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머리 긴 녀석이 싫다고 하셨어

우릴 때렸던 학생주임 선생님은 잘 지내실까

by 추억바라기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은 두발과 복장이 엄격하게 단속되던 때였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기 시작한 지도 몇 해되지 않았을 때였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이성에 관심이 가던 시절이라 그 시절 우리들에겐 머리는 그 어떤 패션 아이템보다 중요하게 생각되었을 때였다.


교복은 빨아 입고 다니지 않아도 머리만은 자존감과 내 자유의 표현 그 자체였던 그 시절. 나도 머리를 1센티미터라도 더 기르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학교마다 있었던 학생주임의 두려움에 자유 의지는 번번이 꺾였고, 몇몇 학생들은 자신의 자유 의지를 끝까지 고수하다 장렬히 전사하는 일들이 종종 생겼다.


두발의 규정은 정확했고, 길이엔 유연함이 전혀 없었다. 전체 머리 길이는 2~3센티미터를 유지해야 했고, 앞머리는 눈썹 위로 3센티미터 이상이어야 했다. 이런 규정 때문에 이마가 좁은 친구들은 이마가 길었던 친구들이 부럽다고 했다. 자신들에게 눈썹 위 3센티미터는 그냥 앞머리를 기르지 말라는 잣대였지만 이마가 길었던 친구들은 제법 앞머리가 길게 느껴질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 봤자 빗어도 넘어가질 않을 머리였지만.


몇몇 친구들은 평소에 자까지 대어가며 머리를 조금씩 길렀고, 자주는 아니지만 주말이면 한껏 멋을 내고, 머리에 힘까지 주고 소개팅이나 미팅을 나가곤 했었다. 누나가 있는 친구들은 헤어 무스를 접할 기회가 흔히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간혹 헤어 무스를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소개팅이나 미팅에 나가는 친구들의 변신을 돕기도 했다. 2~3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짧은 머리였지만 무스라도 발라 하늘로 새울라치면 새워진 머리만큼이나 자존감도 하늘을 찌르던 우리였다. 그래 봤자 3센티미터 높아진 자존감이었지만 당시의 우리에겐 남들이 못하던 큰 일탈을 했다는 스릴감과 대단함에 우쭐했었던 나이였다.


내 머리 길이도 고등학교 입학 초기부터 2, 3센티미터는 아니었다. 내게도 머리가 많이 길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길러오던 머리가 어느덧 고등학교 입학할 때쯤에는 제법 장발(?)에 가까워졌었다. 미용실을 다니며 머리는 정리했지만 말 그대로 '길게 다듬어 주세요'가 기본 콘셉트이다 보니 내 머리는 어느새 대학생들처럼 머리가 길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머리 길이라고 해봐야 고작 7, 8센티미터쯤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 짧은 머리로 3년을 다니다 그렇게 길렀더니 마치 머리 길이만큼 나도 한 뼘은 큰 것처럼 생각될 때였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나와 비슷하게 머리를 길러서 학교를 등교한 친구들을 보면서 조금은 걱정스러웠던 마음도 안심이 되었었다.


하지만 우리의 평화도 아니 자존감도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2주가 지나지 않아 난 그 길어진 머리 때문에 봉변을 당했다. 종례 하기 바로 전 갑자기 복도 끝 앞반부터 어수선해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 어수선함은 우리 앞에 반까지 옮겨왔다. 교실 문쪽에 앉아있던 반 친구 한 명이 급하게 교실 출입문을 나갔다 들어오면서 목에 손을 대고 '죽었다'는 표현으로 선을 그었다. 조용하던 앞반 교실에서 선생님의 큰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어수선한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야, 너 복도로 나가. 너도. 머리 꼬락서니 봐라. 니들이 대학생이냐? 너도 나가"


잠시 소란이 멈췄고, 교실 앞 출입문이 힘차게 열였고, 그 소란의 주인공인 선생님 한 분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한쪽 어깨에 하키 스틱을 떡하니 매고서, 작은 눈이지만 힘을 줘서 그런지 매섭게 느껴졌다.


"이것 봐라. 아이고, 가관이구만. 야, 너 복도로 나가. 너도. 그래 너"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지만 잦은 호명에 선생님을 볼 수밖에 없었고, 여러 번의 호명 끝에 그가 가르친 손가락이 날 가르친다는 걸 알았을 때 몸이 굳고,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흐르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호명되어서 복도로 나간 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복도 끝 맨 앞 1학년 1반부터 복도로 나온 학생들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에게 설마 징계가 있을까 하는 안도감도 잠시였다. 학년 맨 끝 학급이었던 우리 반을 시작으로 '엎드려' 복명과 함께 그의 어깨에 메고 있던 하키 스틱은 힘차게 허공을 저으며 돌았고, 그렇게 한 명씩, 한 명씩 복도의 학생들은 쓰러져 갔다. 물론 나에게도 그 순번은 돌아왔고, 세 대씩 맞은 허벅지와 엉덩이 어디쯤에는 극심한 통증과 열감이 한동안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잠깐의 고통으로 내 머리를, 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면 그래도 참을만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하키 스틱을 맸던 선생님은 우리 반 스무 명 남짓한 학생에게 하키 신공을 선 보이고 나서 다시 복도에 선 학생들 중 몇 명을 호명했다.


"야, 너! 너! 그래 너도. 앞으로 나와봐"


안타깝게도 일곱, 여덟 명 남짓 부른 학생들 사이에 나도 끼어있었고, 그렇게 호명된 우리들에게 그 선생님은 가위를 들이대고 앞머리를, 우리의 자존감을 싹둑 잘라버리고 말았다. 1센티미터도 남지 않게 앞머리 한쪽을 잘라놨더니 그 모양새가 가관이었다. 친구들의 잘린 머리만 봤으면 몰래 웃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정작 내 머리가 그리 잘려나가니 울음이 날 것 같았다. 결국 그리 잘려나간 앞머리 때문에 딱 그 머리 길이에 맞춰 머리를 전체적으로 다듬을 수밖에 없었고, 내 생애 가장 머리가 짧았던 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군대 입대할 때보다 더 짧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그 선생님의 정체는 학생주임이었고, 그날 전체 1학년을 돌며 머리를 강제로 잘라버린 숫자만 오, 육십 명이 넘었다. 그 선생님은 내 고등학교 3년을 학교에 계셨고, 변함없이 학생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느 학교에나 호랑이 같은 학생주임 선생님은 존재했다. 학생주임으로 계셨던 선생님들 중에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선생님은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타고난 인성, 본성이 두려움이나 공포의 대상을 맡기에 딱 어울리는 악역 같은 선생님도 있겠지만 한창 혈기 왕성했던 십 대 그 시절 학생들을 제재하고, 통제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학교가 낳은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은 절대 훈육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시절에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가르침을 받은 분들에게는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가르침이고,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다만 간혹 감정으로 매를 들거나, 폭언을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스승님과 진정한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지금같이 더 좋은 학교 문화가 자리매김해 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 다니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늘 자르던 대로 자르겠다는 미용사의 말에 그냥 그러라고 했더니 역시 방심은 금물이다. 그날의 머리 길이가 생각날 정도로 오늘 내 머리 길이가 무척이나 짧게 잘렸다. 머리 모양이나 길이 때문에 속상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잘려나간 머리카락 때문에 속상하다. 늘 조심했어야 되는데 내 머리를 자른 미용사의 머리 스타일과 오늘 내 머리가 닮아있다. 짧은 머리를 선호하니 자신의 머리도 짧게 자르고 손님들도 비슷한 머리를 고수하는 듯싶다. 앞으로는 좀 귀찮더라도 머리 자를 때 내 요구사항은 명확히 밝혀야겠다. 그 옛날 학생 때같이 그리고 오늘처럼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집에 왔더니 아내가 군대 가냐고 묻는다. 아마 2주는 이런 말을 자주 들을 듯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머리는 기를 테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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