 손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잠깐의 부끄러움이었지만 당첨된 걸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아들은 얼마 전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처남에게 최신형 아이폰을 선물 받았고,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자신이 모아놓은 돈으로 아이패드를 구매했다. 내가 사 준 것이 아닌 자신이 모아놓은 돈으로 산거라 따로 할 말은 없었다. 고가의 제품이다 보니 구매를 위해 여러 날을 신중하게 고민했고, 충동 구매가 아닌 본인이 꼭 필요해서 산거라는 아들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그렇게 패드를 구매한 아들이 선착순 이벤트로 사과 제품 이어폰인 '에어 팟 2세대'를 공짜로 받는다는 얘길 했다. 혹시나 '아빠 써'라고 말하지 않을까 기대도 했지만 내색은 하지 못했다. 아들도 늘 내게 기왕 살 거면 좀 좋은 제품으로 사라는 얘길 많이 했던 터라 작은 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납득이 간다. 난 꽤 오랜 시간 동안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 중이다. 그동안 사용했던 이어폰의 출처는 모두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었다. 내 첫 블루투스 이어폰부터 최근 사용했던 제품까지 총 세 개의 제품이 2년을 기점으로 고장으로 혹은 사용감 불편으로 내 변심을 샀다. 다행히 저렴한 상품이라 과감히 교체가 가능했다. 난 그렇게 저렴한 제품을 좋아했고, 저렴한만큼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단지 가성비만이 이런 나를 위로했다. 이런 날 아이들도 잘 알기에 늘 기왕 구매할 때 비싸고, 성능이 좋은 제품을 사라고 권했었다. 하지만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자식들에게는 아깝지 않아도 내게 들이는 돈은 조금 아깝고, 불편하다. 그래서 나도 늘 조금 더 싼 걸 구매하는가 보다. 그렇게 난 늘 '괜찮다', '쓸만하다'는 자기 합리화로 아이들을 설득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가성비만을 고집하고 지냈었다.


하지만 아들 손에 들어올 '에어 팟 2세대' 제품은 조금 욕심이 났다. 아이들도 모두 사과 제품이 있는 데다가 특별히 돈을 주고 구매한 것이 아니어서 은근 기대감이 컸었다. 그렇게 직구를 한 제품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날 드디어 아들에게 '에어 팟' 제품이 도착했고, 내 기대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게 획기적(?)인 제안을 해왔다.


"아빠, 내가 받은 '에어 팟' 6만 원에 넘길 테니 살래요?"

"응? 하하... 그거 어디 팔 생각이었어?"

"응, 당근에 내다 팔려고 했지. 지금 당근 시세 절반에 줄게 아빠. 이 기회에 좋은 제품 하나 사세요"


아들의 표정은 진심이었고, 나름 합리적 가격을 제시한 뿌듯함으로 날 바라봤다. 그 기대감 넘치는 표정에 나는 더는 거절 못하고 구매의사를 밝혔고, 스마트폰 뱅킹으로 아들에게 바로 6만 원을 입금했다. 입금을 하고 나서 받아 든 사과 문양이 어찌나 폼 나보이던지 통장에 남은 내 용돈 잔고 걱정은 어느새 뒷전이었다. 그렇게 아들 덕에 난 3월 20일 사과 제품을 처음 구매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보는 자리에서 바로 언박싱에 들어갔다.


'따라다랏다~♬, 따라다랏다~♪~'

박스를 풀고, 내 스마트폰의 블루투스에 연결을 하고 나서야 드디어 내 제품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사과 문양을 본 게 2007년이었으니 정확히 15년 만이다. 아들 덕에 생긴 '에어 팟'으로 난 첫 사과 제품을 갖게 된 감격의 날을 맞았다. 바로 오늘 3월 20일, 이 날을 기억해야겠다. 그냥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6만 원에 아들에게 구매한 첫 사과 제품 구매일로.


옛날 사고방식을 고수하며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이 조금 더 좋은 걸 사용하고, 가져갔으면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한다. 내 아내도 자신에게 좋은 옷을 사주는 행위를 거의 하지 않는다. 늘 아이들에게 먼저 좋은 것을 입히고, 사주기를 원해왔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도 변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더 꾸미고, 좋은걸 먹어야 나이 들어 자식들에게 손을 덜 내밀고, 덜 걱정시키는 보호가 필요한 보호자가 되지 않을까. 아직까지도 우린 어색하고, 익숙지 않아 우리만을 위한 소비를 잘 못하지만 늘 내 아이들이 곁에서 그리 알려준다. 이젠 우리를 챙기라고.


그나저나 내가 사용했던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블루투스 이어폰이 없는 아내에게 페어링을 해놔야겠다. 아내가 알면 싫어할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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