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은 늘 바쁘고, 에너지를 많이 쏟는 하루다. 임원회의가 아침부터 있고, 이어지는 영업회의까지 끝나면 두 시간이 지나는 것도 금방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회의에서는 많은 이슈, 진행사항에 대한 보고 등 다양한 얘기들이 회의 시간 내내 오갔다. 회의를 마치고 오후까지 다음 주에 제출할 제안서 검토며 부서 내에 산재한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체 어느새 어깨와 목이 뻐근해 올 때쯤 뒷자리에 앉아있던 영업 이사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에 서있었다. 뒤에 누군가 서있는 인기척을 이내 느끼고 난 머리를 위로 들어 그를 봤다.
"이사님, 바쁘시죠?"
"아뇨, 괜찮습니다. 이사님. 뭐 하실 말씀이라도"
"OOO 제안서 작성에 사전에 문의할 사항 있는지 확인 좀 부탁드리려고요"
"네, 당연히 그래야죠. 그나저나 최 이사님 안색이 별로 안 좋으세요"
"보이기도 그래 보이나요? 지난주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더니 오늘은 춥기까지 하네요"
잠시 대화를 이어가던 그는 자리로 돌아가 한 시간을 더 근무하다 일찍 퇴근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러고서는 한 시간 뒤 회사로 연락이 왔고, 안타깝게도 코로나 양성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는 오늘 회의 때 나와 맞은편에 앉아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던 당사자였고, 자리도 제법 가까이 있는 편이어서 사실상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시간도 늦었고 아직은 몸도 특별히 증상이 있지는 않아 아내에게 톡으로 사실을 알려주고 '별일 있겠냐'하는 생각으로 퇴근을 서둘렀다.
그렇게 집에 들어갔을 때 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두 아이들은 이미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고, 아내는 평소와 같이 주방에서 저녁 준비에 한 창이었지만 얼굴에는 밖에서는 익숙했지만 집에서는 보기 어려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내는 들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소매로 입을 가리고 남아있는 한 손으로 '안방'을 가리키며 서둘러 들어가기를 종용했다. 조금 서운한 마음은 들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사는 공간이다 보니 조심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 조용히 아내에게 눈인사만을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밖에서 나에게 전화해 집에서의 주의사항 및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얘기하라는 말을 전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다시 전화벨이 울렸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먹었던 식사같이 식판에 정갈히 밥과 반찬을 담아 방문 앞에 뒀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거실에 있는 TV와 자가격리 기간 동안은 강제 결별할 수밖에 었지만 내가 격리된 안방에 화장실도 있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과 노트북만 있으면 특별히 심심한 저녁은 아닐 듯했다. 평일 저녁 글 쓰는 재미도 쏠쏠했고, 책 읽다가 졸음도 많이 왔지만 저녁이 있는 생활을 잠시 동안 즐길 수 있어서 그리 무익한 시간은 아니었다. 다음 날 신속항원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아내의 걱정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렇게 하루 더 자가격리 후 난 다행히 격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가격리를 벗어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고 그 평범한 일상을 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집에도 드디어 진정 확진자가 나왔다. 대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얼마 전까지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던 아들이 최근 실험 수업을 위해 학교를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또 학교 동아리 활동 때문에 밖에서 술자리도 조금씩 늘었다. 그러던 중 내가 자가격리가 끝난 수요일 저녁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얼굴도 많이 푸석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에 조금 걱정이 됐다. 하지만 전날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 때문에 그런가 해서 저녁 이후에 특별히 얘길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출근 후 아내의 연락으로 아들의 상태를 알게 됐고, 신속항원 검사 이후 확진 판정을 받고서야 우리 집에도 드디어 확진자가 나왔구나 하는 현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들은 그날 오후 이후로는 자신의 방에서 나올 수가 없었고,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 출입을 강력하게 통제당했다. 아들 덕에 거실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비워놓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아내의 진두지휘 아래 식사도 각자 방에서 모두 따로 했고, 철저하게 아들과의 동선을 분리하려고 노력했다. 이틀간 난 아들 얼굴도 보지 못해 근근이 아들방 밖에서 아들을 불러서 안부를 묻는 대화가 고작이었고, 코로나 때문에 한 집에 살면서 이렇게 생이별도 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영상통화를 해 주말에는 드디어 아들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고, 생각보다 얼굴이 많이 안돼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들은 감염되는 질환이 유행을 할 때면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먼저 확진을 받곤 했다. 독감이 유행할 때도 나머지 가족들은 한 번을 걸리지 않았던 질환을 혼자 유일하게 두 번이나 걸려서 일주일을 격리했었다. 이번에도 누적 확진자가 천만을 넘겼을 때 아들은 확진 판정을 받았고, 25퍼센트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이제 격리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무사히 아프지 않고 잘 완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나머지 가족들도 추가 확진 없이 무탈하길 빌어본다.
이번 격리 기간 중에 많은 걸 느꼈다. 한 공간 그리고 같은 시간을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었고,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가족이 아플 때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 또한 가족이라는 것 또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늘 소중한 것들은 막상 잃어보지 않고는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이 소중한 사람이거나 시간이거나. 평소에도 이런 소중한 시간들이나,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찰나의 시간이라도 내어보면 어떨까 싶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내 주변의 소중한 모든 것들에 조금 더 애정을 갖고 늘 관심을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는 날이 내 후회보다 앞서있어서 감사하다.
이틀간의 자가격리 그리고 며칠간의 아들 격리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함께하는 시간 중에 가끔은 이렇게 혼자 하는 시간의 소중함도 알게 됐다. 혼자 해보니 함께하는 것에 소중함을 더 잘 알게 됐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