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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커리어를 쌓는 법

세월호 8주기 방송을 무사히 잘 마친 딸에게

by 추억바라기

"아빠, 나 학교 방송부에 지원했어요"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아이가 학교를 다녀와서 대뜸 하는 얘기가 방송부 아나운서에 지원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딸아이가 갖고 있던 꿈 중에 기상 캐스터가 있어서 학교 방송부 아나운서에 지원한 게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꿈꿔오던 일을 이렇게 빨리 실행에 옮기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전개였다.


"지수야 학교 방송부 아나운서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어?"

"그럼, 아빠 딸이 그 정도도 모르고 지원했을까 봐"


딸아이는 그렇게 방송부 선배들을 대상으로 오디션과 인터뷰를 거쳐 학년별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아나운서 자리에 당당히 합격했다. 여리여리하기만 했던 딸아이가 교내 방송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방송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부모로서의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그 또한 딸아이가 선택한 자신의 길에 대한 대가일 테고, 좋은 경험으로 무럭무럭 커가는데 아이 마음의 양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미치니 아이의 꿈을 믿고 지지하는 것이 부모인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알았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방송을 시작했던 딸아이는 어느새 3년 차 베테랑 아나운서가 되었다. 자신이 하는 방송에 대해 자부심도 있었고, 늘 방송부 일에 열심히였다. 지난 금요일엔 세월호 8주기를 맞아 특별 방송을 준비해야 한다고 며칠 전부터 무척 분주해 보였다. 평상시 아침 방송과는 다른 의미가 있는 날이라서 학교 가는 시간도 일렀고, 방송 멘트를 만들기 위해서 전날부터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딸아이가 이제 16살이니 세월호 사고는 딸아이 8살 때 발생했던 일이다. 8살 아이가 느낄 슬픔이나 감정의 깊이가 지금보다는 깊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딸에게도 생각지도 못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한 동안 뉴스며 각종 방송에서 그 장면을 많이 봐서 그런지 배를 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다 못해 거부했다. 그래서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가족은 교통편을 여객선을 이용한 여행 거이나, 배를 교통수단으로 이동하는 여행 자체가 사라졌다.


그렇게 딸아이에게 세월호 사고는 슬픔이라는 감정보다는 공포라는 상처를 남겼다. 그렇게 딸에게도 4월 16일 세월호 사고는 생각지도 못하게 영향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일을 잊지 않기 위해 딸아이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방송에 실어 그날을 기억했다. 아내의 도움으로 딸아이는 4월 16일 아침 방송에 가슴속을 울리는 멘트를 학교 구석구석으로 실어 보냈다.


"오늘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8주기가 된 날입니다. 팽목항에 매달려 있는 빛바랜 노란 리본처럼 그날의 아픔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그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날을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합니다. 오늘 감상하실 노래는 임형주의 '천 개의 바람'입니다'


주말 저녁. 딸아이가 자신의 방송을 녹음해 온 덕에 그렇게 녹음해온 걸 들으며 딸아이의 방송 목소리에 따뜻한 분위기와 전달하려던 메시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딸아이의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아이들 마음 구석구석에 그날의 기억을 다시 마음 깊이 새기자는 의미로 잘 전달되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에게도 그날의 사건이 공포가 아닌 슬펐던 기억으로 다시금 자리 잡아가는 듯해서 또 한 뼘은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딸아이의 방송 목소리를 우연하게 들을 기회가 있었다. 딸아이가 점심 방송을 할 시간에 아내는 학교 근처에 있는 한 카페 야외 테이블에 있다가 학교 밖으로 들려오는 딸아이의 교내 방송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주 듣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신기했고, 잠시 듣고 있으니 그 목소리가 딸아이의 목소리임을 알고는 또 한 번 놀랐다고 했다. 아내는 딸아이의 방송 목소리를 듣고 온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듣지 못한 날 더 약 올리려는 의도로 여러 번 반복해서 자랑했다. 그 얘길 들으며 난 다음에 기회가 내게도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좀처럼 쉽게 오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은 가면서 어느새 딸아이는 올해가 마지막 방송을 하는 연차가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방송부를 계속 이어갈지는 모르지만 이제 방송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휴가를 내서라도 방송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굴뚝같다.


딸에게 방송부 아나운서 일은 어떤 의미를 주고, 주어진 무게가 얼마나 큰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교내 방송할 아나운서는 학년별로 한 명씩 밖에 없는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임에는 분명하다. 딸은 3년간 방송을 한 번도 방송을 건너뛰지 않았고 알게 모르게 책임감은 당연히 따라다니던 꼬리표였을 테다. 이 글을 발행한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딸아이는 방송 준비를 할 테고 늘 그 의미나,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즐기면서 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어른인 내가 배울 때가 많다.


'지수야, 3년 동안 방송하느라 수고 많았어. 아빠는 우리 지수가 너무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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